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된 공간 낯선 남자가 그의 ‘목’을 죄어온다-나이트 플라이트
나이트 플라이트
<나이트 플라이트>의 상영 시간은 75분이다. 요즘 영화 치고는 드물게 짧은 분량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0분 가량을 비행기 안에서의 두 주인공을 비추는 데 할애한다. 이전의 15분은 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기까지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지나치게 단순한 구성에 벌써부터 기대를 접을 수도 있겠지만, 속단은 금물이다. <나이트메어> <스크림> 등에서 빼어난 연출력을 보여준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녹슬지 않은 공력은 단순한 이야기 틀거리에 시시각각 꿈틀거리며 보는 이를 옥죄는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특급 호텔의 브이아이피(VIP) 손님 객실 담당 직원인 리사(레이첼 맥애덤스)는 할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마이애미로 돌아가는 길이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다 친절하고 자상한 잭슨(킬리언 머피)과 우연히 계속 마주치게 된 리사는 그에게 점차 호감을 느낀다. 비행기에 오르니 잭슨은 리사의 바로 옆자리. 하지만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잭슨은 냉혹한 본색을 드러내며 국방부 차관 암살 작전에 동조하도록 리사를 협박하기 시작하고, 리사의 가슴 속 설레임은 이내 지독한 공포감으로 뒤바뀐다.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장기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발휘된다. 리사의 아버지를 볼모로 잡고 차관의 객실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지시할 것을 강요하는 잭슨과 이 모든 공포로부터 도망치고만 싶은 리사. 물리적으로는 승무원과 다른 승객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완벽하게 고립된 두 남녀. 감독은 3만 피트 상공의 비행기 안 좌석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 두 남녀의 쫓고 쫓기는 심리전을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과 숨막히는 공포감으로 촘촘히 수놓는다.
마침내 영원할 것만 같았던 야간비행이 끝나는 순간, 둘 사이의 심리적 추격전은 바깥 공간의 육탄 추격전으로 번져나간다. 하지만 이전의 위압감에 비하면 의아할 정도로 어리숙해진 잭슨과 갑자기 강력한 여전사로 돌변한 리사의 다소 맥없는 대결 장면에선 긴장과 공포의 끈이 느슨해지는 느낌이다. <배트맨 비긴즈>에 이어 또 다시 광기어린 악역을 맡은 킬리언 머피는 숨쉬는 것만으로도 ‘악의 기운’을 뿜어내는 듯하다. 9일 개봉.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에이엠시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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