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트>의 한 장면.
‘카트’를 봐야만 하는 이유
한국 상업영화 사상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권’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한 <카트>(13일 개봉). 개봉 전부터 ‘호평’이 쏟아지는 이 영화에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노동’‘파업’‘권리’ 등의 단어만 나오면 으레 ‘떼쓰기’라고 몰아붙이는 일부 언론, 그런 뉴스를 접하며 인상을 찌뿌리던 당신도 이 영화에 편견을 가질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다음달 카드값을 걱정하고 교육비와 치솟는 전세값에 고민하는, 2014년을 사는 평범한 국민이라면 한번쯤 이 영화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할 이유가 있다.
① 그들 아닌 우리의 이야기
대한민국 비정규직은 약 900만명으로 추산된다. 전체 임금노동자 1800여만명의 절반에 이르는 수치다. 이 가운데 여성 비정규직도 440여만명이다. 영화 <카트>는 이런 비정규직 중 가장 대표적인 ‘대형마트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마트의 생명은 매출, 매출은 고객, 고객은 서비스”를 외치며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은 온갖 컴플레인에도 “사랑합니다. 고객님”으로 응대를 한다. 때로는 ‘진상 손님’에게 무릎을 꿇거나 반성문을 쓰는 감정노동도 감수한다. 수당도 없이 연장근무에 시달리지만 불평 한 마디 할 수 없다. 그러던 어느날 이들은 회사로부터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는다. ‘반찬 값’ 벌러 나온 ‘아줌마’가 아니라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가장’이기에 절박한 이들은 난생 처음 노조를 만들어 대항한다. 들여다보면 흔하디 흔한 사연들을 가진 사람들이다. 아이 급식비와 수학여행비를 벌어야 하는 ‘선희’(염정아),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혜미’(문정희), 면접만 50번 넘게 떨어진 취업준비생 ‘미진’(천우희), 은퇴 후 안락한 생활은 꿈도 꿀 수 없는 청소부 ‘순례’(김영애), 악덕 점장에게 알바비를 떼인 고등학생 ‘태영’(디오)…. 과연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② 대안으로서의 연대를 말하다
영화 안에는 명확한 ‘선악’의 구분이 없다. 아줌마들을 매몰차게 내치는 최 과장(이승준) 역시 3명의 아이를 건사해야 하는 또다른 ‘가장’일 뿐이다. 악독한 사주와 양심없는 중간 관리자들의 악행 따위를 폭로하는 손쉬운 대립구도를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정규직 대리 동준이 아줌마들과 뜻을 함께 하는 모습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처음엔 내 문제가 아니라며 애써 무시하지만, 비정규직을 해고한 뒤 정규직 역시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려는 것이 사쪽의 의도임을 동준은 곧 알게 된다. 그들의 문제가 곧 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이 바로 ‘연대’의 시작인 셈이다.
사쪽의 설득에 밀려 복직한 직원들과 마트 밖에서 싸우고 있던 직원들이 함께 카트를 밀며 공권력에 맞서는 마지막 장면 역시 상징적이다. 영화는 연대의 필요성을 교조주의적 가르침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영리한 방법으로 관객에게 일깨운다.
③ 탄탄한 드라마의 힘
영화의 메시지나 사회적 울림에 공감하지 않아도 좋다. 이 영화는 드라마 자체로도 재미있다. 시키는대로만 하던 아줌마들이 힘을 합치는 과정은 과격하기보다 인간적이고 아름답다. 서로의 사연을 고백하며 눈물을 흘리고, 서로의 식사와 잠자리를 걱정해주는 모습에서 따뜻한 자매애와 인간애를 느낄 수 있다.
염정아, 문정희, 천우희, 김영애 등 내로라 하는 배우들의 연기력도 몰입감을 배가시킨다. 눈가의 주름과 기미 등을 과감히 드러내고 머리를 질끈 묶은 이들의 모습에서 ‘화려한 여배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나이가 어린 관객에게는 아이돌 ‘엑소’의 멤버 디오의 연기도 볼거리다. 디오는 첫 영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선배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연기를 뽐낸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영화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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