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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국제시장의 ‘덕수’는 없고…땅을 탐하는 ‘종대’가 있다

등록 2015-01-20 19:23수정 2015-01-20 21:01

이민호가 맡은 종대(오른쪽)와 김래원이 연기하는 용기(왼쪽)의 처절한 삶을 통해 유하 감독은 70년대 강남 개발에 투영된 한국 사회의 비뚤어진 욕망을 그린다. 엔드크레딧 제공
이민호가 맡은 종대(오른쪽)와 김래원이 연기하는 용기(왼쪽)의 처절한 삶을 통해 유하 감독은 70년대 강남 개발에 투영된 한국 사회의 비뚤어진 욕망을 그린다. 엔드크레딧 제공
‘강남 1970’ 21일 개봉
‘국제시장’이 기성세대 찬사라면
‘강남 1970’은 질타에 가까워
유하 감독 ‘거리 3부작’ 완결판
“천민자본주의 시작 얘기하고파
이 욕망은 과거 아닌 현재 은유”
2015년 상반기 극장가에도 ‘복고’ 바람이 거세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국제시장>을 시작으로 50년대를 배경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그린 <허삼관>, 70년대 강남개발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을 그려낸 <강남 1970>, 70년대 포크 열풍을 다룬 <쎄시봉> 등이 연이어 개봉한다. 과거의 추억을 되짚으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전략은 케이블 티브이 드라마 <응답하라>(1997·1994) 시리즈의 성공 이후, 영화·드라마·쇼오락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과거를 ‘어떻게’돌아보느냐다. 21일 개봉하는 영화 <강남 1970>은 같은 70년대를 다루면서도 과거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국제시장>과 결을 달리한다. <국제시장>이 “1960~70년대 산업화를 위해 온몸을 바친 아버지 세대의 희생이 오늘날 풍요로움의 근간이 됐다”는 기성세대에 대한 일종의 ‘헌사’라면, <강남 1970>은 “1970년대 부동산 개발을 둘러싼 비뚤어진 욕망이 오늘날 한국을 물질만능주의 사회로 만들었다”는 ‘질타’에 가깝다.

<강남 1970>은 1970년대 ‘인구를 고르게 분배하고 국토의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던 ‘영동 토지구획 정리사업’(강남개발사업)을 소재로, 땅에 대한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욕망의 근원을 쫓는다.

고아원 출신 넝마주이 ‘종대’(이민호)와 ‘용기’(김래원)는 밑바닥 인생이다. 생라면 한 개를 나눠 먹는 것으로 배고픔을 달래고, 이불 속에 알전구를 넣어 그 열로 추위를 달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어느 날, 이들이 살던 무허가 판자촌이 철거되면서 둘은 조직의 중간 보스 ‘길수’(정진영)를 우연히 만난다. 길수의 권유로 전당대회 훼방작전에 동원된 건달패에 끼게 된 종대와 용기는 그곳에서 헤어진다.

그 후 3년. 갈 곳이 없어진 종대는 길수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여기고 함께 살게 된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서울의 중심을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기려는 계획이 추진된다. 허허벌판인 강남땅을 헐값에 매입한 뒤 ‘남서울 개발 계획’을 발표해 땅 값을 뻥튀기 하고 그 돈을 대선자금에 쓰기 위한 은밀한 작전이다. 종대는 ‘몸을 뉘일 수 있는 방 한 칸을 마련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품고 복부인 ‘민 마담’(김지수)과 함께 강남개발 이권다툼에 뛰어든다. 조직생활에 몸을 담아 ‘명동파’중간보스가 된 용기는 3년 만에 종대와 재회하고, 더 많은 부를 갖고 싶은 욕망에 음모와 협잡, 배신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간다.

유하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그 당시 땅 얘기를 통해 돈의 가치가 어떤 도덕적 가치나 민주적 가치보다 우월한 세상, 뒤틀린 천민자본주의의 시작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의 은유”라고 말했다. 영화 시작에 ‘모든 인물과 사건은 허구임’을 밝히지만 이 영화가 1970년대 한국의 정치·경제사로 읽힐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울 개발 50년사를 촘촘히 엮어낸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손정목)가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는 점도 텍스트의 사실성을 높인다.

김지수가 맡은 민 마담(오른쪽)과 종대 일행.
김지수가 맡은 민 마담(오른쪽)과 종대 일행.
<강남 1970>은 <말죽거리 잔혹사>(2004), <비열한 거리>(2006)를 잇는 유하 감독의 ‘거리 3부작’ 완결편이기도 하다. 유하 감독은 “<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제도교육이 어떻게 폭력성을 키워내는지를 다뤘고, <비열한 거리>에서 돈이 어떻게 폭력성을 소비하는가를 다뤘다면 <강남 1970>은 권력이 폭력을 소비하는 방식을 그리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소박한 꿈이 욕망으로 변하고 그 욕망을 위해 음모와 배신도 서슴지 않지만, 결국은 더 큰 욕망을 품은 권력의 희생양에 불과한 종대와 용기의 삶은 전작의 그 어떤 폭력보다 더 처절함과 잔인함을 함축한다. 또한 이는 권력의 주도로 이뤄진 강남 개발의 폭력성에 대한 또다른 은유이기도 하다. 칼은 물론 삽과 곡괭이, 도끼까지 등장하는 유혈 낭자한 폭력신은 이런 이유로 무척이나 불편하지만 또한 타당하다.

유하 감독은 권상우(말죽거리 잔혹사), 조인성(비열한 거리)에 이어 이민호를 선택해 또다시 청춘스타를 넘어선 배우로서의 모습을 끌어낸다. 날 선 욕망 속 세밀한 감정표현까지 해내는 김래원의 연기력은 영화를 받치는 또 하나의 축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에 ‘원 서머 나이트’, ‘원 웨이 티켓’이, <비열한 거리>에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과 ‘땡벌’이 있었다면, <강남 1970>엔 ‘제3한강교’와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가 시대를 읊으며 다시 한 번 관객의 마음을 두드린다. 전작들보다 다소 장황하고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강남 1970>은 시대를 읽어내는 유하 감독만의 코드가 살아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영화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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