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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악마와 영웅 사이

등록 2015-01-13 19:16수정 2015-01-13 21:12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최신작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미 해군 특수부대 저격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단순한 전쟁 영웅 얘기를 넘어 ‘진짜’ 보수주의자의 전쟁에 대한 시각을 보여준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최신작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미 해군 특수부대 저격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단순한 전쟁 영웅 얘기를 넘어 ‘진짜’ 보수주의자의 전쟁에 대한 시각을 보여준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클린트 이스트우드 ‘아메리칸 스나이퍼’
공식 160명·비공식 255명 저격
미군 자서전 바탕으로 한 영화
‘또다른 영웅주의’ 시각 있지만
‘선·악 경계 무의미’ 고민 담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필모그래피에서 서부극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창시자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1964), <석양의 무법자>(1966)는 그의 출세작이다. 그는 주연은 물론 연출까지 맡은 <용서받지 못한 자>(1992)에 자신의 마지막 서부극이라는 인장을 찍었다. 이 영화는 기존 서부극의 전형적인 영웅주의를 뒤집은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클린스 이스트우드의 최신 연출작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한때 자신의 상징과도 같았던 서부극의 새로운 변주인 듯 보인다. 서부 개척 시대 총잡이의 권총은 최정예 부대 저격수(스나이퍼)의 조준경 달린 소총으로 바뀌었지만, 무엇을 위해 총을 잡는지, 총을 쏘는 이는 영웅과 악인 사이 어디쯤에 있는지를 곱씹게 만든다는 점에서 <용서받지 못한 자>의 맥을 잇는 것도 같다. 실존 인물 크리스 카일의 자서전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또 하나의 대표작 반열에 오를 듯하다.

미국 남부 텍사스의 보수적인 가정에서 나고 자란 크리스(브래들리 쿠퍼)는 어릴 적부터 카우보이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의 삶을 바꾼 결정적 계기는 어느날 뉴스에서 접한 영상이다. 미국 대사관이 테러로 공격당하는 장면을 보고는 서른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군입대를 결심한다.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의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친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배운 사격 솜씨를 발휘해 저격수가 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최신작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미 해군 특수부대 저격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단순한 전쟁 영웅 얘기를 넘어 ‘진짜’ 보수주의자의 전쟁에 대한 시각을 보여준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최신작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미 해군 특수부대 저격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단순한 전쟁 영웅 얘기를 넘어 ‘진짜’ 보수주의자의 전쟁에 대한 시각을 보여준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운명적 사랑에 빠진 타야(시에나 밀러)와 결혼식을 올리던 날 파병 소식을 전해듣는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선포한 ‘테러와의 전쟁’에 투입된 것이다. “중동의 서부”라 불리는 이라크 팔루자에서 그는 저격수의 임무를 수행한다. 건물 옥상에 매복해 지상의 아군을 공격하려는 적을 제거하는 게 그의 일이다. 아군을 살리기 위해 대전차 지뢰를 품고 달려드는 어린아이에게까지 방아쉬를 당겨야 하는 순간도 있다.

크리스 카일은 실제로 공식 160명, 비공식 255명이라는 미군 사상 최다 저격 기록을 지니고 있다. 아군으로부터 영웅으로 칭송받지만, 적군으로부터는 악마라 불리며 거액의 현상금까지 걸린다. 그런 그를 노리는 적군의 스나이퍼도 등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전의 다른 영화에서 본 듯한 스나이퍼 대 스나이퍼의 대결 구도로 흘러가는 건 아니다. 영화는 고전적 전투와는 다른 현대전의 양상을 사실적이면서 박진감 넘치는 화면에 담아낸다.

이 영화 역시 미국식 영웅주의의 또 다른 발현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국 중심의 이야기 전개 탓에 그런 비판을 받을 여지도 상당하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실존하는 전쟁영웅을 단순히 미화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크리스가 가족과의 평온한 삶을 포기하고 왜 전쟁터로 가는지, 왜 누군가를 향해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지점 또한 충분치는 않지만 어느 정도 품어낸다.

아내와 아이를 뒤로 하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적군 스나이퍼 또한 크리스와 다르지 않음을 내비치는 묘사는 전쟁에서 선과 악의 경계를 명확히 긋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를 새삼 곱씹게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2006년 내놓은 전쟁영화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통해 이런 화두를 던진 적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오지마 전투를 배경으로 미군과 일본군의 시선으로 각각 풀어낸 두 편의 영화는 서로 반대편에 자리하면서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이어진다. 영웅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죽은 자들을 추모하고 화해를 제안한다.

전쟁 이후 참전 후유증에 시달리는 병사들의 모습도 이 영화에서 간과해선 안될 지점이다. 영웅으로 칭송받는 크리스 또한 예외가 아니다. 어렵게 후유증을 이겨낸 크리스는 다른 참전 용사들을 도우며 전쟁 이후의 삶을 살다 예기치 못한 비극을 맞는다. 영화는 이 부분을 굉장히 담담하게 그리는데, 그래서 메시지가 더욱 묵직해진다.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할리우드에서 공화당에 가까운 보수 성향을 띠면서도 조지 부시 일가가 일으킨 전쟁에 반대 뜻을 분명히 한 ‘진짜’ 보수주의자의 의미있는 목소리다. 14일 개봉.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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