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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평당? 분당 옆에 있는 동네겠지

등록 2015-01-08 19:42수정 2015-05-26 10:44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삼거리픽쳐스 제공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삼거리픽쳐스 제공
이재익의 명대사 열전

“평당? 분당 옆에 있는 동네겠지.”
-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중에서
아동문학계에서는 꽤나 유명한 작품이었던 바버라 오코너의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제목을 그대로 옮겨왔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원작이 우리나라 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지금 우리의 현실을 장면마다 잘 비추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제목만큼 깜찍하다. 10살 아이 이레의 집이 어느날 망한다. 사업실패 때문에 아빠가 떠나고 엄마와 동생과 함께 승합차에서 지내는 처지로 내몰린 것이다. 이레는 다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 그래서 집을 사기로 결정한다.

같은 반 친구와 함께 길을 걷다가 중개업소에 붙어있는 주택 매물 전단지를 본 이레의 눈이 번쩍 뜨인다. ‘평당 500만원’(아마 전원주택인 듯하다)이라니! 아이 둘은 대화를 나눈다.

“평당이 어디지?” “분당 옆에 있는 동네 아닐까?”

잃어버린 개를 찾아주는 분에게 사례금 500만원을 준다는 전단지를 보는 순간, 아이들은 평당이라는 동네의 500만원짜리 집을 마련할 방법을 떠올린다.

“개를 훔치자!”

본론을 꺼내기 전에, 우리나라의 배급시스템에 대해 잠깐 이야기 하고 싶다. 제작과 배급, 상영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보니 제작사, 배급사, 멀티플렉스를 함께 거느린 몇몇 대기업의 영화들이 지나치게 스크린을 많이 차지하는 폐단이 생긴다. 이 영화처럼 중소배급사의 영화들은 개봉 첫 주인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상영관 몇 개를 잡기 어렵다. 필자도 개봉 1주일도 지나지 않은 시기에 멀티플렉스를 찾았는데 딱 한 관, 그것도 조조, 점심, 심야 세 번만 이른바 ‘퐁당퐁당’ 상영을 하는 관이 전부였다. 이 영화를 온 국민이 봐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독점이 너무 지나치다는 지적을 하고픈 거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삼거리픽쳐스 제공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삼거리픽쳐스 제공
사실 오늘은 욕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영화는 10살 꼬마아이의 욕심에 관한 영화다. 엄마 아빠 동생이랑 살 ‘평당 500만원짜리’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 마침 이 영화를 보고 나오자마자 10억이 넘는 아파트에 살던 가장이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한 사건의 전모를 뉴스로 접했다. 경찰의 심문 결과 실직과 주식투자 실패로 지금까지 누려온 삶의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리라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단다.

오직 그 사람만의 생각일까? 그럴 리가. 살인까지는 저지르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는 탐욕 때문에 불행한 이들이 참 많이도 보인다. 빌딩을 몇 채씩이나 갖고 있으면서도 세금을 안 내려고 수년을 도망 다니는 사람들도 많고, 감히 포장도 안 뜯은 땅콩을 내왔다고 비행기를 돌리는 재벌2세도 있다. 대체 얼마나 더 가져야, 얼마나 더 대접을 받아야 우리는 행복해질까?

나부터 반성해본다. 비싼 아파트, 좋은 차를 소유하는데서 오는 도취감에 참 오래도 취해있었다. 갖기 위해, 가진 뒤에는 잃지 않기 위해 참 열심히도 일했다.

물론 어느 정도의 물욕이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살아가는 동력임을 부정할 순 없다. 우리가 모두 도인이 될 수는 없으니. 그러나 욕심과 탐욕은 분명히 다르다. 500만원짜리 집만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의 눈망울과 10억 넘는 아파트에 살아도 만족하지 못하는 어른의 충혈된 눈이 바로 그 차이다.

욕심과 탐욕의 끝도 다르다. 배가 고플 때 맛있게 먹는 밥은 우리를 살게 하지만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식탐에 이끌려 먹는 음식은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과 같다. 앞에서 잠깐 이야기했던 대기업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도 일종의 탐욕은 아닐까?

내 욕심이 좀 과하다 싶을 때면 이 영화의 아이들 대사를 떠올려봐야겠다. 분당 옆 평당이라는 동네의 500만원짜리 집에 살고 싶어 하던 아이의 눈망울을 떠올려봐야겠다.

아빠의 탐욕으로 희생된 두 아이의 명복을 빈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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