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두려운 존재다. 그럴 수만 있다면 영원토록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하지만 누구라도 피할 수 없다.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중요한 건 그때까지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 죽음과 가까워진 이들을 담은 두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언뜻 죽음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삶의 이야기이다. 그러고 보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애초부터 같은 질문이라고 두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질문의 답은 오롯이 보는 이의 몫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76년째 함께한 노부부
신혼부부처럼 오붓하지만
남편의 죽음으로 이별 맞아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산골 노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우리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깊이 성찰하게 한다. 아거스필름 제공
98살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살 강계열 할머니는 76년째 함께한 부부다. 할아버지가 23살 청년 시절 14살 소녀의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가면서 연을 맺었다. 금슬이 좋아 슬하에 12남매를 두었다. 장성해 도시로 나간 자녀가 여섯, 먼저 세상을 뜬 아이가 여섯이다. 노부부는 강원도 횡성 산골마을에서 오붓하게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 두 사람이 노는 걸 보면 딱 신혼부부다. 마당에서 낙엽을 쓸다 말고 나뭇잎 더미를 서로에게 던지며 장난 친다. 할아버지가 노란 국화를 꺾어다 할머니에게 주면, 서로 머리에 꽃을 꽂아주며 “하하호호” 웃는다. 한밤중 혼자 화장실 가기 무섭다는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할아버지는 화장실 문까지 데려다준다. 볼일을 보는 동안 바깥에 지켜서서 노래를 불러준다. 눈이 오면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도 만든다. 나란히 서있는 2개의 흰 눈사람은 고운 한복을 커플룩으로 차려입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닮았다.
진모영 감독은 이 부부 이야기를 방송 프로그램 <인간극장>에서 처음 접했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전해줄 매력적인 이야기다.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이전에 <에스비에스 스페셜>에서도 다뤄진 소재였다. ‘이미 방송에 많이 노출된 부부를 또 다뤄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민을 접고 횡성으로 향했다. ‘처음 본 순간부터 가슴 설레었고 눈에서 불꽃이 튄 이 감동의 인물들을 다른 이유로 버려두고 돌아설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카메라로 지켜본 부부는 방송에 비쳐진 그 이상의 깊은 사랑을 보여준다. 서로 존댓말을 꼬박꼬박 쓰며 “사랑해요. 고마워요”라고 끊임없이 표현한다. 버릇이 되어 여전히 서로의 살이 닿아야 잠이 오고, 자다 깨면 서로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정성스레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는 할아버지를 보는 할머니의 눈길이 더없이 그윽하다. 2012년 가을에 시작한 촬영은 해를 넘겼다. 2013년 여름, 할아버지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졌다. 제작진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할머니는 수의로 쓸 삼베옷을 빨아 마당에 널며 조용히 이별을 준비했다. 그해 겨울 할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
죽음에 관한 장면은 많지 않다. 입관식 장면과 삼우제 때 눈 덮인 무덤을 찾은 할머니를 멀리서 담담하게 잡은 게 전부다. “죽음의 과정을 크게 부각시키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까지도 끝나지 않는 사랑을 말하는 다큐로 만들고 싶었다”고 진 감독은 말했다. 그의 뜻대로 극장을 나설 때 이별과 죽음보다 사랑과 행복에 대해 더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 지난 9월 디엠제트(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여 전석 매진은 물론 관객상까지 받았다. 당시 할머니는 옆자리에 할아버지 영정사진을 놓고 영화를 봤다고 한다. 27일 개봉.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목숨’
호스피스서 죽음 기다리는 4명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깨달아
“가장 행복한 추억은 지금 이 순간
<목숨>은 호스피스 병동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우리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깊이 성찰하게 한다. 비트윈픽쳐스 제공
“천국에 들어가려면 두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하나는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다른 하나는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었는가?’이다.”(인디언 속담 중에서)
여기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평균 21일, 삶의 끝자락에 잠시 머물며 이별을 연습하는 호스피스에서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인생을 반추한다. 호스피스는 완치가 어려운 환자가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완화하고, 마지막 남은 삶의 의미를 찾는 곳이다. 영화 <목숨>은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호스피스의 일상을 담담하지만 뭉클하게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영화 속에는 네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남편의 사업 실패 뒤 힘겹게 살다 새 집으로 이사하고 한 달 만에 암 선고를 받은 김정자, 수학 선생님으로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다 노년에 병마와 싸우는 할아버지 박진우, 아내와 두 아이 걱정뿐인 40대 가장으로 호스피스와 항암치료 사이에서 갈등하는 박수명, 후두암 수술 뒤 목소리를 잃고 자살을 시도했던 쪽방촌 외톨이 신창열까지. 모두 죽음이 목전에 왔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그저 가족을 돌보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며 열심히 삶을 꾸려가던 평범한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이들에겐 순간순간이 소중하다. 특별할 것 없는 짜장면 한 그릇, 막걸리 한 사발, 따뜻한 차 한 잔에 즐거워하며 마치 축제를 즐기듯 노래하고 춤도 춘다. 그리고 평생 왜 그리도 아껴왔는지 모를, 가족들에 대한 사랑도 마음껏 표현한다. 행복이 무엇인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들이 삶의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가장 행복했던 추억을 꼽으라면 진정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지금 이 시간”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감동이 밀려든다.
죽음의 공포와 고통으로 시종일관 어둡고 무거울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영화는 오히려 매순간 반짝반짝 밝게 빛난다.
특히 죽음까지 생각할 만큼 신에 대한 회의와 삶에 대한 의문을 품은 채 호스피스에 실습을 나왔던 신학생 스테파노(정민영)의 변화는 가장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환자들을 위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올리고, 말벗을 해주던 스테파노는 ‘죽음’과 가장 가까운 이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 스테파노의 변화는 쪽방촌 외톨이 신창열의 닫힌 마음까지 보듬어 삶의 의지를 심어준다.
<목숨>은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다루지만 ‘죽음’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영화는 소소한 행복과 생명의 소중함, 따뜻한 가족애와 사랑을 말한다.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 혹시 사는 게 행복한 걸 잊지는 않았나요?’ 12월4일 개봉.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