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성훈 감독. 그는 어린 시절 친척이 운영하던 ‘극장’을 놀이터 삼으며 자랐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 전공과 무관하게 “어린 시절처럼 재밌게 놀고 싶어 충무로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여기까지 왔다”며 웃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칸 진출 ‘끝까지 간다’ 김성훈 감독
2006년 충무로 입봉 뒤 7년간 백수
마음 벼리며 완성한 시나리오로
칸 국제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
“이제 막 걸음마…내 색깔 찾겠다”
2006년 충무로 입봉 뒤 7년간 백수
마음 벼리며 완성한 시나리오로
칸 국제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
“이제 막 걸음마…내 색깔 찾겠다”
“영화를 찍다보니 제게도 영화 같은 일이 생기네요. 영어공부 좀 열심히 해둘걸.”
14일 개막하는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끝까지 간다>의 김성훈(43) 감독. 칸에 출품한다는 배급사의 말에 “오버 아니냐”고 했을 정도로 상상조차 못했다고 한다.
칸‘감독주간’은 비경쟁 부문이긴 하지만 마틴 스코시즈, 조지 루카스 등 명감독들이 첫 장편을 선보인 섹션이다. 국내에서는 <박하사탕> 이창동, <그때 그 사람들> 임상수, <괴물> 봉준호,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홍상수 감독 등이 초청을 받았다. 그에 견줘 김 감독은 영화 팬들조차 고개를 갸우뚱했을 정도로 인지도가 낮고 필모그래피도 초라하다. 그는 <오!해피데이>(2003)와 <그 놈은 멋있었다>(2004)의 조연출을 거쳐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2006)으로 입봉했다.
“충무로에 입성 뒤 운 좋게 일찍 입봉을 했죠. 그래서인지 교만했어요. 지금 보면 민망하지만 아마 <애정결핍…> 찍을 당시 감독으로서의 제 됨됨이가 딱 그만큼밖에 안 됐던 것 같아요.” 그 뒤 7년 넘게 작품을 내지 못하면서 말 그대로 ‘백수신세’였다. “모아 놓은 돈 다 까먹고 아내와 형제들에게 의존해 생활하면서 ‘자기부정 →슬픔→분노→우울’의 단계를 오갔어요. 하지만 더 정교하고 완벽한 시나리오를 쓰자고 스스로를 다독였죠.” <끝까지 간다> 각본은 그렇게 탄생했다.
<끝까지 간다>는 어머니 장례식날 공교롭게 감찰 조사를 받게 된 형사 고건수(이선균)가 경찰서로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내고, 이를 은폐하려는 ‘잘못된 선택’을 하면서 벌어지는 범죄·스릴러·액션 영화다.
<끝까지 간다>는 최근 개봉한 <역린>같은 멀티 캐스팅도, <표적>같은 묵직한 액션도, <인간중독>같은 센세이션함도 없다. 하지만 약점은 촘촘한 각본과 영리한 연출 덕분에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했다. “모든 것이 현실적이었으면 했어요. 사건과 사건의 이음새도, 이선균과 그를 괴롭히는 조진웅(창민)의 캐릭터와 액션신도. 그래서 두 배우들은 진짜 때리고 맞는 ‘개싸움’을 해야 했고, 19층 난간에 매달리는 장면도 실제로 연기해야 했죠. 두 배우에게 고마워요.”
영화의 아이디어는 우연히 찾아왔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귀향>을 보던 중 여자가 남자의 시신을 냉장고에 넣어 묻는 장면을 보고 퍼뜩 든 생각이었다. “내가 살인을 한다면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까? 무덤 속에 묻자. 근데 누구 무덤에? 불경스럽지만, 죽어서도 나를 보호해줄 사람은 어머니가 아닐까? 이렇게 좋은 방법이 있는데, 살인자들 참 게으르기도 하지. 이런 식으로요.” 이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 천 조각의 퍼즐이 맞춰지듯 하나의 완벽한 이야기로 탄생했다.
<끝까지 간다>에는 경찰(공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도 여럿 등장한다. ‘경찰의 초심=연금 수령(정년퇴직)’으로 묘사되거나, 대통령 코드에 맞춰 ‘4대악 인형’을 폭파시키는 장면 등이다. “경찰은 극도의 도덕성을 갖춰야 할 집단이기에, 그렇지 못했을 때 대비가 확 되잖아요. 일부러 경찰을 깎아내리려 한 건 아니지만, 어차피 영화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반영 아닐까요?”
칸 ‘감독주간’에 초청된 감독들은 대개 색깔이 분명하다. 김 감독의 색깔을 물었다. “장르적으로 이 공간 저 공간 돌아다니며 맞는 색을 찾고 싶어요. 이제 막 기저귀 떼고 걸음마 시작한 셈이니. 아! 절대 하지 않을 장르는 있네요. ‘공포 영화’요. 겁이 워낙 많아 <주온> 같은 영화 보면 며칠 잠을 못자거든요.” 29일 개봉.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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