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터스텔라’
이재익의 명대사 열전
“지구의 끝이 우리의 끝은 아니야” - <인터스텔라>중에서
영화 <인터스텔라>열풍이 식지 않고 있다. 26일 기준으로 관객수 700만 명이 훌쩍 넘었고 줄지 않는 관객수를 볼 때 1000만 돌파가 무난해 보인다. 세 시간 가까운 상영시간에다 깊게 들어가자면 전공자나 이해할 법한 천문학-물리학 지식이 숨어있는 진지한 영화임을 감안하면 이런 흥행은 더욱 놀랍다.
게다가 영화가 개봉하고 얼마 안 있어 총알보다 18배나 빨리 날아가는 혜성에 탐사선 로제타호가 착륙하는 실제 상황이 벌어졌다. 그 이후 영화에 대한 관심은 더 뜨거워졌다. 더불어 우주에 관한 이런저런 기사들도 쏟아져 나왔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요즘만큼 사람들이 우주에 관심을 가진 시기는 없었다.
전작인 영화 <다크나이트>시리즈나 개인적으로 놀란 감독의 최고작으로 꼽는 영화 <인셉션>에서도 그랬듯 <인터스텔라>에도 근사한 명대사가 곳곳에서 빛난다. 그 중에서 하나.
“지구의 끝이 우리의 끝은 아니야.”
이 대사처럼 주인공들은 지구가 아닌 다른 거주지를 찾아 우주를 여행한다. 목숨을 걸고. 일견 이 영화가 우주과학기술의 향연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주인공의 불가능한 미션(거주 가능한 행성을 찾는)을 가능케 해주는 힘은 과학기술이 아니라 딸에 대한 사랑이다. 지구에 남아있는 딸을 살리겠다는 집념이 과학의 부족한 구멍을 채운다.
누가 물어도 항상 추천 도서 목록 1호로 꼽는 책 <코스모스>도 <인터스텔라>와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을 외우기라도 할 태세로 수없이 반복해서 읽는데도 종종 소름이 돋을 만큼 짜릿해지곤 한다. 마치 경전처럼 읽을 때마다 나를 일깨우는 지점이 다른데 가장 큰 울림을 주는 대목은 언제나 같다. 바로 책의 첫 페이지. 이렇게 적혀있다.
“광대한 우주, 그리고 무한한 시간. 이 속에서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면서.”
앤이라는 사람은 저자인 칼 세이건의 아내다. 평생 광대한 우주와 무한한 시간을 연구했던 위대한 천문학자는 결국 우리의 인연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지를 깨달은 듯하다.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로 우주엔 별과 행성들이 가득할 것 같지만 사실 우주의 대부분은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라고. 우리가 우주 어딘가로 내팽개쳐졌을 때 어떤 별 근처에 떨어질 확률은 1을 분자로 하고 0을 33개 붙인 수를 분모로 한 확률과도 같단다. 확률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0이나 마찬가지인 그 숫자가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에 태어난 사건의 확률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의 의미도 비슷하다. 백 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천녀(天女)의 치맛단에 스쳐서 큰 바위덩어리가 모두 닳아 없어질 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나는 너를 만날 수 있다 하였다. 과학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우리의 인연은 그 자체로 기적이라 하겠다.
나의 존재가, 너의 존재가 미약하게 느껴질 때면 밤에 창문을 열고 고개를 들어 보기를.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은 눈으로 보기엔 무척 가까워보인다. 지구에서도 가까워 보이고 별들끼리도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그 거리는 빛의 속도로도 수십 년씩 걸리는 게 보통이다. 나의 존재, 너의 존재는 그 아득한 거리를 거스르고 0이나 마찬가지인 확률로 선택받은 고귀한 존재들이다. 우리의 인연도 그러하다.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은 지구의 끝이 우리의 끝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지구에서 끝을 맞이할 것이다. 그래도 좋다. 이게 어딘가.
오늘 밤에는 별을 보며 만끽해봐야겠다. 지구라는 풍요로운 행성에서 태어난 나의 행운을, 그리고 이곳에서 너를 만난 행운을.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