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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쿨한 멜로’ 가 좋다 ’징한 멜로’ 가 좋다

등록 2005-09-28 17:28수정 2005-09-29 14:05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100℃커버스토리] 멜로영화 핫&쿨

끌려다니지 않아 씩씩해서 아름다운

‘쿨한 멜로’ 가 좋다

쿨한 멜로. 가는 사람 붙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 사랑, 그것이 쿨한가? 영원한 사랑의 맹세 따위는 버린 다다익선의 사랑, 그것이 쿨한가? 질질 짜지도, 구속하거나 구속받지도 않는 사랑, 그것이 쿨한가? 만약, 쿨한 사랑이 단지, 이것뿐이라면, 이 사랑, 정말 재미없다. 모름지기 끈끈한 집착과 속 타는 절박감에서 사랑은 마침내 탄생할지니. 그러니 쿨한 멜로가 사랑에 집착하지 않는 쿨한 도시인의 이야기라는 정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건 쿨한 사랑이 아니라, ‘쿨함’의 껍데기를 숭배하는 도시인의 ‘무늬만’ 사랑일 뿐이다. 질척거리는 고통과 상처에 빠지기 전에 멋지게 굿바이를 외치는 쿨한 도시인의 사랑은 도무지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도대체 쿨한 멜로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사랑에는 고통이 있다. 불치병이나 죽음 같은 극단의 상황을 굳이 만들어내지 않아도 사랑 자체가 야기하는 충분히 뼈아픈 현실의 고통이 있다. 그리고 그 고통에 정면으로 대면하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있다. 그녀들은 고통 앞에서 신데렐라의 환상 속으로 빠져 들지도 않고 영원불멸의 희생을 맹세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고통이 엄습하기 전 쿨하게 떠나지도 않는다. 그녀들은 사랑과 고통의 불가분성을 알고, 고통을 사유한다. 중요한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니고, 지금, 여기다. 그러므로 과거 사랑의 순정이 퇴색한 것에 죄의식을 느끼거나, 지금의 사랑을 미래의 결혼으로 보장받으려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오직 지금, 이 순간! 쿨한 멜로의 여성들은 실체 없는 낭만적 환상을 꿈꾸는 대신, 피와 살로 이루어진 순간의 사랑, 순간의 관계를 성찰한다. 모든 사랑의 환상을 거둘지라도 ‘사랑은 없어’ 따위의 경박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녀들이 믿는 것은 어느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 자체의 가능성이므로.

그리하여 쿨한 멜로를 굳이 판가름해야 한다면, 거기에는 사랑이 나를 끌어주길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씩씩한 발걸음으로 사랑에 길을 내는 여성들이 있다. 그녀들이 쿨했던 이유는, ‘사랑은 변해’라고 말해서가 아니다. 그녀들은 변하는 사랑 앞에서 사랑을, 타자를 부정하는 대신, 사랑에 따르는 고통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의 인생에 새긴다. 사랑, 그 찰나의 충만함과 끝없는 고통의 냉혹함 앞에서 눈을 감지 않고도 ‘알아, 하지만 그게 뭐?’라고 말하며 또다시 사랑에 점프하는 뜨거운 사람들의 멜로. 그것이 쿨하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남다은 영화평론가
내가 본 최고의 쿨한 멜로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처럼 어린 여자가 이처럼 의연하게 사랑의 오고 감을 응시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던가. 사랑의 환상과 현실의 냉정함 사이에서 그 아픔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던 소녀. 사랑이 떠난 후, 휠체어를 타고 그녀는 홀로 길을 나선다. 그 슬픈 뒷모습에서 세상을 향해 또 한 걸음 내딛은 여인을 본다. 그 순간, 사랑보다도 빛나던 순간.

