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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31년 전 야구 소년! 응어리를 던져라 고국 마운드에서

등록 2015-03-15 19:21수정 2015-03-16 13:47

10일 오후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모임인 ‘몽당연필’이 운영하는 서울 성산동 카페 ‘연필 1/3’에서 만난 김명준 감독(오른쪽)과 조은성 프로듀서.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을 다룬 이들의 다큐멘터리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기획부터 완성까지 5년이 걸렸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10일 오후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모임인 ‘몽당연필’이 운영하는 서울 성산동 카페 ‘연필 1/3’에서 만난 김명준 감독(오른쪽)과 조은성 프로듀서.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을 다룬 이들의 다큐멘터리 <그라운드의 이방인>은 기획부터 완성까지 5년이 걸렸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다큐 ‘그라운드의 이방인’ 5년 여정
야구선수 꿈꾼 조은성 프로듀서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구상 뒤
김명준 감독에 삼고초려 제안…수락
대지진에 출연 고사 겹쳐 ‘설상가상’
우리말 하는 김근씨 실타래 풀어

1루

조은성씨는 중학교 때 야구부 유격수였다. 프로야구 선수가 꿈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길은 달랐다. 영화 조감독, 영화 소개 프로그램 작가 등을 거쳐 출판사에서 일할 때였다. 출판사가 화재로 전소돼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혼자 소주병 놓고 야구 보며 지내던 중 인터넷에서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에 관한 글을 봤다. ‘매력적인 소재다.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보자.’ 글쓴이를 수소문해 영화화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곧바로 김명준 감독을 찾아갔다.

김 감독은 애초 극영화 촬영감독이었다. 2002년 조은령 감독이 일본의 조선학교 다큐를 찍겠다고 찾아와 촬영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아예 함께 작업하게 됐고, 서로에게 끌려 결혼까지 했다. 일본에서 영화를 준비하던 조 감독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결혼한 지 여섯달 만이었다. 김 감독은 아내의 미완성작을 혼자 만들어가며 힘겨운 시절을 이겨냈다. 그렇게 완성된 <우리학교>는 2007년 개봉했다. ‘홋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의 교원, 학생들과 3년 5개월을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일상을 그려낸 이 영화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그라운드의 이방인>에 들어간 당시 자료사진들. 그들은 일본에서도 고국에서도 ‘이방인’ 신세였다.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그라운드의 이방인>에 들어간 당시 자료사진들. 그들은 일본에서도 고국에서도 ‘이방인’ 신세였다.
2루

영화 프로듀서로 나선 조씨는 김 감독을 만나 재일동포 사회에 대한 조언을 들을 심산이었다. 김 감독은 재일동포 사회의 속사정, 다큐 찍을 때 주의사항 등을 얘기해줬다. “아예 연출을 맡아주시면 어떨까요?” 조 피디의 제안을 김 감독은 거절했다. 야구에는 문외한인데다, 재일동포 야구단의 주축인 민단 쪽으론 네트워크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 피디의 계속되는 부탁, 김 감독은 결국 세번 만에 수락했다. “재일동포 야구단 600명이 이름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 누군가 해야 한다면, 당신이 나서야 한다. 안 하면 책임 방기”라는 주변 얘기에 마음이 움직였다.

2011년 3월, 사전 준비를 마치고 일본으로 가기 직전 생맥줏집에 모여 통닭을 먹다 충격적인 뉴스를 봤다. 동일본 대지진이 난 것이다. 모든 계획을 연기해야만 했다. 김 감독은 권해효, 안치환, 이지상 등과 ‘몽당연필’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재일동포 피해자 돕기에 매달렸다. ‘프로젝트를 접어야 하나?’ 조 피디는 체념했다. 무슨 일을 할까 고심하다 인천 야구에 관한 다큐 연출 의뢰가 들어왔다. 그 작업을 하면서 많은 원로 야구인들을 만났고, 재일동포 학생야구단에 대한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불씨를 되살린 둘은 2012년 여름 일본 고교야구 고시엔 대회 준결승·결승전을 촬영하면서 본격 작업에 들어갔다.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그라운드의 이방인>에 들어간 당시 자료사진들. 그들은 일본에서도 고국에서도 ‘이방인’ 신세였다.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그라운드의 이방인>에 들어간 당시 자료사진들. 그들은 일본에서도 고국에서도 ‘이방인’ 신세였다.
3루

우리 정부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6년 야구 발전을 위해 해외 선진야구를 초청한다는 취지로 해마다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모국 방문 초청 경기’를 주최했다. 1971년부터는 아예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초청했다. 쟁쟁한 야구 명문고들 사이에서 재일동포팀은 1974년, 82년, 84년 세차례 준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82년 멤버들은 군산상고와 함께 고교야구 최초로 동대문야구장이 아닌 잠실야구장에서 결승전을 치렀다. 김 감독과 조 피디는 이들을 찾아나서기로 했다.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당시 선수들은 대부분 귀화했거나 한국 국적이어도 일본 이름을 쓰고 있었다.

