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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권력에 짓밟힌 사내, 술 마시거나 울부짖거나

등록 2015-03-09 19:46

영화 ‘리바이어던’ 의 한 장면.
영화 ‘리바이어던’ 의 한 장면.
[리뷰] 영화 ‘리바이어던’
국가 이름으로 가해진 폭력에
저항하다 더 잔인하게 밟힌
평범한 가장의 무력함 그려
“땅 위에는 더 힘센 자가 없으니 누가 그와 겨루랴. (중략) 이는 두려움 없게 지음을 받았음이라. 모든 높은 것을 낮게 보고 모든 교만한 것의 왕이 되느니라.”(<욥기> 41장 중에서)

토마스 홉스는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성경 <욥기>에 등장하는 괴물을 통해 ‘지상의 신’으로 명명되는 국가, 즉 ‘리바이어던’의 절대권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국민 개개인이 위임한 권리의 집합인 국가는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할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홉스는 이 중대한 ‘사회계약설’을 논하며 ‘저항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만일 국가가 한 개인의 생명과 생활 수단을 빼앗는 부당한 폭력을 행사한다면, 개인은 어떻게 대항해야 할까?

러시아 거장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신작 <리바이어던>(19일 개봉)은 국가의 이름으로 한 인간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그려내며,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 집을 짓고 사는 자동차정비공 ‘콜랴’(알렉세이 세레브리아코브)는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부패한 시장 ‘바딤’(로만 마드야노프)이 화려한 별장을 짓기 위해 자신의 땅을 수용해버리기로 한 것. 콜랴는 변호사 친구인 ‘드미트리’(블리디미르 브도비첸코프)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시장은 물론 경찰과 법원까지 결탁한 부패한 현실은 그를 더욱 어려운 처지에 몰아넣는다.

경찰에 시장의 직권남용을 고발하러 갔다가 도리어 유치장에 갇히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아내 ‘릴랴’(옐레나 랴도바)는 드미트리와 바람을 피운다. 술로 화를 달래던 콜랴는 급기아 살인누명까지 쓰게 된다.

<리바이어던>이 ‘거대 권력에 맞서는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로 홍보된 탓에 허를 찌르는 묘수로 권력의 뒷통수를 내갈기는 ‘반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관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밟혀서 꿈틀하다가는 더 잔인하게 밟히고야 마는 ’나약한 개인의 삶을 관조하듯 보여줄 뿐이다. ‘법’으로 정의를 실현해줘야 할 법원은 랩을 퍼붓듯 알아들을 수 없는 판결문을 읊어대는데 그치고, ‘포용’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할 종교(러시아정교)는 “권력에 복종하며 운명을 받아들이고 저항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모든 것을 잃은 콜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결국 술을 마시거나 울부짖는 것 뿐이다.

영화 속에는 레닌부터 고르바초프, 푸틴에 이르기까지 구 소련과 러시아의 전·현직 지도자들의 초상이 여러차례 등장한다. 여기에 권력과 결탁한 러시아 정교의 부패상, 가난한 서민의 등골을 휘게 만드는 다양한 권력의 횡포까지 낱낱이 드러나는 까닭에 ‘반 푸틴, 반 러시아 영화’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이 영화는 가게를 팔라던 시멘트 회사의 제안을 거절한 한 용접공의 목숨을 건 저항을 담은 미국의 ‘킬도저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이와 비슷한 일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에게도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횡포는 낯선 일이 아니다.

바닷가에 널부러진 폐선과 앙상하게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고래의 뼈, 아이들이 모이는 폐허가 된 교회, 시종일관 황량하게 그려지는 러시아 북부지방의 차갑고 푸른 이미지들이 무거운 영화에 무게감을 더한다. 국가의 폭력 앞에 무릎꿇은 나약한 개인의 상실과 허무를 드러내는 듯 하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 올해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런던비평가협회 외국어영화상 등을 수상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오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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