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고품격 막장 드라마? 상상 뛰어넘는 ‘어거스트’

등록 2014-03-27 19:49수정 2014-03-28 18:01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장례를 치르기 위해 모인 가족들이 감춰왔던 비밀과 묻어왔던 감정들을 폭발시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명배우들의 명연기와 빈틈없는 각본, 위트 넘치는 대사가 어우러져 ‘고품격 막장 드라마’를 완성시킨다. 올댓시네마 제공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장례를 치르기 위해 모인 가족들이 감춰왔던 비밀과 묻어왔던 감정들을 폭발시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명배우들의 명연기와 빈틈없는 각본, 위트 넘치는 대사가 어우러져 ‘고품격 막장 드라마’를 완성시킨다. 올댓시네마 제공
[문화‘랑’] 영화
아버지 죽음 앞에서 싸우는 가족
충격적 비밀 연쇄적으로 드러나
탄탄한 구성과 터질듯한 긴장감
메릴 스트립·줄리아 로버츠 등
명배우들의 신들린 연기 빛나
‘고품격’과 ‘막장’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느껴진다. 특히나 안방극장에서 쏟아지는 막장 드라마에 지친 한국 사람들에게는. 하지만 ‘고품격 막장 드라마’를 내세운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은 잘 짜인 각본에 명배우들이 합세하면 ‘질 높은 막장 드라마’도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화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의 여름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서로 소원하게 지냈던 가족들이 모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구강암에 걸린 엄마 바이올렛(메릴 스트립)은 약에 찌든데다 가족들에게 막말을 퍼붓는 독설가다. 교수인 큰딸 바버라(줄리아 로버츠)는 남편(이완 맥그리거)이 젊은 여자와 바람나 이혼 위기에 몰린데다 반항을 일삼는 14살짜리 딸(애비게일 브레슬린)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다. 둘째 딸 아이비(줄리앤 니컬슨)는 모두가 버린 엄마를 돌보면서 결혼 따윈 생각도 않고 사는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이종사촌인 찰스(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사랑에 빠져 뉴욕으로 도망칠 궁리 중이다. 허영심 많은 셋째 딸 캐런(줄리엣 루이스)이 수많은 남성을 거친 끝에 골라잡은 남자는 어린 조카에게마저 마수를 뻗는 호색한이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만만치 않게 복잡한 이모네 가족까지 얹힌다. 이들은 사랑하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슬픔은커녕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기에 바쁘다. 찌는 듯한 더위가 심해질수록 가족들의 갈등도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의 한 장면.
영화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의 한 장면.

가족들의 상처를 후벼 파고 싸움을 유발시키는 중심인물은 바로 엄마다. “네 아버지가 불려놓은 재산은 모두 내 것”이라며 “가구들을 경매처분하기 전에 싸게 넘길 테니 사라”고 요구하거나, 실컷 막말을 퍼부어놓고 “상처받은 건 나”라며 적반하장 태도를 보이는 식이다. 큰딸 바버라는 이런 엄마에게 “(암에 걸린) 엄마가 죽으면 어차피 남은 건 다 우리 것”이라고 일갈하고, 약병을 빼앗기 위해 엄마와 마룻바닥을 뒹구는 격렬한 몸싸움도 불사한다.

이 영화의 무기는 가족의 숨겨왔던 충격적 비밀이 양파 껍질을 벗기듯 차례차례 드러나는 과정을 설득력 있고 긴장감 넘치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하나의 비밀이 밝혀져 관객들이 ‘헉’ 하며 충격에 휩싸이면,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다른 충격적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막장’을 보여준다.

하지만 초특급 막장이면서도 이 영화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 갈등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아픈 엄마의 부양 문제를 둘러싼 세 딸의 갈등, 이기적이고 독설가인 엄마와 그런 엄마를 미워하면서도 빼닮은 딸 사이의 불화, 동서를 막론하고 골칫덩어리인 ‘중2병’에 걸린 딸과 이런 딸의 훈육 방식에 대한 부부간의 대립, 백수 아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부모의 고통까지…. 막장이긴 하지만 이 영화가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탄탄한 구성과 예상을 뒤엎는 전개, 터질 듯한 긴장감 사이에서도 폭소를 자아내는 위트 넘치는 대사는 원작의 힘에 기댄 부분이 많다. 원작인 트레이시 레츠의 동명 희곡은 토니상, 퓰리처상, 뉴욕비평가상을 두루 휩쓴 명작이다.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명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메릴 스트립은 악마 같은 독설을 뽐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병마와 약에 찌들어 노쇠해진 엄마 역을 신들린 듯 표현해낸다. 중년에 접어든 줄리아 로버츠 역시 잔주름과 흰머리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눈부신 연기를 펼친다. 이 두 배우가 올해 골든글로브상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비록 수상은 못 했지만) 사실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최근 대세로 떠오른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셜록>에서의 이지적인 모습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찌질한 백수 역에 몰입한다. 이런 ‘블록버스터급 캐스팅’ 뒤에는 배우에서 감독을 거쳐 제작자로 변신한 조지 클루니가 있다. 과연 이 막장 가족 드라마의 결말은 무엇일까. 모든 것을 쏟아낸 뒤의 화해일까, 아니면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관계일까. 결말마저도 관객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