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근무조건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더 마트의 여성 직원들. “마트의 생명은 매출, 매출은 고객, 고객은 서비스”라는 구호로 하루를 시작하며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했다. “회사가 잘되면 우리도 잘될 줄 알았”기에. 그러나 그들에게 날아든 것은 일방적인 해고 통보. 정규직 전환을 눈앞에 둔 선희(염정아), 싱글맘 혜미(문정희), 20년 ‘짬밥’의 청소원 순례(김영애), 순박한 아줌마 옥순(황정민), 88만원 세대 미진(천우희)은 실직의 위기 앞에 힘을 합쳐 ‘노조’를 조직해 대항한다.
어디서 많이 보고 들은 이야기다. 홍익대학교 청소 노동자들, 홈플러스 비정규직 파업, 이랜드-뉴코아 파업 등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했던 뉴스가 머리를 스친다. 2일 개막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이는 영화 <카트>는 우리 사회의 가장 첨예한 화두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정면으로 다룬다.
지난달 30일 만난 부지영(43) 감독은 “특정 사건을 떠올리지 말아달라”고 운을 뗐다. “영화의 모티브라고 할 만한 사건은 없어요. 주변에 너무 비일비재한 일이니까요. 관객들이 우리의 이야기, 나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 그게 이 영화의 의도라면 의도예요.”
비정규직 다룬 첫 상업영화
시민 5천여명 크라우드펀딩
배우들은 최소 개런티만 받아
부산국제영화제서 화제 모아
“현실 이슈의 날카로움과
드라마의 감동 둘 다 잡고파”
<카트>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모았다. 두 차례에 걸친 ‘크라우드펀딩’이 영화 제작의 밑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1·2차 펀딩에 5000여명의 시민이 참여했고, 1억6000여만원이 모였다. 부 감독은 이런 ‘자발적 참여’야 말로 <카트>의 힘이라고 했다. “30억 넘는 제작비에서 펀딩이 차지하는 비율은 일부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태준 응원이 영화를 꼭 완성시켜야 된다는 책임감을 심어줬어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참여하게 된 것이 영광이죠.”
다소 ‘색깔 있는’ 영화라 캐스팅이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의외로 쉽게 풀렸단다. “시나리오를 받은 배우들이 한 번에 다들 ‘오케이’ 해서 깜짝 놀랐어요. 엑소의 디오(태영 역)까지요.” 배우들과 스태프들도 최소한의 개런티만 받는 ‘고통 분담’을 감수했다고 그는 전했다.
그동안 ‘노동 문제’는 독립영화의 소재로만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상업영화에서 비정규직의 문제를 드러내놓고 다룬 것은 <카트>가 처음이다. 한 켠에서는 벌써부터 ‘영화의 내용이 너무 선동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감독으로서 부담도 될 법하다. 하지만 부 감독은 “영화는 가장 트렌드에 민감한 매체기 때문에 현실적인 사안들이나 이슈는 피해갈 수 없다”며 “비정규직 문제 역시 같은 선상에 있기에 다뤄야 하고, 다룰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어찌 보면 <카트>는 전작인 <니마>를 통해 노동 문제에,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와 <산정호수> 등을 통해 여성 문제에 천착해 온 부지영 감독의 스타일과 맞닿은 영화다. 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연출의 지평을 한 뼘 더 넓힌 듯 보인다. <카트>는 여성 비정규직 문제는 물론 등장인물들의 개인사를 통해 88만원 세대, 10대 아르바이트생 임금 착취, 감정노동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문제들을 훑어낸다. 당연히 고민도 깊었다. “다양한 인권 문제를 다루다 보니 영화적 재미가 반감될까봐 걱정도 컸어요. 현실 이슈의 날카로움과 드라마의 감동을 균형감 있게 전달하는 데 가장 초점을 뒀죠.” 조직화되지 않았던 아줌마들이 생존의 문제 앞에 서로 연대하며 동료애를 쌓아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 주제의식과 영화적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 했다는 설명이다.
영화는 아줌마들의 파업을 ‘성공’도 ‘실패’도 아닌 ‘열린 결말’로 그려낸다. 부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 영화는 지금 현재도, 미래에도 계속될 ‘현실’을 다루기에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영화예요. 결론을 맺는 것 자체가 편견일 수 있죠. 단지 계속되는 싸움의 이야기로 봐 주시면 좋겠어요.” 11월 개봉 예정.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영화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