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신촌좀비만화>는 류승완, 한지승, 김태용 등 3명의 스타 감독이 참여한 3D 옴니버스 영화다. 한국영화아카데미가 할리우드와 다른 한국적 3D 미학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기획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신촌, 좀비, 만화.
1일 막을 올린 15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 <신촌좀비만화>는 제목만으로 그 내용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세 단어의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신촌좀비만화>는 신촌·좀비·만화를 각기 소재로 한 세 편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다. 이들 세 편의 공통점은 3D로 제작됐다는 것, 그리고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유명 감독들이 연출했다는 점이다.
<베를린> <부당거래> 등을 통해 한국 장르영화의 대표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류승완 감독은 첫번째 이야기 <유령>을 연출했다. 2012년 세상을 발칵 뒤집은 ‘신촌 사령카페 살인사건’을 모티브 삼았다. 가해자들이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되기까지를 3D 카메라로 쫓는데, 이 과정에서 대면 없이 스마트폰 메신저로만 소통하는 요즘의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로까지 이어진다. 류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런 황당한 일이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현대사회에서 에스엔에스의 등장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이 바뀐 데 대한 저의 시선도 반영했다”고 말했다.
신촌·좀비·만화 소재로
류승완·한지승·김태용 등 대표감독
3편의 옴니버스 영화 연출
유일한 공통점은 ‘3D’로 제작
시각적 쾌감보다 감정선에 충실
“한국적 3D…산업적 기대도 커”
두번째 이야기 <너를 봤어>는 좀비물과 멜로물을 버무린 독특한 형태의 영화다. 영화 <고스트 맘마> <싸움> 등과 드라마 <연애시대>를 연출한 한지승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좀비 바이러스 창궐과 치료제 개발 이후 인간과 좀비 출신 치료자들이 공존하게 된 세상. 공장 작업반장인 인간 여울(박기웅)과 노동자인 좀비 치료자 시와(남규리)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쫓으며 숨겨진 비밀에 다가간다. 한 감독은 “요즘 세상이 뭔가 많이 잘못돼가고 있는데, 이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까지 미쳐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시점을 떠올리게 됐다”며 “인간과 좀비는 계급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편 <피크닉>은 세 편 가운데 백미로 꼽을 만하다. <가족의 탄생> <만추> 등을 통해 섬세한 연출력을 발휘한 김태용 감독의 작품이다. 바닷가 마을에 사는 여덟살 소녀 수민(김수안)이 자신과 엄마를 힘들게 만드는 존재라고 여기는 자폐아 동생을 데리고 둘만의 소풍을 떠나는 얘기를 그렸다. 만화를 좋아하는 수민이 숲 속에서 만화 주인공들을 만나게 되는 초현실적 장면에서 3D 카메라가 효능을 제대로 발휘한다. 김수안은 김새론, 갈소원 등 요 몇년 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천재 아역배우’의 계보를 이을 만한 연기를 보여준다. 김 감독은 “수안이를 만난 건 이 영화의 행운”이라고 극찬했다. 천재 음악가로 일컬어지는 정재일이 만든 영화음악 또한 영화의 울림을 더욱 깊게 한다.
<신촌좀비만화>는 한국영화아카데미가 국내 3D 영화의 활성화를 위해 스타 감독 3명과 손잡고 추진한 프로젝트다. 단순히 할리우드의 화려한 3D를 모방하는 게 아니라 한국적인 3D 미학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로 마련했다. 실제로 영화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3D 영화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시각적 쾌감보다는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좀더 세밀하게 전달하기 위해 3D 기법을 활용하는 데 주안점을 둔 듯하다.
김 감독은 “평소 영화를 만들 때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영화 안 세계를 진짜처럼 체험하고 등장인물의 마음을 잘 이해하도록 할까를 고민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3D보다 2D가 더 낫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번 작업을 하면서 영화 속 세계를, 인물의 마음을 이렇게 3D로 표현하면 관객들이 다른 각도로 볼 수 있구나 하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고석만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개막작은 보통 세계적 권위를 가진 작품을 고르는데, 이번에 한국 영화를 선정했다고 해서 깜짝 놀랐고 즐거웠다”며 “새로운 매체에 대한 의미 있는 시도를 담은 개막작은 진정한 의미의 융합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제 쪽은 “한국 3D 영화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산업적 기대도 큰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신촌좀비만화>는 예매 시작 2분9초 만에 매진됐을 정도로 일반 관객들 사이에서도 큰 관심을 모았다. 영화는 오는 15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전주/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신촌·좀비·만화 소재로
류승완·한지승·김태용 등 대표감독
3편의 옴니버스 영화 연출
유일한 공통점은 ‘3D’로 제작
시각적 쾌감보다 감정선에 충실
“한국적 3D…산업적 기대도 커”
<신촌좀비만화>의 두번째 이야기 <너를 봤어>.
<신촌좀비만화>의 마지막 편 <피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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