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호러’를 내세운 영화 <마녀>에서 압도적 연기를 펼친 박주희는 장편 데뷔작인 이 작품을 통해 영화계의 ‘무서운 신인’으로 떠올랐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문화‘랑’] 영화
‘마녀’ 주연 박주희
오피스 호러물 인상적 연기
자해하는 장면 많이 나와
실제 허벅지 찌르며 연습
감독 OK 해도 “다시 찍어요”
“원톱으로 설 수 있는
힘있는 여배우 되고 싶어”
‘마녀’ 주연 박주희
오피스 호러물 인상적 연기
자해하는 장면 많이 나와
실제 허벅지 찌르며 연습
감독 OK 해도 “다시 찍어요”
“원톱으로 설 수 있는
힘있는 여배우 되고 싶어”
‘우리 회사에 무서운 신입이 들어왔다.’ 지난 11일 개봉한 저예산 영화 <마녀>의 포스터 문구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관객은 자연스럽게 이런 말을 중얼거리게 될 듯하다. ‘우리 영화계에 무서운 신인이 등장했다.’
‘오피스 호러’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를 내세운 영화 <마녀>에서 주인공 ‘세영’ 역을 맡은 박주희(27)는 시종일관 서늘한 표정으로 객석을 압도한다. 깨진 컵의 유리를 ‘아작아작’ 씹어먹고, 날카롭게 깎은 연필로 자신의 손바닥을 찍는 장면보다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전혀 변치 않는 그의 스산한 눈빛이 더 공포스럽다. 첫 장편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그를 지난 4일 만났다.
검은색 짧은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고 나타난 박주희는 ‘뒤뚱뒤뚱’하는 걸음걸이로 첫 대면부터 웃음을 자아냈다. 뭔가 영화 속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평소엔 늘 운동화에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이라는 그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 때문에 화장도 하고 옷도 차려입으니 너무 어색하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친해지면 개구쟁이 같은 진면목을 드러내지만, 초면엔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해 ‘건방지다’는 오해도 많이 산다고. 하지만 <마녀>의 유영선 감독은 오히려 그런 박씨의 ‘다층성’을 맘에 들어했단다. “감독님과 <동면의 소녀>(2012)라는 단편 작업을 같이 하며 친해졌는데, 어느날 연락이 왔어요. ‘<마녀> 시나리오를 쓰는데, 너를 모델로 해서 쓰고 있다’고요. 엄청 영광스럽기도 하지만 또 부담스러웠죠.” 영화 속 립밤을 자주 바르고 손가락 장난을 치는 세영의 버릇은 박주희의 실제 모습에서 따왔다.
<마녀>는 현대인이 집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낸다는 오피스(사무실)라는 공간을 공포로 풀어낸 호러영화다. 보고서 마감 시간을 두고 ‘손가락 하나 자르기’라는 오싹한 내기를 거는 미스터리한 신입사원과 깐깐한 팀장의 대립, 신입사원에 대해 떠도는 무서운 소문과 그것을 추적해가는 팀장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때 학교를 공포의 공간으로 그려낸 ‘여고괴담’류의 영화가 인기였잖아요? <마녀>는 학교만큼이나 모두에게 익숙한 사무실을 공포스럽게 그려내는 독특한 영화예요. 괴물이나 귀신이 아니라 내 옆의 동료나 부하직원이 공포의 원천이라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오싹하지 않나요?” 말주변이 없다던 그는 영화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수다스러워진다. 평소 공포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일 만큼 호러물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그는 이번 영화를 위해 수많은 공포영화를 섭렵했다.
<마녀> 속에는 칼, 연필, 압정, 유리 등으로 ‘자해’를 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여배우로서 연기가 쉽지 않았을 터다. “소품이 전부 일상용품이라서 잘못 연기하면 관객들이 웃을 것 같았어요. 실제로 연필로 손바닥과 허벅지를 찌르며 표정연기를 연습했어요. 시퍼런 멍이 몇 개월을 가더라고요.” 그토록 연습을 하고도 자신의 연기에 자신감이 없어 감독이 ‘오케이’ 사인을 했는데도 “다시 찍으면 안 돼요?”를 연발했다고 한다. 촬영 기간이 2주도 채 안 되는 3000만원짜리 저예산 영화를 찍으며 박씨는 ‘엄청난 연기욕심’을 내고, 감독은 이를 말리고 다독이는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단다.
본인의 말마따나 그는 자신을 홍보하는 것도, 꾸미는 것도, 내세우는 것도 익숙지 않아 보였다. 그런 그가 어떻게 ‘배우’라는 직업을 꿈꿨을까? “고2 때 드라마 속 박신양 선배님의 연기에 반해 막연히 연극영화과를 지원했죠. 사실 연기가 어려울 거란 생각도 못했어요. 그러다 대학 2학년 때 뒤늦은 사춘기가 와서 한 2년 휴학하고 방황을 했죠.”
휴학을 했던 동안에도 이상하게 단편 섭외가 꾸준히 들어왔다. <비행소녀>(2010), <어떤시선>(2012), <서울집>(2013) 등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하며 이름과 얼굴을 조금씩 알렸다. 눈썰미 좋은 관객들은 알아보겠지만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우리 선희>에도 단역으로 출연했다. “제가 눈에 띄게 예쁜 외모는 아니잖아요? 영연과에 다니며 너무 예쁘고 끼 많은 친구들을 보며 주눅도 들었던 듯해요. 그런데 홍상수 감독님이 ‘배우는 예쁘기보단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하신 말씀에 용기를 얻었죠.”
‘<한공주>의 천우희를 능가하는 신인’이라는 등 영화계 안팎에서 극찬이 쏟아지는 데 대해 박주희는 “천우희씨가 기분 나쁘지 않을까 싶다”면서도 “앞으로 원톱으로 설 수 있는 힘있는 여배우가 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