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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내 이름은 전정식…책임 묻기 위한 영화 아닙니다”

등록 2014-05-01 19:33수정 2014-05-01 21:13

전정식 감독은 입양서류에 적힌 ‘피부색깔=꿀색’이라는 시적인 표현 때문에 늘 스스로를 ‘특별한 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서양에서 대부분의 경우 동양인의 피부색은 노란색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영화 제목도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었단다. 이정용 기자 ee312@hani.co.kr
전정식 감독은 입양서류에 적힌 ‘피부색깔=꿀색’이라는 시적인 표현 때문에 늘 스스로를 ‘특별한 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서양에서 대부분의 경우 동양인의 피부색은 노란색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영화 제목도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었단다. 이정용 기자 ee312@hani.co.kr
[문화‘랑’] 영화 ‘피부색깔=꿀색’ 융 감독 인터뷰
“한국 이름: 전정식. 정이 많고 마른 편. 음식은 맛있게 먹는다. 순하고 착하고 귀엽다. 코와 눈 사이에 검고 푸르스름한 상처가 있다. 입양 추천함. 피부색깔: 꿀색.”

만화가이자 영화감독인 전정식(49·융 헤넨)씨는 이런 메모와 함께 5살에 벨기에로 입양됐다. ‘버려졌다’는 상처를 안고 낯선 땅에서 입양아로 자란 전씨가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피부색깔=꿀색>(5월8일 개봉)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앞서 출판된 같은 이름의 만화(2008)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영화는 2012년 안시 페스티벌과 지난해 자그레브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잇따라 주요상을 수상하는 등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폭넓은 공감대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를 지난 29일 서울 중구 소공동에서 만났다.

“한국에서만은 ‘융’이 아니라 ‘전정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그는 이렇게 운을 뗐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2010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뒤 이번이 세번째 방문이라는 그는 올 때마다 한국이 좋아진다고 했다. “사랑에 빠지는 기분과 비슷해요. 한번 만날 땐 새로웠고, 두번 만나니 정이 들고, 세번째가 되니 깊은 감정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랄까요?”

벨기에 입양아의 성장기 그린
만화가 출신 감독의 자전 영화
만화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에
유년시절 필름 등 다큐 곁들여
“다음엔 한국말로 대화하고 싶어”

그는 자신의 삶이 뿌리 뽑힘에 대한 불안, 버려진 것에 대한 상처,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점철됐다고 했다. 다른 입양아들이 흔히 그렇듯 각종 비행을 일삼으며 양어머니로부터 “썩은 사과”라는 호된 꾸지람을 들으며 자랐다. “그나마 다른 아이들처럼 마약, 자살충동, 우울증에 빠져들지 않은 건 ‘만화’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림은 제게 치유의 한 과정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낯설지만 그는 벨기에·프랑스 등 유럽에서 판타지 만화가로 두터운 마니아 팬을 확보한 ‘유명 만화가’다. 판타지 만화를 그리면서도 주제의식은 항상 ‘모성’과 ‘정체성’에 맞춰져 있었다고 한다. “판타지라는 장르를 택한 것 역시 자꾸 내 안으로 숨고자 하는 도피적 경향 때문이라는 걸 어느 순간 알게 됐어요. 결국 제가 그리고픈 만화는 ‘내 이야기’였던 셈이죠.”

<피부색깔=꿀색>은 장르상 애니메이션이지만, 실제로는 3가지 기법이 혼재된 ‘하이브리드’ 영화다. 첫번째로 그의 유년 시절을 찍은 옛날 필름이 등장하고, 여기에 그가 그린 만화가 얹힌다. 그리고 2010년 직접 한국을 방문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가는 다큐가 더해진다. “영화를 만든다니 (양)삼촌이 제가 벨기에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촬영해 놓은 어린 시절 필름을 주셨어요. 운이 참 좋았죠. 적절히 실사와 만화가 교차하니 관객들은 이해하기도 쉽고 보기도 좋을 거예요.”

<피부색깔=꿀색>의 한 장면.
<피부색깔=꿀색>의 한 장면.
영화 속 그의 이야기는 웃음과 눈물이 씨줄과 날줄처럼 교차한다. 동갑내기 여동생과 호기심에 ‘키스 연습’을 하는 장면에서는 슬며시 웃음이 나고, 자신의 뿌리를 고민하며 ‘매운 음식’을 꾸역꾸역 먹다 위장에 탈이 나는 장면에선 눈물이 핑 돈다. “매운 음식을 먹는 장면은 무척 중요해요. 그것 때문에 병이 나고 양어머니의 큰 사랑을 깨달으면서 제 자신의 이중적 정체성도 인정하게 됐죠. 삶의 전환점이랄까? 지금은 매운 음식 잘 먹어요. 김치를 정말 좋아해요.”

영화가 유명해지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묻는다. ‘그래서 친부모는 찾아봤어?’라고. ‘치열한 정체성 확인 과정’을 겪은 그이지만, 친부모를 찾으려는 노력은 따로 하지 않았다고 했다. 홀트 복지회에 들러 관련 서류를 찾아본 것이 전부다. “친부모님을 찾으며 또 다른 아픔과 상처를 겪고 싶지 않아요. 가족을 만나면 좋겠지만, 억지 노력이 아닌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으면 해요. 친엄마에게 ‘엄마가 더 힘들었을 거야. 이미 엄마를 용서했어’라고 꼭 말해주고 싶어요.”

같은 한국 입양인 아내를 만나 18살짜리 딸을 둔 가장이 된 그. 그의 딸은 요즘 한국말 배우기에 한창이란다. “딸을 보면 뿌리찾기는 근원적 성찰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저도 꼭 한국말을 배워 다음 영화를 들고 올 땐 한국말로 대화하고 싶네요.”

자신의 영화가 한국인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입양아들이 희생자로 그려지는 것도 원치 않는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 위한 영화가 아녜요. 유럽인도, 한국인도 아닌 한 아이가 자라서 살아남은 과정에 대한 이야기죠. 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입양아들 전체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그는 마지막 한 마디에 힘을 실었다. “지난 60년 동안 해외로 간 한국인 입양아가 20만명이래요.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나요? 이제 멈출 때가 됐습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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