남다은/영화평론가


쿨하면 뭐해 내 사랑 지켜야지

‘징한 멜로’ 가 졿다

기쁜 우리 젊은 날
기쁜 우리 젊은 날


남편과 결혼하기로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결국 ‘?’, 혹은 결국 ‘!’ 두 가지였다. 사회 초년병 시절에 만나 5년을 연애하고, 3년간 칼같이 헤어졌다가, 다시 조우해 2년간 교제하던 중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했으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헤어진 것도 아니었고, 나름 젊은 혈기에 혈흔 낭자한 상처를 입히고 비정하게 헤어졌던지라 내가 그와 다시 만난다는 소식을 듣고, 치맛자락 끌어당기며 제발 쿨하게 살아라, 만류한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쩌랴, 지난 시절 미움이 다 떨쳐지지 않아 괴로운 중에도 그의 옆에 있을 때가 가장 속 편하고, 맘 편하고, 그냥 딱 내 자리 같은 것을. 참으로 미련하고 못났다는 타박을 받으면서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다시 돌아온 그의 사랑을 믿어서가 아니라 미우나 미워할 수 없는, 그 끝이 다시 비참한 이별이더라도 일단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은 내 마음을 따르고 싶어서였다. 그랬다. 그 시절 내가 믿었던 것은 내 마음이었다. 이성적으로는 돌아서야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를 좋아했다. 한 번 더 속자, 한 번 더 당하자. 그렇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 마음을 따랐던 그 순간의 내가 참 소중하고 다행스럽다. 결국!(결국?) 결혼을 해서가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을 두고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살다가 혹 후회가 있다 한들 그것은 내 몫이 아닐 것이다. 버리고 싶다고 버릴 수 있고, 떠나고 싶다고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이 어찌 마음일 수 있을까. 김용택 시인의 시처럼 ‘어찌할 수 있는 것들을 어찌할 수 없는’ 그 자리에 놓인 것이 사랑이라고 나는 믿는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삶 전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진부하고 미련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따라 걸어보지 않고 어찌 자신의 삶을 다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인가. 신파를 사랑해 본 적 없는 이의 열정을 나는 믿지 않는다.

한때 나도 쿨한 여자를 꿈꾸었던 적이 있다. 일에 사랑에 운명에 상처받고 방황하던 시절, 매사 지고지순함이 내 발목을 잡는 거라고 자학하던 내게 좋은 벤치마킹이 될 거라며 친구가 추천해 준 영화가 <봄날은 간다>와 <질투는 나의 힘>이었다. 보고 나니 벤치마킹은커녕 쿨하면 뭐하나 싶었다. 결국은 상우가 생각나서 돌아왔던 은수도 ‘그리웠다’ 말하는 대신 엄한 화분이나 들이대고(<봄날은 간다>), 원상이 자꾸 생각난다던 성연도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말하는 대신 편집장 집에서 나오라고 독촉이나 하니(<질투는 나의 힘>), 상처받지 않겠다고, 자존심 지키고 살겠다고 좋은 사람한테 좋다는 말은 못하면서, 우아하고 깔끔하고 그야말로 ‘쿨’ 한 미소만 보여주면, 그러면 외롭지 않나.

한지혜 소설가
한지혜 소설가
내가 본 최고의 신파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

워낙 어려서 본 영화라 세세한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 사람을 한결같이 미련스럽게 바라보던 한 서글픈 눈과 사랑이 떠난 후 혼자 남겨진, 그러나 영화 속 어떤 모습보다 충만하던 한 사내와 그 사내를 눈부시게 감싸 안던 순백의 햇살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뭉클하다. 운명도 걸지 않고, 어찌 사랑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한지혜/소설가


시대 흘러도 ‘사랑 노래’ 식지 않는다

멜로영화 흐름

시대 흘러도 ‘사랑 노래’는 식지 않는다
시대 흘러도 ‘사랑 노래’는 식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쿨한 멜로’를 좋아할까, ‘징한 멜로’를 좋아할까. 정절을 중시하는 유교적 가치관의 전통에따라, 한 사람을 못 잊는 ‘징한 멜로’ 영화가 전통적으로 선호돼 왔지만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유행하던 90년대를 버티지 못했다. 90년대 중반부터 관계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쿨한 멜로’ 영화의 등장 이후로 두 경향의 멜로는 해마다 시소게임을 벌이고 있다.

