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출신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영화 <버드맨>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각본상·촬영상을 수상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로스앤젤레스/EPA 연합뉴스
줄리앤 무어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버드맨’이 실제로 있다면 두 날개를 활짝 펴고 아카데미 시상식장 위를 날아다니지 않았을까?
2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버드맨>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하며 이날 주인공이 됐다.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파 배우 줄리앤 무어는 영화 <스틸 앨리스>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4전5기’ 끝에 생애 첫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버드맨>은 한때 슈퍼히어로 ‘버드맨’으로 할리우드 톱스타 자리에 올랐으나 지금은 잊혀진 배우 리건 톰슨(마이클 키턴)이 꿈과 명성을 되찾기 위해 브로드웨이 연극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화려한 블록버스터가 대세인 할리우드와 자존심 강한 브로드웨이에 대한 풍자를 담은 블랙코미디다. <21그램> <바벨> <비우티풀> 등으로 유명한 멕시코 출신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버드맨>으로 감독상의 영예를 안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장면의 끊김 없이 하나로 이어지는 ‘원테이크’처럼 보이게 한 독특한 기법은 촬영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1989년 <배트맨>과 1992년 <배트맨2> 이후 이렇다 할 흥행작을 내지 못하고 대중으로부터 잊혀진 마이클 키턴은 영화 속 주인공과 비슷한 처지다. 그는 자신의 얘기를 담은 듯한 <버드맨>으로 20여년 만에 비상하며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은 데 이어, 아카데미에서도 강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꼽혔다. 비록 남우주연상은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를 연기한 영국 배우 에디 레드메인에게 돌아갔지만, 그의 연기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시상식 사회자인 배우 닐 패트릭 해리스는 흰 팬티와 검은 양말 차림으로 무대에 등장해 영화 속 마이클 키턴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여우주연상은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줄리앤 무어에게 돌아갔다. 그는 <스틸 앨리스>에서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중년 여성 앨리스의 심리를 섬세한 표정으로 표현해냈다. 줄리앤 무어는 칸·베를린·베니스(베네치아) 영화제를 비롯해 여러 영화상을 받았지만, 유독 아카데미와는 인연이 없었다. 1998년 <부기 나이트>로 여우조연상 후보, 2000년 <엔드 오브 어페어>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2003년에는 <파 프롬 헤븐>과 <디 아워스>로 여우주연상·조연상 후보에 동시에 올랐지만, 번번이 트로피는 다른 이의 몫이었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늘 고립된다는 느낌을 받고 있을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영화를 통해 조명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루게릭병(ALS)으로 투병중인 리처드 글랫저 감독과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감독에게도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남우조연상은 <위플래쉬>에서 천재 드러머를 지도하는 괴짜 교수를 연기한 제이케이 시먼스에게, 여우조연상은 <보이후드>에서 강인한 어머니를 연기한 퍼트리샤 아켓에게 돌아갔다. 한 가족의 12년 동안의 이야기를 실제로 12년에 걸쳐 촬영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는 주요 부문에서 <버드맨>의 강력한 라이벌로 꼽혔으나, 여우조연상 수상에 만족해야 했다. 지난해 국내에서 77만여 관객을 모으며 ‘아트버스터’ 열풍을 일으킨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의상상, 분장상, 미술상, 음악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주제가상은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 이야기를 그린 <셀마>의 ‘글로리’에 돌아갔다. 올 아카데미상은 <셀마>가 작품상과 주제가상 후보에만 오르고, 감독상과 주조연 배우상 후보가 모두 백인들로 채워져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존 레전드와 커먼이 축하 공연에서 ‘글로리’를 부르자 영화에서 마틴 루서 킹을 연기한 데이비드 오옐로워는 눈물을 흘렸다. 존 레전드는 수상 소감에서 “자유를 향한 우리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많은 흑인들이 여전히 핍박받는 게 사실이다. <셀마> 노래를 부르며 같이 행진할 것”이라고 말해 기립 박수를 받았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아카데미와 유독 인연이 없었던 줄리앤 무어(왼쪽)가 영화 <스틸 앨리스>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생애 첫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를 연기한 에디 레드메인(오른쪽)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로스앤젤레스/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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