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플래쉬>의 한 장면.
스릴러 같은 음악영화 ‘위플래쉬’
가혹하게 재능 채찍질하는 지휘자
손에서 피 나도록 연습하는 드러머
영화 내내 ‘두 사람의 전쟁’ 긴장감
아카데미 남우조연·음향·편집상
가혹하게 재능 채찍질하는 지휘자
손에서 피 나도록 연습하는 드러머
영화 내내 ‘두 사람의 전쟁’ 긴장감
아카데미 남우조연·음향·편집상
<위플래쉬>는 재즈 드러머에 관한 음악 영화다. 그런데 누군가는 스릴러, 스포츠 영화, 심지어 공포물로 보기도 한다. 팽팽한 긴장감, 넘치는 에너지, 몰아치는 속도감, 폭발할 듯한 광기가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영화를 온전히 지배하기 때문이다. 딱 한 마디로 간추리자면, <위플래쉬>는 ‘미친’ 음악 영화다.
앤드류(마일스 텔러)는 명문 셰이퍼 음악 학교 학생이다. 학교에서 그저 그런 밴드의 보조 드러머다. 혼자 드럼을 연습하다 플레처(제이케이 시먼스) 교수의 눈에 띈다. 그는 학교에서 최고 실력을 갖춘 ‘스튜디오 밴드’의 지도교수. 모두들 그의 밴드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다. 플레처는 앤드류를 자신의 밴드로 불러들인다.
앤드류는 스튜디오 밴드에 들어간 첫날부터 곤욕을 치른다. 연주를 제대로 못하는 앤드류에게 플레처는 집안 환경과 가족을 들먹이며 모욕하고 폭언을 일삼는다. 의자를 집어던지고 따귀를 때리기까지 한다. 학생의 잠재된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폭언과 폭력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는 게 플레처의 교육 철학이다. ‘위플래쉬’는 영화 속에서 연주되는 재즈 곡 제목으로, 채찍질을 뜻한다. 곡 중간의 채찍질 같은 ‘더블 타임 스윙’ 드럼 주법에서 기인한 제목인데, 영화에선 플레처의 엄혹한 교육 방식도 뜻하는 중의적 표현으로 쓰였다.
플레처는 전설적인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의 일화를 자주 얘기한다. 무명 시절 클럽에서 연주하던 찰리 파커가 솔로 부분을 망치자 드러머가 그를 향해 심벌즈를 던졌고, 관객들은 야유했다. 눈물을 머금고 절치부심한 찰리 파커는 피나는 연습 끝에 최고의 연주자가 됐다. 플레처는 ‘제2의 찰리 파커’를 만들기 위해 학생들을 향해 ‘심벌즈’를 날린다는 것이다.
앤드류는 플레처에게 복종하며 손에서 피가 뚝뚝 흐를 정도로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욕망과 집념이 고통은 물론, 문득 찾아온 사랑의 설렘까지 잊게 한다. 폭주하는 욕망은 어느덧 광기로 변하고,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할 위기에 처하자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큰 산 플레처를 향해 돌진한다.
서른살의 젊은 감독 데미언 차젤은 음악 전문 고등학교 시절 재즈 오케스트라 드러머였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본을 썼다. “박자를 놓칠 수 있다는 두려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무엇보다도 지휘자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지배했다고 한다.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위플래쉬>를 음악 영화이지만 전쟁 영화나 갱스터 영화 느낌이 나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제작비를 마련하고자 먼저 18분짜리 단편을 만들어 선댄스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뒤 106분짜리 장편으로 완성했다.
앤드류를 연기한 마일스 텔러는 모든 드럼 연주를 직접 했다. 6살 때부터 피아노를, 15살 때부터 드럼을 연주했다는 그는 영화를 위해 일주일에 사흘을 하루 4시간씩 드럼 연습에 매진했다. 그가 연주한 드럼에는 물집 잡힌 손에서 흐른 피가 묻어 있었다고 한다. 앤드류의 격렬한 연습 장면에서 데미언 차젤 감독은 ‘컷’ 사인을 주지 않고 마일스 텔러가 기력을 다해 스스로 멈출 때까지 연주하도록 놔두었다고 한다. 연습의 치열함을 리듬감 있는 편집으로 극대화한 장면에선 저도 모르게 탄성이 나온다.
플레처를 연기한 제이케이 시먼스의 연기는 오싹할 정도로 빼어나다. <스파이더맨>의 악덕 편집장으로 얼굴을 널리 알린 그는 플레처가 따뜻한 가슴을 가졌으면서도 일부러 위악적으로 행동한 건지, 정말로 뼛속까지 독기로 가득한 냉혈한인지 종잡을 수 없게 한다. 앤드류가 플레처를 덮치는 장면에서 그는 갈비뼈가 부러졌는데도 몰랐을 정도로 몰입했다고 한다. 제이케이 시먼스는 이 영화로 세계 40여개 영화상의 남우조연상을 휩쓴 데 이어, 지난달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위플래쉬>는 음향상, 편집상까지 3관왕을 차지했다.
숨가쁘게 내달리다 잠시 숨을 고르던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광란의 질주를 감행한다. 유명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서 플레처 때문에 최악의 위기에 내몰린 앤드류는 그동안 속에 응어리진 것들을 폭발시키며 최후의 반격에 나선다. 영화 속 공연장 객석에서 느낄 전율이 영화 바깥 극장 객석으로 고스란히 전이되는 순간이다. 이를 지켜보는 플레처의 표정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압축해 담은 듯하다. 12일 개봉.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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