60년대까지 신파 대세
‘접속’ 쿨한 멜로 등장
90년대이후 혼재

신파 멜로의 선창=‘사랑가’는 물론 신파 멜로가 먼저 불렀다. 1923년, 일본인에 의해 처음 <춘향전>이 영화화하고, 첫 발성영화로 또 <춘향전>(이명우 감독, 1935년)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연인은 죽인다고 협박해도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고 하고, 죽어서도 그 사람만을 사랑한댔다. 한 개인이 처한 모든 상황도 사랑의 고난과 비극을 위한 기폭제로 작동한다. 주인공도, 관객도 그냥 운다. 심순애가 설령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말했던들, 이수일은 애꿎은 다이아몬드를 미워하지 순애를 미워하진 않았을 거다(<수일과 순애>, 1931). 사랑은 운명이기 때문. 사실 수일은 순애를 증오했지만, 그건 사랑의 이음동의어. 모두 자살하고 마는 주인공, 그를 보는 관객은 또 울게 마련이다.

1960년대, 신파의 전성시대=60년대는 신파 멜로의 전성시대였다. 멜로 안에서 주인공 여럿이 세상을 등졌다. 꼭 한 명은 수드라 계급이었다. 부잣집 여대생 요안나(엄앵란)와 건달 두수(신성일)가 신분 차이로 동반자살해 그들만의 사랑을 영구히 하는 <맨발의 청춘>(1964)이 상징적이다. 착취받는 여성성과 이별의 비극이 착종하는, 소위 ‘모성 멜로’의 틀을 확립한 <미워도 다시 한번>(1968)은 4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1963년 전체 148편의 제작 영화 가운데 81편이 멜로였다. 1969년엔 229편 가운데 103편. 멜로가 시대를 이끌었다.

전환기, 쿨한 멜로의 등장=‘전환시대의 멜로’는 <접속>(1997)으로 가능했다. 옛 사랑을 잊지 못해 자폐적 삶을 사는 동현(한석규)과 짝사랑으로 앓던 수현(전도연)이 사이버 만남으로 인해 눈물을 털고 말갛게 세상 밖으로까지 나온다는 점에서 <접속>은 반신파적이다. 영화를 보기로 약속한 채 맺는 결말은 전혀 멜로스럽지 않다. 이전과 달리, 집착도 강요도 없다. 그럼에도 “컴퓨터 통신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접속>이야말로 완전히 ‘신세대’취향의 영화여서 갈채를 받았다”는 호현찬(전 영화진흥공사 사장)씨의 말마따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김소희 영화평론가는 “멜로 드라마는 시대에 따라 지속적으로 자기 변화를 해왔다”고 설명한다. 시대 감성에 부합한 덕에 1960년대에 이은, 그러나 60년대와는 색이 다른 멜로의 전성시대를 불러냈다.

맞장, 어쨌든 멜로=90년대부터 멜로는 가벼워진다. <그 여자 그 남자> <결혼 이야기> 등은 연애 담론을 과잉화한 멜로와 코미디의 사잇길을 걷는다. 일면 ‘쿨한 멜로’로 가는 길인 셈. 하지만 <접속>의 맞수로 바로 <편지>(1997)가 등장하며 신파 멜로 또한 건재함을 알린다.

함께 살 수만 있다면야…, 펑펑 눈물을 흘리는 박신양의 <약속>(1998)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동명 영화, 2001)며 퉁바리 맞아야했지만, 한편으론 “네 마음 속의 나를 지우지마”(<약속>의 머리 카피)라는 절절한 바람이, 그게 지워진대도 유구히 퍼부을 수밖에 없는 게 사랑이란 철수(<내 마음 속의 지우개>의 정우성, 2004)를 만나고선 되레 겸연쩍었을지도 모른다.

역대 멜로영화 흥행 대결
역대 멜로영화 흥행 대결


부모의 사랑이 이뤄지지 못했다면 후세대가 완성하는 것(<클래식>, 2003).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현 세대에서조차 “사랑이 이만큼 왔다고 느끼는 순간, 봄날은 간다”(<봄날은 간다>, 2001)고 말한 이도 있다.

“헤어져!”(지혜, 손예진) “난 정말 바본가봐. 난, 널 좋아하는 것 이외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준하, 조승우)-<클래식>.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상우, 유지태) “헤어져.”(은수, 이영애)-<봄날은 간다>.

그렇다. ‘신파’는 애절한 말들이 길어 아프거나 유치해서 뚝심 있고, ‘쿨’은 소박한 여운이 길어 애잔하거나 씁쓸해서, 반짝인다. 모두 우리 시대 사랑법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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