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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여러분의 공공재는 어떻습니까”

등록 2014-06-19 19:13수정 2014-06-19 19:49

<블랙딜>은 우리보다 앞서 민영화를 추진한 칠레 등 7개국을 취재해 효율성이라는 허울 뒤에 감춰진 민영화의 어두운 그림자와 민·관 사이의 검은 거래를 파헤친다. 인디플러그 제공
<블랙딜>은 우리보다 앞서 민영화를 추진한 칠레 등 7개국을 취재해 효율성이라는 허울 뒤에 감춰진 민영화의 어두운 그림자와 민·관 사이의 검은 거래를 파헤친다. 인디플러그 제공
다큐 ‘블랙딜’ 내달 3일 개봉
민영화 폐해 7개국 심층 취재
어두운 그림자 파헤치면서도
다양한 시각 담담하게 전달
“박대통령 가장 먼저 봤으면”
‘사망자 292명, 실종자 12명’을 낳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어느덧 두 달. 이 사건의 주요 원인은 수익 극대화를 위한 정부의 ‘규제완화’와 ‘민영화’, 이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과 부패였다. 조사 결과 선박회사는 수익을 높이기 위해 화물을 과적하고 승객의 안전을 등한시했다. 민간 감독기관은 선박회사의 문제점을 알고도 봐주기식 점검만 일삼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는 그동안 우리가 무관심했던 ‘민영화’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자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다음달 3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블랙딜: 누구를 위한 민영화인가>는 ‘효율과 이윤’이라는 허울에 가려진 민영화의 어두운 그림자를 낱낱이 파헤치는 영화다. 이 영화는 개인들의 자발적 후원을 통한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됐다.

<블랙딜>은 미국 의료민영화의 민낯을 까발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 <식코>와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의료비 탓에 사고로 10㎝ 넘게 찢긴 무릎을 직접 꿰매는 백수 청년의 모습(<식코>) 같은 다소 자극적인 사례 따윈 등장하지 않는다. “당당하게 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라”는 무어 감독의 외침 같은 직접적 호소도 없다.

대신 <블랙딜>은 한국보다 먼저 공공부문 민영화를 추진했다가 그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는 칠레, 아르헨티나, 영국, 프랑스, 일본, 독일 등 7개 국가의 현실을 촘촘하고 밀도 높은 취재를 통해 자세히 ‘보여줄’ 뿐이다. 부채 감축을 위해 민영화한 아르헨티나의 지하철은 지저분한데다 수십명이 사망하는 대형사고가 잇따른다. 콩나물시루 같은 아르헨티나의 지하철은 문도 닫지 않고 고속으로 운행 중이다. 칠레는 국민들의 동의도 받지 않고 국민연금을 민간연금으로 전환했다. 수십년 동안 낸 부담금에 견줘 은퇴자가 지급받는 연금액은 형편없다. 수도와 하수도를 민영화했던 프랑스는 천정부지로 뛰는 수도세를 견디다 못한 주민들의 반발로 수도를 다시 공영화하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영국, 일본, 독일 역시 다양한 공공재를 민영화했지만 시민들은 급등하는 비용과 낮은 서비스, 각종 사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민영화의 뒤편에는 언제나 민간과 정치권 사이의 ‘검은 거래’, 즉 ‘블랙딜’이 있었다.

영화 <블랙딜> 속 한 장면.
영화 <블랙딜> 속 한 장면.
영화는 민영화의 피해자, 민영화에 무관심한 국민들, 공공기업 종사자는 물론 민간기업 시이오의 입장을 다각적으로 보여준다. 대부분의 다큐가 일방적인 시선이나 문제의식을 ‘강요’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관객들은 각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민영화에 대한 극단적인 견해 차이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민중가수 정태춘의 나직한 내레이션 역시 영화를 중립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또한 <블랙딜>은 어떠한 해답도 제시하지 않는다. 단지 담담하지만 묵직한 질문만 던질 뿐이다. “여러분의 공공재는 어떻습니까?”

지난해 철도노조 파업으로 시작된 ‘철도 민영화 논란’은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다. 하지만 파업이 마무리되고, “수서발 케이티엑스의 지분을 민간에 매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부의 ‘호언장담’을 끝으로 이 사안은 기억 저편으로 멀어져갔다. 이훈규 감독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지하철과 단전 문제를 놓고 시위를 하지만 ‘저항의 대상’이 누군지 잊어버린 지 오래”라며 “당장 눈앞의 문제만 해결되면 안심하는 기억과 망각이 우리 영화의 주제다. 기억하지 않으면 처참한 미래가 온다”고 경고했다.

2008년 <식코>가 개봉했을 때 누리꾼들은 ‘대통령님, 국민들과 함께 <식코>를 관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서명운동을 벌였다. 의료민영화에 팔을 걷어붙였던 이명박 정부를 겨냥한 것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굳건히 민영화를 추진하는 박근혜 정부 탓에 어쩌면 <블랙딜> 역시 이런 누리꾼 청원운동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고영재 프로듀서 역시 “(영화를) 가장 먼저 대통령이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이 질문에 대해 국민들은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 “여러분의 공공재는 어떻습니까?”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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