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의 한장면
영화 ‘명량’ 흥행 돌풍
개봉 8일째 관객 700만 돌파
원톱 캐스팅·무거운 주제에도
정치 불신이 관객 끌어모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에서
헌신하는 지도자가 주는 울림 커
개봉 8일째 관객 700만 돌파
원톱 캐스팅·무거운 주제에도
정치 불신이 관객 끌어모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에서
헌신하는 지도자가 주는 울림 커
파죽지세다.
11척의 배를 뒤로하고 적진에 뛰어든 대장선의 외로운 싸움이 연일 새로운 기록(그래픽 참조)을 쓰고 있다. 지난달 30일 개봉해 6일 오후 관객 700만명을 돌파한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은 이번 주말을 거치면서 가장 빠른 속도로 역대 12번째 1000만 관객 영화가 될 전망이다. “무릇 장수 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대사가 회자되고 서점가까지 들썩이게 하는 ‘이순신 신드롬’에는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의 근본적 위기에 대한 자각과 지도층에 대한 불신감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 40대 관객층이 흥행 견인 <명량>은 여러 흥행 상식을 뒤엎었다. 우선 주요 관객층. 한국 극장가의 주 관객층은 20~30대이지만 이 영화의 흥행 핵심엔 40대가 있다. 멀티플렉스 체인 씨지브이(CGV)가 개봉 뒤 4일까지 <명량>의 예매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40대 관객층의 비율이 31.7%로 가장 높고 20대와 30대가 뒤를 따른다. 씨지브이 조성진 홍보팀장은 “경쟁작인 <군도>의 경우 20~30대의 예매 비율이 70%에 가깝고 40대는 20%대에 머무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며 “<명량>은 40대가 흥행을 견인하고 20~30대가 뒤를 받쳐주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여기에 성인들이 방학 중 아이들을 데리고 가 보는 영화라는 점도 폭발적으로 관객수를 키웠다. 초등생 아들 2명과 조카 1명까지 함께 봤다는 허윤수(44)씨는 “민족의 영웅인 이순신 이야기이다 보니 아이들 교육에 좋을 것 같아 함께 영화를 봤다”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정지욱씨는 “아이가 원해 부모가 같이 보는 대부분의 여름방학용 영화와 달리 <명량>은 부모가 원해서 아이와 함께 보는 대표적인 ‘에듀테인먼트’(교육+오락) 콘텐츠”라고 분석했다. 실제 씨지브이 분석 결과 40대 예매 표 가운데 25.5%는 ‘청소년 요금제’ 적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관객’ 비율이 높다는 뜻이다.
■ 오락영화·멀티캐스팅 대세 깨 일년 중 극장가 최고 성수기인 7말8초에는 가벼운 오락영화가 주로 먹힌다는 상식도 깨졌다. 정지욱 평론가는 “블록버스터나 오락보다 한국 관객들에게 더 쉽게 다가가는 근본적인 키워드는 애국심”이라며 “<명량>은 이 키워드를 선택하고 마케팅에도 십분 활용했다”고 지적했다.
최근 트렌드인 ‘멀티캐스팅’도 <명량>은 비켜갔다. 올해만 해도 <군도> <신의 한 수> <역린> 등이 각각의 개성과 매력을 가진 배우들을 이용해 관객몰이를 한 것과 달리 사실상 이순신 역의 최민식을 ‘원톱’으로 내세웠다. <명량> 투자·배급사인 씨제이 관계자는 “이순신 장군의 존재감이 워낙 크다 보니 주변 인물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했다”며 “묵직하고 깊이있는 최민식의 연기가 멀티캐스팅을 압도할 만큼 흡인력이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관상> <광해, 왕이 된 남자> 등처럼 최소한의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덧씌운 ‘팩션형 사극’ 바람이 몇년간 거셌던 것과도 대비된다.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정통 역사극이 자칫 지루할 수 있다는 선입견을 <명량>은 ‘영리한’ 정면승부로 넘어섰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씨는 “이순신의 일대기가 아닌 ‘명량대첩’에 초점을 맞춘 감독의 선택이 탁월했다”며 “구조가 단순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것은 12척의 배로 330척의 왜군을 무찔렀다는 역사적 사실 자체가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는 “60분 넘는 해전 신 역시 지루할 수도 있는데, 뛰어난 만듦새로 스펙터클한 볼거리와 카타르시스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고 덧붙였다.
■ 이순신 신드롬의 뒤 무엇보다 사람들이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용기와 지략을 갖춘 지도자의 모습’이다. 이 영화를 두번 봤다는 김충식(38)씨는 “이순신처럼 사심 없이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지도자가 현실에 없다. 현실 정치를 이끄는 사람들에 대한 배반감과 불신이 영화를 더 잘되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주형(39)씨는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다’는 대사에 울컥했다”며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에서 이순신 리더십이 주는 울림이 크다”고 했다. 330척의 ‘거악’을 12척이 깨뜨리는 데서 세월호 등을 통해 봤던 우리 사회의 적폐를 물리칠 희망과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감상도 있다.
서점가도 ‘이순신 열풍’이다. 관련 신간이 줄잇는 가운데 시중에 나온 160여종 중 특히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인터넷서점 예스24에 따르면 7월 첫주 이 사이트에서 71권 팔렸던 이 소설은 영화 개봉 첫 주말을 거친 직후인 4일 하루에만 500권이 나갔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저녁 서울 여의도의 한 극장에서 <명량>을 관람했다. 유선희 이재성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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