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여정
‘표적’ ‘인간중독’ 열연 조여정
“지금은 ‘연기’만을 짝사랑 중”
“지금은 ‘연기’만을 짝사랑 중”
19살에 데뷔했지만 10년 동안 대표작 하나 없었다. 긴 설움 끝, 29살에 영화 <방자전>에서 ‘춘향’ 역을 맡아 한복을 입은 아름다운 자태와 과감한 노출 신으로 화제를 뿌리며 뒤늦게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후궁: 제왕의 첩>에서 한발 더 나아간 관능미를 선보였다. 그래서일까? 그의 이름 뒤에는 항상 ‘베이글녀’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그랬던 조여정(33·사진)이 올해 <표적>과 <인간중독>에서 노출 신 한 번 없이 오직 ‘연기’만으로 승부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표적>에서는 납치된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강인한 면모를 보이는 ‘희주’를, <인간중독>에서는 남편을 장군으로 만들겠다는 야망에 불타는 ‘숙진’을 연기했다. ‘조여정이 진짜 배우가 됐다’는 등 좋은 평가가 나온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최근 만난 조씨는 “이번엔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고 했다. “여배우로서 <인간중독>의 주연인 ‘종가흔’(임지연) 역이 왜 탐나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원작 소설을 읽으며, 이건 내가 할 역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대우 감독님이 <방자전>에서 저를 제일 예쁜 ‘춘향’으로 만들어주셨고, 이번엔 저의 다른 면을 끌어내 주려 한 거죠.” 그는 가흔이 아닌 숙진 역으로 제안이 왔을 때 “참 기뻤다”고 했다.
어찌 보면 더 젊고 예쁜 여배우에게 밀린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었을 터. 그러나 조씨는 “제 나이가 33살이에요. 나이에 맞는 역할이 있다는 건 행복한 거죠. 지금은 나이 드는 것도 행복해요”라고 했다. 오랜 무명 생활을 하는 동안 깨달은 가장 큰 교훈이란다. “그땐 저를 ‘배우’로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누군가 불러줘야 비로소 ‘배우’로 설 수 있다는 걸 배웠죠. 그래서 배우라는 이름이 제겐 너무 큰 칭찬이에요.”
요즘 충무로에서 ‘여배우 기근이 심하다’는 말이 나오지만, 조씨는 그 기근을 풀어주는 여배우 중 한명이다. 요즘도 올 하반기 개봉할 코미디 영화 <워킹걸>의 막바지 촬영으로 바쁘다. 이번 영화에서는 알파걸이지만,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은 잘 모르는 헛똑똑이 ‘보희’ 역을 맡았다. “영화마다 제가 맡은 캐릭터 속에서 저 자신을 보게 돼요. <표적> 속 희주의 침착함, <인간중독> 속 숙진의 활발함은 제 실제 모습이죠. <워킹걸> 속 보희가 가장 비슷한 점이 많은데, 일에선 똑 부러지지만 실생활에선 어리바리한 ‘생활의 바보’ 같은 점이 딱 저예요.”
이제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시점. 여자로서 연애나 결혼도 생각할 나이다. 하지만 그는 “그건 지금 내 인생의 화두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20대 무명 시절, 젊음을 즐기며 연애도 실컷 했기 때문이란다. “지금은 짝사랑 중이에요. 오직 ‘연기’만을. 너무 좋아서 고민되고, 그러면서도 어려운 걸 보면 아직도 ‘사랑’이 아닌 ‘짝사랑’인 것이 확실하네요.”
앞으로의 꿈이나 목표를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거 없어요. 열심히 일한 뒤 집에 돌아갈 때 뿌듯하고, 다음날 눈떴을 때 또다른 숙제가 기다리고 있어 설레는 삶, 그렇게 살면 후회 없는 인생이지 않을까. 그 뿐이에요.”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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