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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악마의 길을 걷는다, ‘참나’를 찾아

등록 2015-01-20 19:38수정 2015-01-20 21:04

셰릴 스트레이드 역을 맡은 리즈 위더스푼.
셰릴 스트레이드 역을 맡은 리즈 위더스푼.
‘와일드’ 22일 스크린 여행
미국 서부 4200㎞ 도보로 종단
26살 여인 감동실화 바탕 영화
위더스푼, 멍 투성이로 혼신 연기
당사자도 늘 촬영장 나와 ‘교감’
작고 가냘픈 몸으로 자신의 몸집보다 큰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나선 26살 여인이 있다. 건장한 남자들도 좀처럼 완주하기 힘들다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걷고 또 걷는다. 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4200여㎞의 도보여행 코스. 거친 등산로와 눈 덮인 고산지대, 9개의 산맥과 사막, 광활한 평원과 화산지대까지 인간이 만날 수 있는 모든 자연 환경을 거치고서야 완주할 수 있어 ‘악마의 코스’로 불린다. 중간중간에 있는 방명록에 그는 이런 글을 남긴다. “1일째, 몸이 그댈 거부하면 몸을 초월하라. -에밀리 디킨슨 그리고 셰릴 스트레이드.” “나는 발걸음이 느립니다. 그렇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그리고 셰릴 스트레이드.” 그는 왜 이런 극한의 여행에 나선 걸까?

가난한 삶, 아빠의 폭력, 부모의 이혼….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제 엄마, 남동생과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나 했더니, 기댈 수 있는 큰 산이자 유일한 희망인 엄마가 덜컥 암에 걸려 세상을 뜬다. 이후 엄청난 상실감에 젖어 마약과 섹스로 스스로의 삶을 파괴하는 셰릴 스트레이드. 엉망진창의 나락에서 문득 정신을 차린 그는 슬픔을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고자 극한의 공간인 피시티를 걷기로 결심한다. 엄마가 자랑스러워했던 딸로 다시 돌아가기 위하여. 연간 125명가량만이 평균 152일 걸려 완주에 성공한다는 이 코스를 그는 94일 만에 걸어낸다. 그리고 그간의 경험을 짧은 자서전 형식의 <와일드>에 담아낸다. 2012년 책은 출간과 동시에 <뉴욕타임스> 논픽션 부문 1위에 오르고 각종 베스트셀러 차트를 휩쓴다.

비행기에서 <와일드>를 읽은 할리우드 배우 리즈 위더스푼은 눈물을 흘린다. 영화제작사를 차린 지 얼마 안 된 그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셰릴 스트레이드를 수소문해 영화 판권을 얻는다.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어바웃 어 보이> 등의 원작 작가인 닉 혼비도 <와일드>를 읽고 크게 감동한 나머지 제작진에게 연락해 각본을 자청한다. 지난해 아카데미 3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후반 작업을 하던 장 마크 발레 감독은 <와일드>의 각본을 읽고 감독직을 수락한다.

리즈 위더스푼은 셰릴 스트레이드 역을 맡아 온몸이 멍투성이가 될 정도로 혼신의 연기를 펼친다. 발톱이 빠지고 커다란 배낭에 등과 허리가 패이는 고통이 보는 이에게 그대로 전해져온다. 지난날의 상처를 끄집어내고 끝내 이를 극복해내는 모습은 관객들 저마다의 상처까지 치유해주는 듯하다. <금발이 너무해> <디스 민즈 워> 같은 로맨틱 코미디의 리즈 위더스푼은 잊어도 좋다. 그는 <와일드>로 다음달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 당사자인 셰릴 스트레이드는 촬영장에서 늘 리즈 위더스푼과 함께하며 교감했다고 한다.

스크린에 담긴 대자연은 때론 공포와 고통의 대상이지만, 모든 걸 압도할 만큼 경이롭고 아름답다. 극중 셰릴 스트레이드는 힘들 때마다 엄마 바비(로라 던)가 생전에 좋아했던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철새는 날아가고’(엘 콘도르 파사)를 흥얼거리는데, 영화가 끝나고 원곡이 흐를 때의 벅찬 감동은 엔딩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한다. 22일 개봉.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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