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폭스캐처>의 한 장면.
‘머니볼’ 베냇 밀러의 ‘폭스캐처’
존 듀폰 사건 실화 바탕해 제작
스티브 카렐의 신들린 연기 기대
존 듀폰 사건 실화 바탕해 제작
스티브 카렐의 신들린 연기 기대
1996년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용의자는 미국 최대의 화학 재벌 ‘듀폰’가의 상속인 존 듀폰. 총을 맞고 숨진 이는 존 듀폰이 후원하던 레슬링팀 ‘폭스캐처’ 소속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존 듀폰’ 케이스라 불린 이 사건은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들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여러 추측이 제기됐으나, 확실한 범행 동기는 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존 듀폰이 감옥에 수감되며 사건은 마무리됐다.
베넷 밀러 감독은 이 사건에 주목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살인마를 취재해 걸작 논픽션 소설을 쓴 실존 저널리스트 트루먼 카포티를 소재로 한 <카포티>(2005), 경기 데이터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머니볼’ 이론으로 메이저리그에서 기적 같은 신화를 쓴 빌리 빈의 이야기를 그린 <머니볼>(2011)을 연출한 그다. 이번에도 실화를 선택한 그는 관련 자료를 찾고 인터뷰를 하며 사건이 벌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해나갔다. 5일 개봉하는 <폭스캐처>가 그 결과물이다.
<카포티>에서 필립 시모어 호프먼, <머니볼>에서 브래드 피트와 작업한 베넷 밀러 감독은 이번에 세 명의 배우와 만나 그들 생애 최고의 연기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장 놀랍게 변신한 이는 존 듀폰을 연기한 스티브 카렐이다. <40살까지 못해본 남자> <미스 리틀 선샤인> 등으로 코미디 배우의 대명사가 된 스티브 카렐은 존 듀폰 역을 자청했다. 베넷 밀러 감독은 “처음에는 그가 존 듀폰을 소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첫 만남 뒤 캐스팅에 확신을 갖게 됐다. 코미디언의 내면에는 어두운 면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어머니에게 인정받기 위해 레슬링팀을 꾸리고 선수들의 멘토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고자 한 존 듀폰의 기이하고 섬뜩한 면모를 스티브 카렐은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그는 오는 22일(현지시각)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이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영화에는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형제인 데이브 슐츠와 마크 슐츠가 등장한다. 동생 마크 슐츠가 먼저 존 듀폰의 팀에 들어가고, 나중에 형 데이브 슐츠가 합류한다. <스텝업> <지.아이.조 2> 등으로 섹시스타 반열에 오른 채닝 테이텀이 형의 그늘에 가린 마크 슐츠 역을 맡아 연기파 배우로 거듭났다. 오랜 연습으로 짓이겨진 귀부터 체형, 걸음걸이까지 그야말로 레슬링 선수 그 자체다. 국가적 영웅 같은 존재인 데이브 슐츠 역은 <어벤져스> <비긴 어게인>의 마크 러팔로가 맡아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실제 레슬링 선수 출신인 마크 러팔로는 채닝 테이텀과 넉달간 함께 훈련하며 실제 같은 연습 장면을 탄생시켰다.
영화는 세 남자가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게 됐는지를 담담하면서도 어둡고 음울한 시선으로 좇는다. 각자의 내면을 미묘하게 그리면서도 뚜렷하게 드러내놓지는 않아 영화가 끝나고 나도 뒷맛이 남는다. 극적 구성을 위해 실제 사건을 과하게 단순화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것이 영화의 장점이 됐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고, 아카데미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각본상, 분장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