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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30년만에 신혼여행지 다시 찾은 중년부부

등록 2014-04-24 19:41수정 2014-04-24 20:21

<위크엔드 인 파리>는 권태기에 빠진 한 중년 부부가 파리로 ‘제2의 신혼여행’을 오면서 ‘부부’와 ‘결혼’에 대해 성찰하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렸다. 워너비 펀 제공
<위크엔드 인 파리>는 권태기에 빠진 한 중년 부부가 파리로 ‘제2의 신혼여행’을 오면서 ‘부부’와 ‘결혼’에 대해 성찰하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렸다. 워너비 펀 제공
로저 미셸 감독 ‘위크엔드 인 파리’
‘부부란, 결혼이란 대체 뭘까?’

모든 기혼 남녀는 부부관계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이렇게 자문한다.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이 질문에 대해 “연애는 쾌락이 목적인 데 비해 결혼은 인생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라는 꽤 그럴듯한 대답을 내놨다.

새로운 로맨스를 찾아가는 한 중년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로저 미셸 감독의 신작 <위크엔드 인 파리>는 바로 발자크의 이 명언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영화는 결혼 30년차인 중년 부부 닉(짐 브로드벤트)과 멕(린지 덩컨)이 식어버린 애정을 되살리기 위해 자신들의 신혼여행지인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가면서 시작된다. 낭만을 꿈꿨을 여행이지만, 옴짝달싹 못할 정도로 작고 초라한 호텔방조차 행복이었던 30년 전과 상황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은 파리의 물가를 걱정하는 소심한 남편은 몇 푼의 팁과 택시비에 부들부들 떤다. 이를 보는 아내는 가뜩이나 떨어진 정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통장을 탈탈 털어 잡은, 토니 블레어 총리도 묵었다는 고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닉이 “좀 만져도 되냐”고 노골적으로 유혹한다. 돌아오는 건 “구부러진 당신 소시지를 보느니 에펠탑을 봐야지”라는 냉소적인 대답뿐. 닉과 아옹다옹 다투던 멕은 결국 “나 새로 시작할래”라며 이혼을 예고한다.

<위크엔드 인 파리> 속 한 장면.
<위크엔드 인 파리> 속 한 장면.
<노팅힐>, <굿모닝 에브리원> 등을 만든 로맨틱코미디의 거장 로저 미셸 감독은 인생의 연륜이 짙게 묻어나는 중년 커플을 통해 ‘결혼’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년 부부들이 겪는 여러 문제를 뒤섞어 놓는다. 한땐 사회변혁을 꿈꿨던 ‘68세대’지만 다 커서도 부모에게 빌붙는 무능한 자식 뒤치다꺼리에 등골이 휘는 몰락한 중산층의 현실, 한때 베케트, 사르트르, 비트겐슈타인을 꿈꾸던 ‘수재’였지만 변두리 전문대학 교수 자리에서마저 잘린 루저의 비애, 그리고 한때 그 무엇보다 뜨거웠을 사랑도 이제는 육체적 관계를 건너뛴 ‘습관’이 된 모습. 그것은 닉과 멕만의 현주소가 아니다.

이렇게 남루한 부부의 모습과 어딘지 모르게 닮은 쓸쓸한 파리 풍경은 영화에 잘 녹아든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 파리는 <비포 선 셋> 같은 낭만과 열정이 깃든 공간이 아닌 다소 우울하고 저물어가는 중년의 모습 그 자체다.

영화는 중반 이후 극적 반전 없이도 이 부부가 서로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린다.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도망치는 ‘무전취식’에 도전하고, 우연히 만난 닉의 성공한 후배 집에 초대받는 일 등을 겪으며, 부부는 인생의 단맛 쓴맛을 함께한 서로의 관계를 성찰하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삶의 고비를 헤쳐온 부부라는 관계에는 단지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깊이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다 낡고 찌그러져 볼품은 없지만, 손때가 묻고 길이 들어 소중해진 부엌 냄비처럼.

그래서일까? 장뤼크 고다르 감독의 <국외자>들을 본떠 매디슨 댄스를 추는 마지막 장면은 추억이 켜켜이 쌓인 이들의 결혼생활과 삶이 계속될 것이라는 ‘낙관적 결말’을 상상하게 한다. 5월1일 개봉.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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