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영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브라질 명작 46년만에 영화로
어른·아이 모두를 위한 성장 동화
원작 충실히 재현하며 감동 전달
브라질 명작 46년만에 영화로
어른·아이 모두를 위한 성장 동화
원작 충실히 재현하며 감동 전달
‘고전의 영화화’는 오래된 유행이다. 지난해만도 <레 미제라블>, <위대한 개츠비>, <안나 까레니나> 등이 영화로 만들어져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명작이 가지는 묵직한 힘에 잘 짜인 연출이 버무려지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브라질 국민 작가 바스콘셀로스의 동명 소설(1968)을 바탕으로 한 영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사진·29일 개봉)는 이러한 공식이 아동용 고전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섯살 제제는 하루도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말썽을 부리는 장난꾸러기다. 식구들은 ‘네 속에 악마가 들었다’고 제제를 혼낸다. 제제네 집은 가난하다. 아빠는 실직을 했고, 엄마는 멀리 공장에 다닌다. 누나들이 살림을 맡는 집에서 제제는 경제적 결핍뿐 아니라 정서적 결핍에 시달린다. 제제의 친구는 안 뜰에 뿌리를 내린 라임 오렌지 나무 한 그루뿐이다. 제제는 오렌지 나무에 ‘밍기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대화를 하며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어느날 제제는 동네에서 가장 부자 중 한 명인 포루투갈인(뽀르뚜가)의 자동차 범퍼에 올라타는 장난을 치다 볼기짝을 맞는다. 그 후 괴팍한 줄로만 알았던 뽀루뚜가에게 우연히 도움을 받게 되고, 제제는 가족으로부터 받은 적 없는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그와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나누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이야기를 46년 만에 책 밖으로 끌어내며 감독이 택한 전략은 오직 ‘활자의 시각화’뿐이다. 영화는 원작을 스크린 위에 충실하게 재현해내며 원작이 가진 감동의 깊이까지 그대로 전한다. ‘죽인다는 것은 마음속에서 사랑하기를 그만두는 것’, ‘슬플 때 서로 세게 껴안으면 심장이 다시 따뜻해진다’등 원작 속 가슴을 울리는 구절들도 그대로 인용된다. 제제 역을 맡은 후아오 기에메 아빌라의 천진한 외모와 능청스런 연기는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과 감동을 주는 원작 소설처럼, 영화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제제의 외로움이 경제적 궁핍 탓에 마음의 여유마저 잃은 가족과 동심을 이해해주지 않는 세상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제제가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택한 방법이 바로 ‘몽상’, 그래서 조숙한 몽상가 제제는 사랑스러우면서도 안쓰럽다.
“사랑하는 뽀르뚜가.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새가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오듯, 제제는 뽀르뚜가의 비극적 사고를 통해 해맑은 상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어른의 세상’으로 나온다. 하지만 뽀르뚜가를 만나 사랑을 배운 제제는 그냥 어른이 아니라 ‘순수한 동심을 간직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 영화가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모든 아이들은 제제다. 그래서 모든 어른들은 뽀르뚜가가 돼야 한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수키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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