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이즈 러너>의 한 장면.
판타지 소설 원작 영화 ‘메이즈 러너’
미로에 갇힌 아이들 생존게임 담아
미로에 갇힌 아이들 생존게임 담아
자기의 이름 외에 과거에 대한 아무런 기억도 없는 아이들이 있다. 한 달에 한 명씩 ‘배달 되어진’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거대한 미로에 감금된다. 아이들은 3년 동안 규칙과 질서를 만들어 자신들만의 ‘사회’, 즉 ‘글레이드’를 유지해왔다. 정해진 시간, 미로의 문이 열리면 ‘러너’로 불리는 아이들이 미로를 탐색하고 돌아온다. 미로의 지도를 만들긴 하지만, 빠져나갈 희망은 포기한지 오래다. 미로 안에는 ‘그리버’라는 잔인한 괴물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신참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가 규칙을 어기고, 미로에 들어가 출구를 찾기 시작하면서 평화롭던 글레이드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영화 <메이즈 러너>(18일 개봉)는 여러모로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1954)을 떠올리게 한다. 고립된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모습과 그 안에서 느끼는 공포와 절망의 빛깔이 닮았다. 아이들을 통해 현실의 모습을 은유하는 방식도 유사하다. <파리대왕>이 세계대전의 와중에 드러난 인간 사회의 야만성을 폭로했다면, <메이즈 러너>는 기성세대가 구축한 모순과 불합리에 둘러싸인 우리 젊은 세대의 자화상을 드러낸다.
영화 속 글레이드는 ‘현상유지’를 가장 큰 목표로 삼는다. 이유도 모른채 낯선 곳에 고립돼 시시때때로 괴물에게 공격 당하지만, 아이들은 미로를 빠져나가거나 괴물과 싸우는 대신 ‘불안한 평화’를 택한다. 토마스가 ‘배달’되기 전까지는. 토마스는 미로에 뛰어들어 괴물을 죽이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지만 갤리(윌 폴터)를 중심으로 한 무리들은 괴물을 죽인 것마저 ‘규칙 위배’라며 토마스를 지탄한다. 불합리한 현실에 저항하고 탈출구를 모색할 것인가, 순응할 것인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에 갇혀 떨치고 일어나기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은 우리 젊은 세대의 모습을 은유하는 듯 보인다.
사실 <메이즈 러너>의 서사구조는 앞서 큰 인기를 끌었던 <헝거게임>, <다이버전트> 등을 빼닮았다. 멸망 위기를 겪은 지구를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적 설정, 어른세대가 통제를 위해 만들어낸 시스템 속에서 ‘생존게임’을 벌어야 하는 소년·소녀들의 운명, 운명에 순응하는 다수와 이를 거스르는 ‘특별한 소수’를 둘러싼 이야기라는 뼈대는 별 차별성이 없다. 판타지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는 것까지도 똑같다.
<메이즈 러너>가 앞선 작품들과 차별화할 ‘무기’로 선택한 것은 세가지다.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미로라는 소재, 그 안에서 펼쳐지는 스피디한 액션이라는 볼거리,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를 끝까지 미궁 속에 남겨두는 스토리 전략. 하지만 시리즈 1편으로써 다음 편에 대한 확실한 기대감을 심어주기엔 세가지 모두 다소 부족하게 느껴진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영화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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