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우 감독의 새 영화 <인간중독>은 1960년대 말 군 관사에서 펼쳐지는 진평(송승헌)과 부하의 아내인 가흔(임지연)의 사랑을 그린다. 한국판 <색·계>로 주목받았지만, 주연배우들의 어색한 연기, 다소 김빠지는 클라이맥스 등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호호호비치 제공
[문화‘랑’] 영화
‘공인된 키스는 훔친 키스보다 감미롭지 못하다’(기 드 모파상)고 했다. 그래서일까? 모든 예술작품에서 그려지는 애틋한 사랑은 ‘금지된 사랑’이기 일쑤다. 남몰래 스치는 손끝에서 짜릿함을 느끼는 은밀한 사랑, 그러나 탄로 났을 때 가진 모든 것을 대가로 치러야 하는 치명적 사랑. <정사>,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의 각본을 맡았고 <음란서생>, <방자전>을 연출한 자타공인 ‘19금 영화 전문’ 김대우 감독이 그 잔인하지만 아름다운 공식을 담은 새 영화 <인간중독>(14일 개봉)을 들고 관객들을 찾았다. 그것도 송승헌이라는 ‘이 시대 최고 미남’ 배우를 앞세워서.
<인간중독>은 그 소재의 참신함이 먼저 눈길을 끈다. 영화는 베트남전 막바지였던 1969년, 군 관사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김진평(송승헌)은 장군 장인을 뒀으며, 베트남전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최고의 엘리트 군인이다. 그의 아내 이숙진(조여정)은 아버지의 힘과 자신의 내조를 바탕으로 진평을 장군으로 만들려는 야망을 가진 똑똑한 여성이다. 어느 날 부하 경우진(온주완)과 그의 화교 출신 아내 종가흔(임지연)이 진평의 관사 옆집으로 이사를 온다. 진평은 첫눈에 가흔에게 반하게 되고, 둘은 피할 수 없는 운명적 사랑에 빠져든다.
김대우 감독의 ‘인간중독’
1960년대말 군 관사 소재
장교의 파국적 사랑 그려
어색한 연기와 진부한 결론
소소한 웃음코드는 합격점
소재의 참신함에 견줘 <인간중독>은 파국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는 ‘결론의 진부함’을 태생적 약점으로 가진다. 부하의 아내와 불륜에 빠진 고급장교의 사랑이 환영이나 이해를 받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는 그들의 사랑을 풀어나가는 방식을 통해 관객과 교감해야만 한다. 하지만 <인간중독>은 스토리텔링에서 관객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 특히 둘의 사랑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는 과정은 너무나 갑작스러워 어이없다는 느낌마저 준다. 철저히 숨겨온 사랑이 들통 날 듯 말듯 하며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줘야 할 클라이맥스 부분이 ‘술로 인한 실수’로 처리되면서 맥이 빠진다.
‘19금 파격 멜로’를 내세운 장르적 특성과 감독이 전작에서 보여줬던 미려한 정사신을 고려하면 <인간중독>의 베드신과 애정신도 기대감을 충족시키기엔 다소 부족한 느낌이다. 여러 차례 등장하는 정사신 중 단 한 장면도 압도적인 미장센을 보여주지 못한다. 한국판 <색·계>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김대우 감독 역시 “어른이 어른에게 보내는 영화이기 때문에 파격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며 “누굴 사랑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이고 아름다운 행위들을 스크린에 표현해내고 싶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의 이미지와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었다”던 송승헌은 부담감 때문인지 연기에 몰입하지 못한 흔적이 역력하다. 대사가 많지 않은 ‘내성적인 남성성’을 표현해야 하는 역할임에도 핵심적인 몇 마디에 실리는 감정과 연기력이 부족하다. “노출보다 부하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는 설정 자체가 도전이었다”는 말에서도 그가 느꼈을 부담감이 배어 나온다. 가흔 역의 임지연 역시 독특하고 묘한 매력을 풍기는 외모기는 하지만 첫 장편 데뷔라 그런지 어색함을 떨치지 못한다. 오히려 전작들과 달리 제대로 된 베드신 한 번 없이 오직 ‘연기 변신’만으로 승부한 조여정이 빛을 발한다. 그는 “진평이 느끼기에 함께 있으면 (감정의) 온도가 안 맞아 숨이 막히는 그런 여자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성공한 셈이다.
감독의 전작들에서도 두드러졌던 소소한 웃음코드는 합격점을 줄 만하다. 엄격한 위계질서와 상하관계가 남편들뿐 아니라 부인들 사이에서도 적용되는 ‘군 관사’의 특징을 잘 살려낸 에피소드들이 눈에 띈다. 관사에 사는 부인들이 “우리 집에 김치 좀 담그러 오라”며 남편의 계급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는 장면 등은 진부하지만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군인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군 관사에서 살았다”는 김대우 감독의 개인적 경험이 드러나는 장면들이다. 바흐의 음악이 흐르는 60년대 음악감상실, 부인들이 쓰는 찻잔 하나하나, 입고 있는 옷의 무늬나 질감 등에서 묻어나는 세밀한 미장센도 작은 볼거리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구릿빛으로 살을 태우고 각 잡힌 군복을 입은 송승헌의 모습은 ‘왜 여자들이 군복 판타지에 빠지는지’ 보여준다. 그의 열성팬이라면 이것만으로도 눈이 충분히 즐거울 수는 있겠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김대우 감독의 ‘인간중독’
1960년대말 군 관사 소재
장교의 파국적 사랑 그려
어색한 연기와 진부한 결론
소소한 웃음코드는 합격점
소재의 참신함에 견줘 <인간중독>은 파국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는 ‘결론의 진부함’을 태생적 약점으로 가진다. 부하의 아내와 불륜에 빠진 고급장교의 사랑이 환영이나 이해를 받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화는 그들의 사랑을 풀어나가는 방식을 통해 관객과 교감해야만 한다. 하지만 <인간중독>은 스토리텔링에서 관객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 특히 둘의 사랑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는 과정은 너무나 갑작스러워 어이없다는 느낌마저 준다. 철저히 숨겨온 사랑이 들통 날 듯 말듯 하며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줘야 할 클라이맥스 부분이 ‘술로 인한 실수’로 처리되면서 맥이 빠진다.
영화 <인간중독> 장면 갈무리. 호호호비치 제공
영화 <인간중독> 장면 갈무리. 호호호비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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