웃음 터지는 ‘위험한 패밀리’
눈물 못참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만찬’ ‘마이 플레이스’ 눈길
설 연휴, 집 안에만 있긴 지루하고, 그렇다고 나들이를 나서려니 교통체증에 추위까지 몰려와 괴롭다고? 저렴한 가격에 따뜻한 곳에 앉아 군것질까지 하면서 그동안 소원했던 가족들의 마음까지 토닥일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영화. 가족끼리 함께 보기 좋은, 서로 다른 ‘가족’ 이야기를 다룬 영화 4편이 있다.
마피아의 가족 사랑 <위험한 패밀리>
마피아 보스 프레드(로버트 드니로)는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을 밀고한 뒤 쫓기는 신세다. 시아이에이(CIA) 증인보호프로그램에 따라 프랑스의 한 시골마을로 숨어든 프레드의 가족. 프레드는 총 대신 타자기를 두드리며 회고록을 쓰는 작가로, 그의 아내 매기(미셸 파이퍼)는 성당에 나가는 신실한 가정주부로, 딸 벨(다이애나 애그론)과 아들 워렌(존 드리오)은 학생으로 생활한다.
<위험한 패밀리>는 소소한 재미가 살아있는 코미디 영화다. 가족은 경쟁조직이나 경찰이 없는 조용한 시골에서 평범하게 사는 듯 보이지만, 자꾸 심기를 건드리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숨길 수 없는 ‘폭력 본능’이 서서히 살아난다. 짜증나게 하는 이웃을 “재미삼아” 또는 “적당히” 골려준다고 쓰는 방법이 실로 과격하고 무참하다.
이 지점에서 실실 웃음이 터지지만 그렇다고 빵 터지는 재미는 아니다. 아쉬운 공백을 메우는 것은 디테일을 살려내는 배우들의 연기다. 클라이맥스는 가족의 정체가 탄로 나면서 가족이 위기에 처하자 “어딜 감히 내 가족을”이라며 똘똘 뭉쳐 반격에 나서는 가족의 액션 활극이다. 서로를 비난하기에 바빴지만 외부의 적이 생기자 ‘패밀리 근성’을 발휘한다. 왕년의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와 미셸 파이퍼, 뤼크 베송 감독이 만난데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제작자로 참여했다. 이들의 이름값만큼은 아니지만, 낄낄대며 보기엔 ‘딱’인 영화다.
가족에 대한 성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지난달 개봉한 다양성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10만명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그 존재감을 톡톡히 증명해 내고 있는 작품이다.
‘뒤바뀐 아이’라는 다소 진부한 설정에도 ‘낳은 정과 기른 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아버지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의 모습이 공감을 끌어낸다. 성인 못지않은 눈물연기를 펼친 아역 니노미야 게이타도 흥행에 한몫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단순한 최루성 드라마나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를 ‘가족이란 무엇인가’, ‘진정한 아버지다움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통찰로 이끌어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낳는 것’만이 아니라 ‘애정과 사랑으로 시간과 추억을 쌓아가는 것’이 진정한 가족이자 아버지가 되는 길임을 깨닫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혈연주의에 빠진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젊은 아빠들에게는 ‘진짜 아빠가 되기 위한 지침서’로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우리 사회 가족들이 처한 불행 <만찬>
독립영화로는 최초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됐던 <만찬>은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처할 수 있는 갖가지 불행을 가족의 모습을 통해 투사해낸다.
장남 인철(정의갑)은 성실하게 일했음에도 명예퇴직을 당하고, 둘째인 경진(이은주)은 이혼을 하고 자폐증 아이를 홀로 키운다. 막내 인호(전광진)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난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산다. 이들의 늙은 부모 역시 자식들이 주는 생활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이렇게 영화는 실업, 이혼, 질병, 취업난, 노인 부양 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가족들은 수많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희망을 갖고 산다. 하지만 더 큰 불행이 이 가족들을 덮친다.
<만찬>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영화에는 가족들끼리 밥을 먹는 장면이 딱 한번 등장한다. 김치찌개에 소주 한 잔을 곁들이는 저녁식사 장면은 가족들이 행복한 시절을 추억하는 판타지에 가깝다. 이 소박한 저녁을 지켜내기 위해 아등바등하지만, 가족에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상적인’ 가족에 대한 의문 <마이 플레이스>
박문칠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다큐영화 <마이 플레이스>는 ‘과연 정상적인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영화는 박 감독의 여동생이 비혼인 상태에서 임신을 한 것을 계기로 가족들의 내밀한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그려낸다. 여동생은 “강아지도 주워 오면 버리지 못하는데, 하물며 아기다”라는 다소 철딱서니 없는 말로 자신의 임신·출산이라는 ‘선택’을 받아들이라고 가족들에게 말한다.
캐나다에서 이뤄놓은 모든 것을 버리고 “가족들 곁에 머물고 싶다”며 한국으로 역이민을 온 엄마는 딸의 선택에 다소 쿨한 대답을 내놓는다. “혼자 못 키우면 내가 키워주지 뭐.” 아빠는 반대를 하면서도 역이민을 온 뒤 한국에 적응을 못했던 딸에 대한 미안함으로 그저 지켜본다. 잘나가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영화감독으로 나선 오빠 박 감독도 걱정스러운 물음을 던질 뿐, 동생의 선택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정상적인 가족’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는 여동생과 가족들의 특별한 선택을 보며, 관객들도 생각에 잠길 만하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각 회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