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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유럽판 ‘카트’…동료의 복직이냐 내 보너스냐?

등록 2014-12-30 19:44

칸이 사랑한 다르덴 형제의 신작 <내일을 위한 시간>(원제: 투 데이즈 원 나잇)은 ‘내일’(다가올 앞 날)이라는 뜻과 ‘내 일’(나의 일)이라는 두 가지 뜻이 내포돼 있다. 다가올 앞 날을 위해 자신의 일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산드라’는 과연 동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연대의 필요성, 삶에 대한 희망을 넌즈시 이야기하는 영화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칸이 사랑한 다르덴 형제의 신작 <내일을 위한 시간>(원제: 투 데이즈 원 나잇)은 ‘내일’(다가올 앞 날)이라는 뜻과 ‘내 일’(나의 일)이라는 두 가지 뜻이 내포돼 있다. 다가올 앞 날을 위해 자신의 일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산드라’는 과연 동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연대의 필요성, 삶에 대한 희망을 넌즈시 이야기하는 영화다.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내일을 위한 시간’ 1일 개봉
병가중 복직 거부 당한 산드라
“보너스 대신 복직에 투표해달라”
동료 16명 집집이 찾아가 설득
단순한 설정이지만 큰 공감대
자본 맞선 ‘연대의 필요성’ 그려
‘미생’은 2014년 하반기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로 꼽힌다. 윤태호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미생>이 지난 석 달 동안 많은 직장인들을 울리고 웃긴 이유는 바로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삶을 가장 잘 반영한, 리얼리즘을 추구한 드라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생>에 공감했던 사람들이라면 2015년 새해를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1월1일 개봉)과 함께 시작해도 좋겠다. ‘장그래’의 모습에서 ‘나’를 봤던 것 처럼, 영화 속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노라면 더 강렬한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을 듯 하다.

영화의 플롯은 너무 단순하다 못해 평면적이다. 병가 중이던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는 복직을 앞둔 어느 금요일 오후, 동료들이 투표를 통해 자신과 일하는 대신 1000유로의 보너스를 택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게 된다. 다행히 투표 과정에서, 반장이 “산드라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해고당할 수도 있다”는 협박을 했다는 것이 드러나 월요일 아침 재투표를 하기로 한다. 가뜩이나 우울증에 시달리던 산드라는 절망한다. 하지만 남편의 격려 덕에 힘을 얻은 산드라는 주말 동안 16명의 동료들을 일일이 찾아가 “보너스 대신 나의 복직에 투표를 해달라”고 설득하기로 한다.

영화는 산드라가 1박2일 동안 16명의 동료를 찾아다니는 과정을 묵묵히 그려낸다. 몇몇 동료는 “찾아와줘서 고마워. 너 대신 보너스를 택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어”라며 산드라에게 투표하겠다고 약속하지만, 또 다른 몇몇 동료는 “대학생 애한테만 매달 500유로를 써”, “너의 실직은 싫지만 1000유로는 1년치 가스와 전기세야”, “이혼하고 남친과 새출발을 해야 한다”는 등 각자의 이유를 대며 보너스를 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역설적이게도 <내일…>의 가장 큰 장점은 이 지독히도 단순한 플롯에 있다. 관객들은 동료 한 명 한 명을 만날 때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산드라의 모습에 자기 자신을 투영한다. 그리고 산드라의 방문을 받은 동료들의 심정적 동요를 보며 자문한다. “나라면 기꺼이 1000유로를 포기하고 동료의 복직을 택할 수 있을까?” 주말 동안의 짧은 여정은 산드라는 물론 그의 동료, 그리고 관객에 이르기까지 모두의 각성과 변화를 불러온다. 산드라에게는 계속 싸워나가야 할 단단한 의지를 심어주고, 동료들에게는 자신들의 삶과 가치관을 반추하게 한다. 관객들에게는 자신이 발딛고 선 현실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극도로 평면적인 듯 보였던 영화는 어느새 수 백 가지의 결을 가진 입체적 스토리로 변화한다.

산드라의 여정을 따라가며 관객들은 손에 땀을 쥐는 스릴과 긴장을 느낀다. 이 스릴과 긴장은 <내일…>이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언제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할지 알 수 없는 우리의 현실과 데칼코마니처럼 똑 닮아있기 때문일 터. 좀 더 예민한 관객이라면 영화 속 ‘딜레마’(복직이냐 보너스냐를 선택하게 만드는 상황), 즉 ‘투표’라는 더없이 민주적인 듯 보이는 방식에 가려진 ‘자본의 교묘함’도 간파할지 모른다. 영화는 그저 산드라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그 딜레마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연대’뿐임을 말한다. <로제타>(1999), <더 차일드>(2005)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 수상한 다르덴 형제의 빛나는 연출력이 반짝이는 지점도 여기다. 단순한 플롯 속에서도 미묘한 긴장감을 잃지 않게 하는 힘, 드러내 외치지 않아도 그 속에 담긴 메시지까지 자연스레 읽히는 구조는 감탄을 자아낸다. 노동문제(대형마트 여성 비정규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한국영화 <카트>(부지영 감독)와 요모조모 비교해가며 보는 것도 재미있는 감상법이 되겠다. 영화 속 벨기에와 <카트> 속 한국의 노동현실은 여러모로 닮았다.

<라 비앵 로즈>(2007)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미드나잇 인 파리>(2011), <러스트 앤 본>(2012) 등으로 국내에서도 이름을 알린 마리옹 꼬띠아르의 탄탄한 연기력은 다르덴 형제의 각본과 연출력을 돋보이게 한다. 평범한 일상 연기 속에서도 밀도 높은 감정표현으로 영화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 내는 점이 놀랍다.

과연 산드라는 복직할 수 있을까? 마지막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고 문을 나서며 웃는 산드라의 모습은 이 싸움을 통해 그의 내면이 얼마나 옹골차고 단단해졌는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 잘 싸웠지? 난 행복해”라는 그의 마지막 말은 결말과 관계없이 세상의 모든 ‘을’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으로 다가온다. 마치 “그래도 내일 봅시다”라는, 평범하지만 가슴을 울렸던 <미생>의 명대사처럼.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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