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남이 싫어한다고 좋아하는 걸 숨기는 것도 바보

등록 2014-12-25 19:23수정 2015-05-26 10:43

영화 <족구왕>
영화 <족구왕>
이재익의 명대사 열전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영화 <족구왕> 중에서

몇 달 전 영화 족구왕의 대사를 이 칼럼에서 인용한 적이 있다. 주연도 아니고 조연의 대사 “공무원 시험 준비해.” 그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나는 2014년 최고의 영화로 <족구왕>을 꼽겠구나.

2014년이 며칠 남지 않은 지금, 지난회 2014년 최고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이어 2014년 최고의 영화로 <족구왕>을 선정한다. 그리고 오늘 꺼내온 대사는 주인공 만섭의 대사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오늘날의 20대는 야망을 품기 어렵다. 20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다들 원대한 꿈을 품고 살았다. 현실은 녹록치 않더라도, 머리로는 언젠가는 부자가 될 거라고, 언젠가는 유명해질 거라고, 언젠가는 훌륭한 일을 할 거라고, 언젠가는 멋진 삶을 살 거라고 믿으며 살았다.

요즘은 어떤가?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소리를 하는 20대를 찾기 어렵다. 지금의 20대는 생존 그 자체를 걱정할 뿐이다. 노력하면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구호도,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도 이 시대에는 허황되다.

이런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있다. 20년쯤 전 허영만 작가의 만화 <아스팔트 사나이>가 엄청난 인기를 모으며 연재되었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대박’이 났다. 그런데 바로 올해 똑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허영만 작가의 문하생이었던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이 엄청난 인기를 모으며 연재되었고 드라마로 만들어져 대박이 난 것이다.

만화와 드라마에는 그 시대의 현실이 담겨있다. 90년대와 지금은 꼭 <아스팔트 사나이>와 <미생>만큼의 간극이 있다. <아스팔트 사나이>는 어떤 내용인가. 보잘 것 없는 한 젊은이가 자동차에 대한 꿈을 바탕으로 마침내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일궈낸다는 내용. 그럼 <미생>은 어떤 내용인가? 보잘 것 없는 한 젊은이가 계약직으로 회사에 들어가 정규직 전환을 위해 열심히 회사를 다닌다는 내용. 세계정복과 정규직 전환. 이 어마어마한 간극이 20년간 우리 사회가 만들어온 현실이다.

영화 <족구왕>은 이런 현실에서 젊은이들에게 허황되지 않은 솔직한 구호를 전하는 용기 있는 영화다. 주인공 만섭의 말에 정답이 있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살면 안 된다. 행복이란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누릴 때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누리는 순간에 이뤄지니까.

행복 뿐 아니라 성공이라는, 이 시대에는 너무 거창해 보일 수 있는 목표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일을 쫓다간 지치고 지겨워질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 돌아보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싶을 거다.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쫓으면, 그게 비록 남들에겐 외면 받는 일일 지라도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우리는 타인과 비교하는 삶을 살 위험이 많아졌다. 흔히 잘나간다는 사람들이 어느 동네에 살고, 어떤 차를 타고, 어떤 직업을 갖고 있고, 어디서 생일 파티를 하는지 다 알 수 있는 사회다. 만수르부터 같은 반 친구까지,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나보다 잘난 사람들의 삶을 공개적으로 엿볼 수 있게 된 셈이다. 불행의 시작이다.

남들보다 더 잘 살기 어렵다면, 남들만큼 살기도 어렵다면, 그러려고 안달하지 말자. 만섭이처럼 좋아하는 족구를 하자. 나의 삶을 살자. 대신 치열하게.

2014년 한 해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