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레슬러>, <블랙스완>의 젊은 거장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만든 영화 <노아>는 성경 속 일화인 ‘노아의 방주’를 뼈대로 스펙터클한 볼거리, 인간과 신, 믿음과 자유의지 사이의 갈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냈다. 영화인 제공
[문화‘랑’] 영화
러셀 크로 주연 ‘노아’ 개봉
5개월 공들여 실물 방주 제작
가족 희생 불사하는 노아와
그에 반발하는 가족들의 대립
러셀 크로 주연 ‘노아’ 개봉
5개월 공들여 실물 방주 제작
가족 희생 불사하는 노아와
그에 반발하는 가족들의 대립
2009년 10월, 터키 과학자들로 구성된 탐사대가 터키 아라라트산 해발 4000m 지점에서 ‘노아의 방주’로 추정되는 목재 구조물을 발견했다고 발표해 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눈과 화산재 아래 묻혀 있던 이 구조물의 탄소 측정 결과 기원전 2800년 전의 것으로 확인됐다는 주장이었다. 성서 속 다른 일화와 달리 노아의 방주는 길이 137m, 폭 23m, 높이 14m(테니스장 36개 크기)라는 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최종 도착지가 아라라트산이라는 점, 노아가 가족들과 1년10일을 머물렀다는 점 등이 명시돼 있다.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사실이 아닐까?’라는 상상을 한번쯤 하게 만드는 단서가 꽤 많은 셈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전세계인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해 온 ‘노아의 방주’가 눈앞에서 재현된다는 이유만으로도 영화 <노아>(20일 개봉)는 관객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5개월을 공들여 컴퓨터그래픽(CG)이 아닌 실물로 방주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압도적인 규모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여기에 성경 이야기가 영화화될 때마다 반복되는 ‘종교적 논란’ 역시 초미의 관심사였다. 제작사인 파라마운트가 뉴욕의 기독교인을 상대로 시사회를 연 데 이어 국내에서도 기독교계를 대상으로 별도의 시사회를 열기로 했을 정도다.
영화 <노아>는 아담과 이브의 세 아들인 카인, 아벨, 셋 중 셋째인 셋의 후손 노아(러셀 크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동생인 아벨을 죽인 카인의 후손이 득세한 땅에서 신의 뜻을 지키며 살아가던 노아는 꿈속에서 ‘물로 세상을 심판한다’는 계시를 받는다. 그는 구원의 길을 찾기 위해 할아버지 므두셀라(앤서니 홉킨스)를 찾아가고, 결국 모든 동물의 암수 한쌍과 그의 가족만이 탈 수 있는 거대한 방주를 짓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신의 심판을 받아들일 수 없는 두발 가인(레이 윈스턴)이 이끄는 카인의 후예들은 방주를 빼앗기 위한 전쟁을 벌인다. 여기에 ‘타락한 인간에 대한 심판’을 ‘전 인류의 멸(滅)’로 해석하는 노아와 이를 거부하는 가족들 사이의 갈등도 빚어진다.
반유대주의적 해석으로 논란을 빚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나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듯한 설정으로 비난을 받은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등의 문제작과 달리 이 영화에는 특별히 기독교계의 비난을 살 만한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극적 재미를 살리기 위한 몇 가지 변주가 시도된다. 구약성서에는 노아의 세 아들과 세 며느리가 등장하지만, 영화에는 노아의 며느리로 일라(에마 왓슨)만이 나온다. 인간을 돕다 신의 저주를 받은 감시자(거인)들의 방주 건설 동참, 살육과 욕심에 눈먼 ‘두발 가인’ 일당의 방해 등도 영화적 설정이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태초의 에덴동산 같은 세상을 위해 가족의 희생도 불사하려는 노아와 그에게 분노하고 반발하는 가족들의 대립이다.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종교적 믿음·복종에 대한 관객의 성찰을 유도한다.
거대한 방주와 떼를 지어 이동하는 각종 생명체의 모습, 들판에서 치솟는 거대한 물기둥과 엄청난 규모의 홍수 장면 등 볼거리도 풍부하다. 제작진은 1차로 다양한 동물의 모습을 복제한 뒤, 2차로 시지 작업을 해 움직임을 만드는 세밀한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또 8만5000ℓ짜리 물탱크 5개를 동원하고 지름 30m, 길이 900m의 거대한 물파이프를 설치해 리얼리티를 살린 홍수 장면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더 레슬러>, <블랙스완>의 거장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결국 성경 내용의 충실한 반영, 판타지적 상상력을 동원한 볼거리, 인간과 신, 믿음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시도한 셈이다. 욕심이 과한 탓인지 집중도가 다소 떨어지는 면도 없지 않다.
올해에는 <노아> 외에 <선 오브 갓>(예수의 생애), <엑소더스>(출애굽기), <더 리뎀션 오브 카인>(카인과 아벨) 등 성경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할 예정이다. ‘할리우드가 종교를 통한 힐링 전략을 택했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굳이 종교적 색채에 주목할 필요는 없다. 기독교인은 성경에 대한 다양한 변주와 재해석으로, 비기독교인은 새로운 형식의 판타지로 받아들인다면 큰 거부감은 없을 듯하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영화 <노아>의 한 장면.
영화 <노아>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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