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한 영화배우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AP=연합뉴스)
'카포티' '마스터' '헝거게임' 등서 개성 강한 연기…2006년 오스카상 수상
미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평가받는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이 마흔일곱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당대의 배우’ 호프먼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할리우드도 추모 분위기에 젖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2일(현지시각) 오전 미국 뉴욕의 아파트 욕실에서 호프먼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사인은 약물 과다복용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호프먼의 팔에 주사기가 꽂혀 있었다고 확인했다. 헤로인이 들어있는 봉지 두개와 비어있는 헤로인 봉지 여덟개도 발견됐다.
호프먼은 오랫동안 약물 중독으로 고통받았다. 2006년 미국 <시비에스>(CBS) 간판 프로그램인 ‘60분’에 출연해 과거 약물중독 사연을 고백하면서 “(오래 전에) 약과 알코올을 끊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지난해 온라인 연예 매체 <티엠지>(TMZ) 인터뷰에서 “23년간 약물을 끊었으나, 최근 다시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10일간의 재활 프로그램에 등록해 마약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살아있는 호프먼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것은 1일 저녁 8시였다. 이후 아이들과의 약속에 나타나지 않았고, 친구이자 극작가인 데이비드 바르 캇츠가 사무실용으로 임대된 아파트로 찾아가 숨진 호프먼을 발견했다. 911에 신고 전화를 건 것도 캇츠였다.
호프먼은 외양부터 ‘스타’와는 거리가 멀었다. 배우 치곤 과체중으로 보이는 몸매, 빗질이 안 된 헝클어진 금발머리, 대충 차려입은 듯한 옷차림 탓에 종종 ‘일자리가 없는 배우’처럼 보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연기하기 부담스러운 어려운 역할들을 두루 맡았고, 최고의 메소드 연기(극중 인물과 배우 자신을 동일시하는 극사실주의 연기법)를 보여주는 배우라는 찬사를 받았다.
‘얼굴은 익숙하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연기파 조연’은 호프먼의 오랜 수식어였다. 그는 고교 시절 뜻하지 않은 부상으로 레슬링을 그만두고 연기의 세계로 뛰어들었고, 뉴욕대에서 연극을 전공했으나 ‘스타’는 그의 몫이 아니었다. 아카데미상과 토니상 남우조연상에 각각 세 차례나 후보로 올랐지만 수상에 실패했다.
그러다 2006년 <카포티>로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면서 명실상부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호프먼은 체중을 18㎏이나 감량하며 창백한 소설가 트루먼 카포티의 삶을 섬세하게 연기했다. 훗날 베넷 밀러 감독은 “카포티는 필립이어야 했다. 그가 거절하면 그걸로 영화는 끝이었다”고 회상했다. 같은 해 개봉한 블록버스터 <미션임파서블 3>에서는 이단 헌트(톰 크루즈)와 맞붙는 악명 높은 국제 암거래상 오웬 데비언 역할을 맡아 또다른 차원에서 완벽한 메소드 연기를 선보여 연기의 달인임을 입증했다. 최근에는 <헝거게임> 시리즈로 인기를 누렸고, 감독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하지만 아카데미상 수상 이후에도 사생활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걸어서 공립학교에 다니는 딸을 학교에 데려다 줄 정도로 조용한 삶을 살았다고 <시엔엔>(CNN) 방송은 전했다.
호프먼은 디자이너인 미미 오도넬과 오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 왔다. 둘 사이에는 쿠퍼와 탈룰라, 윌라 세 자녀가 있다. 가족들은 “필립을 여러분의 생각과 기도 속에 간직해달라”며 사생활을 존중해달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할리우드 배우, 감독, 제작자 등도 잇따라 애도 성명을 올리고 있다. 배우 로버트 드니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그는 너무 젊고 재능있고, 할 일과 살아야 할 이유가 너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게 되는 한 순간”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짐 케리도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배우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지난달 선댄스영화제에서 그를 만난 <시엔엔>(CNN) 엔터테인먼트 해설자 크리스 스미스는 “그는 정말 기분이 좋아보였다. 너무 충격적인 소식”이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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