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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학살 트라우마’ 늙은 가해자는 춤을 춥니다

등록 2014-10-13 19:10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의 한 장면. 사진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의 한 장면. 사진 엣나인필름 제공
인도네시아 학살 담은 다큐영화
‘액트 오브 킬링’ 오펜하이머 감독
“피해자 나서지 않아 역발상 추적”
속편 ‘침묵의 시선’ 피해자 눈으로
1965년 10월, 인도네시아에 피바람이 불었다. 수카르노 전 대통령을 쫓아내고 권력을 잡은 수하르토 소장이 ‘공산당 박멸’을 내걸고 최소 100만명에 이르는 시민을 학살한 것이다. 60년대는 냉전의 시대였고, 수하르토는 집권의 명분을 ‘반공’에서 찾으려 했다. 수하르토는 군대를 내세우는 대신 각 마을의 불량배 등 ‘반공 민간 세력’을 선동하고, 그들의 손에 몰래 무기를 쥐어줬다. 어제까지 얼굴을 맞대던 이웃이 하루 아침에 살인자와 피해자로 나뉘었다. 이후 수하르토는 65년 대학살에 대해 ‘법적 제재가 부과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승자에 의한 ‘학살’은 제대로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않았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사진 엣나인필름 제공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사진 엣나인필름 제공
조슈아 오펜하이머(40) 감독의 연작 <액트 오브 킬링>(2012)과 <침묵의 시선>(2014)은 바로 이 ‘인도네시아 학살사건’을 소재로 한다. <액트…>이 가해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그려냈다면, 올해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상 대상을 받은 <침묵…>은 피해자의 눈으로 사건을 기록한다. 오는 11월 <액트 오브 킬링>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오펜하이머 감독을 만났다.

그는 이 사건을 영화화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라고 했다. “2001년 인도네시아 노조 운동을 영화로 만들던 친구를 도우러 처음 인도네시아에 갔어요.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 65년 학살 피해자 가족이거나 생존자였던거죠.” 35년이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보복이 두려워 그 사건을 입에 담지도, 가족을 제대로 추모하지도 못하던 그들이 오펜하이머 감독에게 “가족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오펜하이머 감독은 2003년~2010년까지 인도네시아를 여러차례 오가며 촬영을 했다.

“처음엔 피해자 육성을 담으려 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어요. 그래서 역발상으로 가해자의 입을 빌어 사건을 되짚자고 생각했죠. 그 후 미친듯이 가해자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액트…>의 주인공 안와르는 제가 만난 41번째 가해자예요.” 그가 만난 가해자들은 모두 자신이 저지른 일을 끔찍하리만큼 태연하게 이야기하며 재연했다고 한다. 철사로 어떻게 목을 졸랐는지, 칼로 어떻게 찔렀는지…. 그 중 유일하게 안와르만이 내면의 고통을 표현했다. “(그 때를 떠올리면) 잠이 오지 않아 술을 먹고 춤을 춘다고 했어요. 옥상에서 춤추는 늙은 그의 모습이 정말 그로테스크한 은유처럼 느껴졌어요. 자기가 저지른 일이 자랑스러워서가 아니라 떠벌리지 않으면 트라우마를 감당할 수 없었던 거죠.”

<액트…>를 찍는 동안 인도네시아 고위층과 친분을 쌓게 돼 그의 행동반경에는 다소 자유가 생겼다. 그래서 피해자 가족인 ‘아디’와 함께 아디의 형을 죽인 범인들을 만나러 다니는 내용을 담은 속편 <침묵…>을 찍을 수 있었다. “아마 고위층이 영화 내용을 정확히 알았다면, 속편은 커녕 전 그 자리에서 맞아죽었을 거예요. 나중에 <액트…>가 개봉한 후 이메일과 전화로 엄청난 살해 협박에 시달렸죠.”

영화는 아직 인도네시아에서 개봉하지 못했다.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일부 공동체에서 몰래 상영됐을 뿐이다. 그만큼 아직 ‘인도네시아 역사 바로세우기’ 작업은 더디기만하다. 그나마 <액트…>로 인해 ‘청문회 요구’가 거세지고, 공공연하게 65년 사건을 ‘학살’로 부를 수 있게 된 것이 작은 위안거리다.

“<액트…>는 인도네시아만이 아닌 인류 전체에 대한 이야기예요.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한국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지 않았나요? 과거는 기록되면 역사가 되고, 역사는 옳고 그름을 알려주는 지침서가 되죠. 제 작업의 의미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부산/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엣나인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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