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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달큼알싸한 와인 같은 인생을 위하여 건배!

등록 2015-03-03 19:36

영화 <해피 해피 와이너리>의 한 장면.
영화 <해피 해피 와이너리>의 한 장면.
영화 ‘해피 해피 와이너리’ 12일 개봉
포도밭 형제·한 여인의 상처와 치유
미시마 유키코의 ‘해피 브레드’ 후속
“한 병의 와인에는 세상의 어떤 책보다 더 많은 철학이 들어있다.”(파스퇴르)

봄이 되면 농부는 포도밭을 갈고 나뭇가지를 친다. 여름 내 포도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에 익어간다. 농부는 포도 줄기가 잘 뻗도록 줄을 매고 가지를 솎아준다. 초가을이 되면 포도를 따 통속에 저장한다. 통 속에서 오랜시간 숙성되고 발효된 포도는 드디어 ‘와인’으로 탈바꿈 한다. 다음해 봄이 되면 포도나무에는 새로운 눈이 생긴다. 이 때 나무에서 즙이 생겨 떨어진다. 사람들은 이것을 ‘포도의 눈물’이라고 부른다. 포도의 눈물이 순수할수록 와인 역시 깊은 맛을 낸다.

포도가 오랜 인내의 과정을 거쳐 와인으로 변하듯, 우리네 삶도 고통과 상처를 견디고 이겨내야 새로워진다. 오는 12일 관객을 찾는 일본 영화 <해피 해피 와이너리>는 홋카이도 소라치의 한 와이너리를 배경으로 각자의 상처를 딛고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지난 2012년 한·일 영화팬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해피 해피 브레드>(미시마 유키코 감독)의 후속편 격이다. 감독과 주연 배우 오이즈미 요, 주요 제작진들이 3년만에 그대로 뭉쳐 이번에는 빵이 아닌 와인을 들고 나섰다. 마치 “인생이 달고 고소한 것만은 아니다. 때론 알싸하게 쓴 것이 바로 인생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처럼.

영화 <해피 해피 와이너리>의 한 장면.
영화 <해피 해피 와이너리>의 한 장면.
홋카이도 소리치. 그곳에 12살 띠동갑 형제 ‘아오’(오이즈미 요)와 ‘로쿠’(소메타니 쇼타)가 살고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형제에게 밀밭과 포도나무 한 그루를 남겼다. 음악을 하겠다며 집을 떠난 형 아오를 대신해 어린 동생 로쿠는 드넓은 밀밭을 홀로 지켜왔다. 5년 전 형은 고향에 돌아와 포도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도나무 한 그루만 있던 황무지는 어느새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포도 농장으로 변했다. 하지만 아오의 갖은 노력에도 좀처럼 원하는 와인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평화롭고 단조로운 나날을 보내던 형제의 삶에 캠핑카를 타고 온 여인 ‘에리카’(안도 유코)가 등장한다. 갑작스레 나타난 에리카는 다짜고짜 땅을 파기 시작한다. 그런 에리카를 쫓아내려는 아오와 달리 마을 사람들과 동생 로쿠, 강아지 ‘바베트’는 에리카의 생기발랄한 매력에 매료된다. 좌충우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이, 형제와 에리카는 깊은 상처와 비밀을 나누며 서로를 도닥인다. 그 과정을 통해 와인 맛의 비밀과도 같은 인생의 비밀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큰 진폭이 없이 잔잔하다. 관객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호사는 바로 아름다운 홋카이도의 풍광이다. 전작 <해피 해피 브레드>에서 홋카이도 도야코 호수를 배경으로 소박하고 정겨운 카페 마니의 풍경을 그려낸 미시마 유키코 감독은 이번엔 포도농장과 밀밭의 풍경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밀밭, 송알송알 영글어가는 포도밭을 중심으로 홋카이도의 4계절을 빼곡히 담아낸다. 참나무통 안에서 살아 숨쉬며 발효되는 와인, 따뜻한 봄날 포도나무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의 눈물까지 놓치지 않는다. 감독은 홋카이도의 풍광을 담아내는 데만 별도로 1년여의 시간을 할애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자연 만큼, 풍성한 식탁도 볼거리다. 영화는 집 텃밭에서 직접 기른 식재료로 한끼 식탁을 차려 소중한 이웃들과 나눈다는 ‘킨포크’방식을 잘 살려낸다. 오감을 자극하는 갖가지 요리를 정답게 나눠먹는 소박한 식사 장면에서는 침이 꼴깍 넘어갈 수밖에 없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와인 한 잔에 ‘건배’를 외치며 하루를 마감하는 것도 좋겠다. 행복이 뭐 별건가?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아 잘 숙성시킨 와인 한 잔을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의 비결일 터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씨네룩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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