찾기도 쉽지 않았고, 어렵게 연락이 닿아도 “이제 와서 재일동포라는 게 밝혀지면 힘들어진다”며 촬영을 극구 사양했다. “나는 그렇다 쳐도 일본에서 계속 살아갈 자녀들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실타래는 조선학교를 다닌 이력이 있는 김근씨로부터 풀렸다. 멤버 가운데 유일하게 우리말을 할 줄 아는 그는 기꺼이 촬영에 응했다. 그로부터 하나씩 연결고리를 타고 모두 8명(영화에는 7명만 출연)이 한자리에 모였다. 30여년 만의 재회였다.

1982년 봉황기 고교야구 결승전
소년의 머리 위엔 “반쪽발이” 야유
결국 준우승…고국 발길 끊어
영화 계기로 재작년 ‘잠실 시구’
“응어리 싹…가슴이 뜨거워졌다”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그라운드의 이방인>에 들어간 당시 자료사진들. 그들은 일본에서도 고국에서도 ‘이방인’ 신세였다.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그라운드의 이방인>에 들어간 당시 자료사진들. 그들은 일본에서도 고국에서도 ‘이방인’ 신세였다.
홈베이스

그들이 기억하는 82년은 이랬다. 처음에 한 두 경기 이길 땐 다들 “잘한다”고 응원해줬다. 하지만 명문고들을 상대로 계속 이기면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우리 민족인데 왜 우리말을 못하냐”고 나무라는가 하면, “반(半)쪽발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이도 있었다. 결승전 때는 더욱 당황스러웠다. 관중들은 일방적으로 군산상고를 응원하며 재일동포팀에는 야유를 쏟아냈다. “심판 판정도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이들은 말했다. 일본에서도 고국에서도 ‘이방인’ 신세였다. 아프고 슬픈 역사가 잉태한 재일동포의 굴레다. 김 감독과 조 피디는 이들이 30여년 만에 고국의 잠실야구장 그라운드를 밟도록 하는 계획을 세웠다. 프로야구 개막식 시구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다행히 조 피디가 인천 야구 다큐 작업 때 만난 임호균 전 삼미 슈퍼스타즈 투수가 두산 베어스 프런트와 다리를 놓아주어 기적처럼 성사됐다.

2013년 개막 3연전 마지막날 이들은 재일동포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섰다. 82년 결승전 투수였던 양시철씨가 마운드에 올랐다. 힘차게 공을 뿌렸다. 원바운드였지만, 마음만은 스트라이크였다. “두려운 마음이 있었어요. 관중들이 과연 우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런데 다들 반겨주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30년간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가 시구를 하면서 싹 풀린 느낌입니다.” 양시철씨가 뒤풀이 술자리에서 털어놨다.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그라운드의 이방인>에 들어간 당시 자료사진들. 그들은 일본에서도 고국에서도 ‘이방인’ 신세였다.
재일동포 학생야구단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그라운드의 이방인>에 들어간 당시 자료사진들. 그들은 일본에서도 고국에서도 ‘이방인’ 신세였다.
경기가 끝나고

기획부터 완성까지 5년이 걸린 <그라운드의 이방인>(19일 개봉)은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됐다. 호평이 쏟아졌다. 영화 출연 멤버 가운데 1명을 빼고 모두 부산을 찾았다. 부인, 아이, 어머니 등 가족과 함께 고국에서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혼자였던 양시철씨도 그새 결혼해 부인과 함께 왔다. 잠실야구장에서의 뭉클한 감동이 다시 찾아왔다.

김 감독은 요즘 서울 성산동 카페 ‘연필 1/3’에서 매일 두 시간씩 ‘알바’를 한다. 그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몽당연필이 운영하는 곳이다. 처음에 1년만 하려던 몽당연필은 4년째 이어져오고 있다. 매년 일본에서 한국 가수들이 조선학교를 응원하는 ‘소풍 콘서트’를 한다. 이곳 카페에서 재일동포 관련 강연, 영화 상영회 등 행사도 한다. “재일동포 문제를 단순히 총련계와 민단으로 양분하고 이념 문제로 몰고 가선 안 됩니다. 아주 복잡한 문제죠. 재일동포 다큐를 두 편 했는데, 삼세번은 하려 해요. 장르를 넓혀 극영화로 다루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조 피디는 <그라운드의 이방인>으로 재일동포 사회와 인연을 맺은 뒤로 <60만번의 트라이> <울보 권투부> 등 조선학교 관련 다큐 두 편의 한국 프로듀서를 맡았다. 요즘은 길고양이에 관한 다큐를 연출하고 있다. “김 감독님 말씀이, 다큐로 한번 관계를 맺으면 인연이 오래간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인연이 되면 또 재일동포 관련 다큐를 하게 되지 않을까요?”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인디스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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