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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다큐처럼…담담하게 그려낸 흑인 노예들의 참상

등록 2014-02-20 19:43

노예 해방의 기폭제가 된 해리엇 비처 스토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떠올리게 하는 <노예 12년>은 솔로몬 노섭이 쓴 자전적 소설이 원작이다. 정공법으로 노예제도의 참상을 그려내는 이 영화는 수백년 동안 노예제도를 존속시켜온 인류 역사를 반추하게 한다. 프레인 제공
노예 해방의 기폭제가 된 해리엇 비처 스토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떠올리게 하는 <노예 12년>은 솔로몬 노섭이 쓴 자전적 소설이 원작이다. 정공법으로 노예제도의 참상을 그려내는 이 영화는 수백년 동안 노예제도를 존속시켜온 인류 역사를 반추하게 한다. 프레인 제공
[문화‘랑’] 영화
‘톰 아저씨’ 빼닮은 ‘노예 12년’
노예출신 작가 자전소설 영화화
감정 이입보다 보여주기 충실
아카데미상 9개부문 후보 올라
“인간을 최악으로 대하는 방법은 그를 목매달아 죽이는 것이다. 아니다. 그보다 더 나쁘게 인간을 학대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노예제도’다.”(해리엇 비처 스토 <톰 아저씨의 오두막> 중에서)

스티브 매퀸 감독의 새 영화 <노예 12년>은 여러모로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1852년)을 떠올리게 한다. 흑인 노예제도의 잔혹상을 그린 이 소설은 노예해방의 전환점이 된 미국 남북전쟁에 큰 영향을 끼쳤다. 노예의 도망을 도와준 사람을 처벌할 수 있게 하는 ‘도망 노예법’에 분노해 이 소설을 썼다는 스토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거의 다 실화”라고 밝힌 바 있다. 노예제도의 참상을 그려낸 솔로몬 노섭의 자전적 소설(1853년)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노예 12년>은 이 톰 아저씨 이야기와 너무도 닮아 있다.

영화는 은유나 상징이 아닌 정공법으로 ‘노예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직 ‘사실의 힘’에 기대 134분에 이르는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로 하여금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먹먹한 슬픔을 느끼게 한다.

<노예 12년>의 한 장면. 프레인 제공
<노예 12년>의 한 장면. 프레인 제공

아내 그리고 두 아이와 함께 자유인의 신분으로 뉴욕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던 음악가 솔로몬 노섭(추이텔 에지오포)은 지인에게 소개받은 백인 2명과 함께 워싱턴으로 연주여행을 떠난다. 함께 술을 마시다 정신을 잃은 노섭이 깨어났을 땐 손과 발이 족쇄에 묶인 채 어두운 곳에 갇혀 있었다. “나는 자유인”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돌아오는 것은 발길질과 채찍질뿐. 노섭은 ‘플랫’이라는 새 이름과 ‘도망 노예’라는 새 신분을 부여받고 남부 루이지애나로 흘러간다. 여기서 인간적인 농장주 윌리엄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잔혹한 농장주 에드윈 엡스(마이클 파스벤더)의 농장에서 12년 동안 비참한 노예 생활을 한다.

감독은 “살아남고 싶은 것이 아닌 살고 싶다”고 읊조리는 노예 플랫(노섭)의 삶을, 마치 다큐처럼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는다. 노예들의 힘든 삶에 대해 감정을 과잉 노출하지 않고 그저‘보여주기’에 충실한다. 짐승처럼 발가벗겨진 채로 상품처럼 매매되는 노예들의 모습, 감독관에게 맞서다 하루종일 나무에 목매달리는 노섭의 모습, 악명 높은 주인에게 수시로 강간과 폭행에 시달리는 팻시(루피타 니옹고)의 모습까지…. 그리고 이런 노예들의 처참한 삶과 아름다운 장면을 조용히 대비시킨다.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아이의 뒤로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을, 목매달리는 노섭의 등 뒤로 해맑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아이를 잃은 슬픔에 울부짖는 어머니의 뒤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의 낭랑한 목소리를. 이러한 아이러니한 상황은 처연한 슬픔을 극대화시킨다.

영화는 노섭이 거쳐간 상반된 모습의 두 농장주 모두에게 ‘인간 존엄의 훼손’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노섭에게 호의를 베풀지만 “나는 원래 자유인”이라는 그의 호소엔 “어쩔 도리가 없다”며 외면한 포드의 죄가 노섭을 채찍질하고 학대한 엡스의 죄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악이 승리하는 데 필요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선량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에드먼드 버크의 말이 떠오른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노섭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떠돌이 배스(브래드 핏)의 용감한 행동과 “자유란 모든 것”이라는 그의 대사가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배우들의 호연은 영화의 작품성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다. 솔로몬 노섭 역의 추이텔 에지오포는 주름 하나하나, 땀방울 하나하나도 ‘연기’를 한다고 느껴질 만큼 스크린 전체를 장악한다. 마치 정신분열증에 걸린 듯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노예들을 학대하는 농장주를 연기한 마이클 파스벤더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영국 드라마 <셜록3>로 큰 인기를 끈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볼 수 있다는 것도 한국 관객들에게는 반가울 듯하다. 골든글로브 작품상, 미국 제작자조합상,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데 이어 다음달 2일 열리는 아카데미 영화상 9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27일 개봉.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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