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이유영.
영화 <봄>(20일 개봉)은 올해 밀라노 국제영화제 대상, 아리조나 국제영화제 최우수외국영화상, 달라스 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8개 상을 휩쓸었다. 특히 두 주연 여배우 이유영과 김서형은 한국 영화 최초로 밀라노와 마드리드에서 나란히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김서형이야 드라마 등을 통해 익숙하지만, 이유영은 ‘누구지?’라는 반응이 당장 나왔다. <봄>이 밀라노영화제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7일, 그는 하루종일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올랐다. 첫 상업영화 데뷔작에서 ‘전신노출’ 연기를 펼치며 세계 영화제의 주목을 받은 이유영(25)을 최근 만났다.
이유영은 인터뷰 내내 “재미있다”는 말을 14번이나 했다. “너무 빠른 성공이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에도 “상을 탄 뒤 사람들의 대우가 달라진 걸 느끼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스포트라이트가 아직은 신기하기만 한 ‘진짜 신인’이다.
<봄>은 1960년대를 배경으로 병에 걸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유명 조각가 ‘준구’(박용우)와 그의 예술혼을 되살리려는 아내 ‘정숙’(김서형), 가난과 가정폭력으로 희망을 잃은채 살아가다 누드모델이 되면서 자아를 찾아가는 ‘민경’(이유영)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서정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26년>의 조근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시나리오를 보고 한 편의 수채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느낌이었어요. 눈이 멀었다고 할까요? 무작정 감독님을 찾아갔죠.” 그 날 이유영을 처음 본 조근현 감독은 “한 눈에 민경이라는 걸 알아봤다”고 했단다. 이유영은 청초하고 백지장 같은, 그러나 다소 무기력한 ‘민경’에 잘 어울린다.
노출이 고민스러웠을 법도 한데, 그는 “한순간이라도 망설였다면 이 작품을 포기했을 것”이라며 “다만 관객들이 눈요깃거리로서가 아니라 조각 모델의 조형적 아름다움으로 봐줬으면 하는 바램은 있다”고 답했다. 원래 마른 편인데 ‘가난에 찌들어 깡마른 민경’을 연기하기 위해 쫄쫄 굶어 5㎏을 뺐다며 웃었다. ‘경상도 사투리’도 배워야했는데, 서울서 나고 자란 그에게 사투리는 ‘외계어’처럼 느껴졌단다.
하지만 이유영에게 최대 난관은 노출도, 사투리도 아닌 ‘절제된 연기’였다. 삶과 죽음, 예술을 통한 통찰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시종일관 따뜻하고 담담하게 그려내는 작품이라 연기에 ‘고·저’가 별로 없었다. “차라리 폭풍같은 절규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민경이는 자기표현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수동적인 여자인거죠. 감독님이 계속 ‘꾹꾹 더 눌러 연기하라’고 주문하셨어요. 어휴~ 힘들더라고요.”
영화 속 이유영은 발걸음, 손동작 하나하나에 힘을 빼고 감정을 억제하는 대신 말간 눈동자로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한복과 한옥의 고풍스러운 아름다움과 눈이 부시도록 화사한 시골 풍경 속에 녹아 들어간 그의 잔잔한 연기에선, 신인답지 않은 깊이감과 밀도감이 느껴진다.
연기력은 타고난 재능일까? 이유영은 고개를 저으며 “성적보다 더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 고교 때 실기 비중이 높은 연기를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은교>의 김고은, <인간중독>의 임지연과 한국예술종합학교를 함께 다녔다는 그는 “천지분간 못하고 연기를 ‘물’로 본 탓에 동기들보다 조금 늦된 것 같다”고 했다.
이유영은 요즘 두번째 영화 <간신>(감독 민규동)을 촬영 중이다. 연산군의 눈에 들어 권력을 얻으려 몸부림 치는 기생 ‘설중매’ 역할은 민경과는 180도 다른 인물.
“첫 작품 성공이 운이 아니란 걸 증명하려면 두번째가 중요하다는데, 전 그냥 설중매라는 역할이 재밌어요. 앞으로도 재미있는 작품만 하고 싶어요. 연기를 재미로 하냐고요? 당연하죠! 그래야 배우 생활 오래오래 하죠.”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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