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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포석은 잘 깔았지만 ‘신의 한수’는 없었다

등록 2014-06-26 19:12

<신의 한 수>는 멀티캐스팅과 화려한 액션 등으로 여름 오락영화의 전형적 흥행 공식을 따랐다. 하지만 <타짜>를 보는 듯한 기시감은 약점으로 꼽힌다. 호호호비치 제공
<신의 한 수>는 멀티캐스팅과 화려한 액션 등으로 여름 오락영화의 전형적 흥행 공식을 따랐다. 하지만 <타짜>를 보는 듯한 기시감은 약점으로 꼽힌다. 호호호비치 제공
[문화‘랑’] 영화
정우성·안성기·이범수 등
멀티캐스팅에 화려한 액션
줄거리와 캐릭터 측면에선
‘타짜’의 기시감 떠올라
흥행공식 기댄 안전한 선택
정교한 형세판단으로 ‘바둑계의 컴퓨터’라고 불리는 일본의 바둑기사 이시다 요시오 9단은 “묘수를 두어 이기기보단 악수를 두어 지는 경우가 많다”는 명언을 남겼다. 강호의 실력자들이 겨루는 바둑판에서 묘수를 두기란 쉽지 않고, 결국 악수를 두는 실수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 <신의 한 수>(7월3일 개봉)를 보면 이 말이 떠오른다. <신의 한 수>는 한마디로 묘수를 두기 위한 ‘모험’을 하는 대신 악수를 피하는 ‘안정성’을 택한 영화기 때문이다.

영화 <신의 한 수>.
영화 <신의 한 수>.
영화는 태석(정우성)이 친형인 우석(김명수)의 부탁으로 내기바둑에 합류하면서 시작된다. 프로 바둑기사인 태석이지만 거대 내기바둑 조직에 당해 승부에서 지게 되고, 형은 우두머리 살수(이범수)에게 살해를 당한다. 태석은 형을 죽였다는 누명까지 쓰고 교도소에 가게 된다. 교도소 복역 중 조직폭력배 두목을 만난 태석은 바둑을 가르쳐주고 대신 싸움의 기술을 전수받으며 복수를 준비한다. 출소한 태석은 장님이지만 바둑 고수인 ‘주님’(안성기), 실력은 없지만 입담이 좋은 ‘꽁수’(김인권), 한때 내기바둑판의 기술자로 군림했던 외팔이 ‘허목수’(안길강) 등 살수에게 원한이 있는 인물들을 모아 복수에 나선다. 태석 일행은 내기바둑 조직의 얼굴마담 ‘선수’(최진혁),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내기바둑판의 꽃으로 불리는 ‘배꼽’(이시영) 등 살수 조직원들에게 조금씩 접근하며, 짜여진 계획대로 상대를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신의 한 수>는 한국 영화의 기존 흥행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멀티캐스팅을 통해 한 명 한 명에게 역할을 배분하고, 어느 한 인물에 치우치지 않게 각 캐릭터의 매력을 강조한다. 전반부와 중반부 이후 폭이 크게 변하는 정우성의 연기, 악역을 맡은 이범수의 변신, 안성기와 김인권의 안정적인 뒷받침은 큰 흠 잡을 곳이 없다. 강렬하면서도 자극적인 액션신도 선보인다. 뛰어나게 감각적이진 않고 다소 잔인하기도 하지만 액션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겐 눈요깃거리로 충분하다.

영화 <신의 한 수>.
영화 <신의 한 수>.
정우성의 트레이드마크인 ‘매끈한 슈트발’과 복싱으로 다져진 이시영의 ‘뇌쇄적 몸매’도 십분 활용한다. 후속편을 예고하는 듯한 영화의 마지막 복선도 흥미롭다. 전체적으로 흥행의 ‘묘수’까지는 아니라도 ‘호수’는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신의 한 수>는 약점도 있다. 바로 기시감이다. 엎치나 메치나 <타짜>가 떠오른다. 680만명을 동원했던 영화 <타짜>(2006)와 스토리 라인은 물론 캐릭터도 겹쳐 보인다. 사기 바둑으로 형을 잃고 복수에 나선다는 줄거리는 사기 화투로 모든 것을 잃고 복수의 칼을 가는 <타짜>와 닮았다. 주인공 태석은 ‘고니’를, 정신적 지주인 주님은 ‘평경장’을, 감초 역할 꽁수는 ‘고광렬’을, 홍일점 배꼽은 ‘정마담’을, 잔인한 악당 살수는 ‘아귀’를 떠올리게 한다.

중요한 점은 국민오락으로 불릴 정도의 대중적 소재인 화투에 인생사를 교묘히 얹어내 인간의 욕망을 꼬집은 <타짜>가 플롯 역시 한 수 위라는 점이다.

물론 <신의 한 수>도 ‘패착’(지게 되는 나쁜 수), ‘착수’(바둑판에 돌을 놓다), ‘포석’(전투를 위해 진을 치다), ‘행마’(조화를 이뤄 세력을 펴다), ‘회도리치기’(연단수로 몰아치는 공격), ‘곤마’(적에게 쫓겨 위태로운 돌), ‘사활’(삶과 죽음의 갈림길) 등 바둑 용어를 이용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나 소재인 바둑은 영화의 ‘양념’에 불과하다. “머리를 쓰러 왔다가 몸을 쓴다”는 대사처럼 바둑으로 하는 두뇌싸움보단 몸으로 하는 ‘액션’이 위주다.

어쩌면 감독은 바둑에서 말하는 ‘욕탐불승’(너무 욕심을 부리면 이기기 어렵다)을 염두에 두고 안정적 연출에만 힘을 쏟았는지도 모르겠다. 여름철 더위를 식힐 오락영화로 나쁘진 않지만, 무릎을 탁 치게 할 ‘신의 한 수’가 없어 못내 아쉽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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