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역을 맡은 최민식은 “그토록 위대한 분께 누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지금도 개운치 않다”며 “지금껏 연기해온 중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문화‘랑’] 영화
‘명량’ 이순신 열연 최민식 인터뷰
난중일기 읽을수록 엄청난 존재감
이토록 강박감에 시달린 건 처음
분노 삭이는 내면의 눈빛 연기 고심
출정 직전 비장한 연설땐 ‘찌릿찌릿’
가슴 뛰는 뜨거운 경험 공유했으면
‘명량’ 이순신 열연 최민식 인터뷰
난중일기 읽을수록 엄청난 존재감
이토록 강박감에 시달린 건 처음
분노 삭이는 내면의 눈빛 연기 고심
출정 직전 비장한 연설땐 ‘찌릿찌릿’
가슴 뛰는 뜨거운 경험 공유했으면
최민식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다. 그에게선 늘 묵직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2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을 땐 흡사 다른 사람 같았다. “내가 참 초라해진 느낌”이라고 그는 말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든 걸까?
“이순신 장군 때문”이라고 했다. 30일 개봉하는 영화 <명량>에서 그가 맡은 배역이다. 연기가 힘들어서? 그는 좀더 근본적인 얘기를 꺼냈다.
“처음엔 별생각 없었어요. 그런데 <난중일기>와 관련 책을 읽을수록 어마어마한 존재감으로 다가옵디다. 과연 이렇게 완벽한 인간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죠. 무엇보다 ‘실천’을 했다는 게 위대합니다. 장수가 앞에 나서야 한다는 걸 누구나 알지만, 실제로 목숨을 걸어야 할 때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거죠. 왕의 신임은커녕 죽임까지 당할 뻔했는데도 그분은 충성을 맹세하고 목숨을 걸었어요.”
그는 “이런 것들이 조작이나 과장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라는 게 더 절망스러웠다”고 했다. 절망까지나?
“그런 위대한 분을 연기한다는 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어요. 누가 돼선 안 된다는 생각, 송구한 마음뿐이었죠. 허구의 인물을 연기할 땐 상상력을 발휘해 자유롭게 창작하는데, 이분은 실제니까 그게 잘 안되는 거예요. 실제로 그분은 어떻게 말을 했고, 눈빛은 어땠는지를 알 길이 없으니 막막하더라고요. 연기하고 나서도 찝찝하고 개운치 않았죠. 왜 이렇게까지 강박을 갖게 된 건지…. 지금도 확신이 안 서고 자신감이 없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에요.”
결국 택한 길은 최대한 감추는 것이었다. “마음은 회오리바다 같았을 겁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밤을 지새우게 하는 분노, 억울함, 원통함…, 이런 걸 내색하지 말고 안으로 삭이고자 했어요. 이를 미세한 눈빛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나의 지금 이 눈빛은 아닐 거다. 더 정확한 눈빛을 찾아야 한다’는 자책과 강박감만 계속 들고….”
시종일관 억누르는 연기를 했지만, 딱 한번 감정을 폭발시키는 대목이 있다. 주조하던 단 한 대의 거북선이 출정 직전 불타는 장면에서다. 그는 “거북선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있었는데, 그것마저 무너져내리면서 그간 쌓였던 울분을 한꺼번에 터뜨린 것”이라며 “기록에 없는 허구의 장면이었기에 상상력을 발휘하며 연기를 좀 편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순신을 연기한다는 게 그를 끊임없이 괴롭고 힘들게 했지만, 위안이 될 때도 있었다. “출정 직전 비장한 각오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연설할 때였어요. 몸 상태가 안 좋았는데, 부하 장수와 병사들이 각자의 마음으로 나를 바라봐주는 거예요. 누구는 울고, 누구는 ‘우리 이제 다 죽는구나’ 하고, 누구는 ‘장군님 마음 다 압니다’ 하고.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는데 말이죠. 그 순간 굉장히 찌릿찌릿했어요. 위안과 도움이 됐죠.”
최민식은 애초 김한민 감독으로부터 배역을 제안받았을 때 거절하려 했다고 한다. “나름 영화판 짬밥으로 그려보니, 잘못하면 본전도 못 찾겠더라고요. 관객은 많이 안 드는데 돈은 많이 들고, 국내 시지(CG·컴퓨터그래픽) 기술도 아쉬울 테고. 그런데 ‘그런 위대한 인물을 상업영화에서 꼭 다루고 싶다’는 김 감독의 진정성이 마음을 움직였어요. 사실 술기운에 덜컥 오케이 한 것도 있죠.”
그는 “흥행 성패를 떠나 이순신을 알린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이들이 봤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명량>에 이어 <한산> <노량>까지 이순신 3부작을 만드는 게 김 감독의 숙원사업이라 합디다. <명량>이 잘돼야 후속작을 할 수 있겠죠. 또 이 영화가 잘되면 윤봉길 의사를 영화화한다든지 하는 시도도 나올 테고요. <명량>이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많은 분들이 작품의 메시지에 가슴이 뛰고 뜨거운 게 치밀어오르는 경험을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이순신 후속작에도 출연할 거냐는 물음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안 해요, 안 해. 이걸로 족해요.”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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