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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조금 행복하고 조금 불행한 ‘우리가족’

등록 2015-01-01 18:44수정 2015-01-01 19:54

영화 ‘이별까지 7일’. 사진 수키픽쳐스 제공
영화 ‘이별까지 7일’. 사진 수키픽쳐스 제공
[리뷰] 영화 ‘이별까지 7일’
“모든 행복한 가족은 서로서로 닮은 데가 많다. 그러나 모든 불행한 가족은 그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불행하다”(톨스토이)

엄마가 뇌종양에 걸렸다. 가장 아끼는 선인장 이름인 ‘그라프토베리아 팡파레’를 기억하지 못하고, 큰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화로 듣고도 금새 까먹고, 남편을 데리러 가는 것을 잊었지만 가족들은 모두 “그냥 나이 탓일 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엄마의 머릿 속에 탁구공 크기의 뇌종양이 생겨 기억신경을 압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의사의 진단.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떠오르는 신예 감독 이시이 유야의 <이별까지 7일>은 이렇게 시작된다. <내 머릿 속의 지우개>같은 영화처럼 눈물콧물 다 빼는 신파를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이 영화는 엄마의 시한부 선고를 접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저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충격적인 소식 앞에 평소 다소 우유부단했던 남편은 답답할만큼 우왕좌왕한다. 엄마에게 담배를 줘도 되는지, 아침에 엄마 병실에 들를 수 있는지, 병원비는 어떻게 할 것인지…. 그저 시시콜콜 큰아들에게 물으며 의지하려 한다. 철없는 둘째 아들 슈운페이는 “뭘 그리 심각해 하냐”며 늦잠을 잘 만큼 태연자약하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책임감 강한 큰 아들 고스케만이 홀로 모든 고민을 떠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임신 3개월인 고스케의 아내는 “우리가 모은 돈은 아이를 위한 것”이라며 치료비 보태는 것에 싫은 내색이 역력하다. 여기에 엄마의 서랍 속에서 11곳으로부터 대출받은 300만엔의 대출서류가 나오고, 아버지 역시 회사 빚을 포함해 6500만엔의 빚이 있다고 고백한다. 심지어 이 중 3분의1은 큰아들 고스케를 보증인으로 내세운 터라 파산신고조차 할 수 없다.

“일주일밖에…” 엄마의 시한부 선고
거액의 빚 등 불행 잇따르지만
갈등 속에서도 도닥이는 가족들
담담한 화면 속 묵직한 감동

여기까지만 보면 ‘정말 가지가지 한다’는 말이 절로 나올만큼 답이 없는 ‘불행한 가족’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후 이 가족이 엄마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하나로 뭉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아들은 힘을 모아 엄마를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 발품을 팔고, 아버지는 며느리를 찾아가 자신의 무능을 고백하고 이해를 구한다.

세 부자가 아침 일찍 일어나 함께 조깅을 하며 말없이 서로를 도닥이는 장면은 이들이 왜 가족일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는 코 끝 시큰한 장면이면서 동시에 이 가족에게 아직 희망이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가족의 불행과 거액의 빚 앞에 휘청이고 갈등하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힘과 의지를 얻는 이들의 모습은 바로 내 가족과 닮은 낯익은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고스케 가족은 더이상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의외로 따뜻한 결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애초부터 억지로 쥐어짜는 눈물을 강요하려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겪을 수 있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이기에 묵직한 감동이 천천히 전해져온다. <이별까지 7일>이라는 제목보다 원제인 ‘우리가족’이 훨씬 더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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