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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심청전’과 ‘테이큰’을 합치면 바로 이것!

등록 2015-04-24 20:14수정 2015-10-23 18:04

심봉사를 맹인 검객으로 그려낸 <바람소리>는 욕심을
부리되 무리가 없다는 점에서 고전을 창조적으로 활용
하는 전범을 제시했다.
심봉사를 맹인 검객으로 그려낸 <바람소리>는 욕심을 부리되 무리가 없다는 점에서 고전을 창조적으로 활용 하는 전범을 제시했다.
[토요판] 위근우의 웹툰 내비게이터
<바람소리>의 한기남 작가
<심청전>과 <테이큰>을 합치면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현재 올레웹툰마켓에서 연재 중인 한기남 작가의 <바람소리>에 대한 이야기다. 심청과 봉사 심학규 등 고전 <심청전>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심청이 전 호조참판의 딸 대신 명나라에 공녀로 보내지고,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심학규가 딸의 행방을 좇는 과정을 그려낸다. 다 망해가는 명나라에 의리를 지키겠다고 공녀를 보내던 인조의 실정과 심청의 이야기를 연결해 고전을 그럴싸한 사극으로 재창조한 것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항상 무능하게만 그려지던 심봉사의 변신이다. 원작에서와 달리 <바람소리>의 심학규는 역시 맹인인 일본 영화 캐릭터 자토이치처럼 눈 대신 귀로 상대를 가늠하고 베는 검의 고수다. 심청을 양반집에 팔아넘긴 중간책과 그 일당, 심청을 수양딸로 삼은 뒤 친딸 대신 공녀로 보낸 대감 등, 심청의 행방에 관련이 있는 사람 모두를 주저 없이 베고 단서를 찾는 그는 영락없이 영화 <테이큰>의 브라이언(리엄 니슨)을 닮았다.

모티브는 고전에서 따오고, 설정은 역사적 사건에서 출발하며, 서사는 활극의 정서로 구성된다. <바람소리>가 걸작까진 아닐지 몰라도 고전의 재해석 혹은 재창조라는 면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인 건 그래서다. 한기남 작가는 고전 캐릭터들을 멋대로 이야기 속에 꿰어 맞추기보다는 본인이 설정한 시공간의 맥락 안에서 최대한 개연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또한 픽션으로서의 재미 역시 추구한다. 가령 원작에서 심봉사를 물에서 구해낸 스님이 공양미 삼백 석에 눈을 뜰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은, 산적과 한패이자 아는 것 많고 달변인 땡중이 심봉사에게 그럴싸한 감언이설로 약을 파는 것으로 대체된다. 물론 중도 부처도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할 재주는 없지만, 대신 심봉사는 땡중의 절에 쳐들어가 뱃길로 심청을 찾는 것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종종 재해석이라는 명목으로 이미 전형적인 고전소설을 그보다 더 뜬금없는 판타지로 만들어내는 경우와 비교할 때 <바람소리>의 고전 활용은 심봉사의 추격전을 그릴 때조차 상당히 성실하다.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다만 채도가 낮은 컬러와 과거 <그림한국사>의 삽화를 연상케 하는 그림체는 요즘 웹툰 독자들에게 한눈에 들어올 만한 것은 아니다. 비슷한 그림체에 역시 조선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팩션 <칼부림>이 흑백의 대비와 펜 선의 효과를 이용해 강렬한 액션 신을 만들었다면, <바람소리> 속 심봉사의 액션 연출은 어딘가 맥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대신 작가는 냉소적인 심봉사와 당돌한 심청을 통해 마치 마당놀이와 같은 해학과 풍자를 담아내며, 사극의 분위기와 현대 독자의 취향 사이에 공통분모를 찾아낸다. 그래서 <바람소리>는 고전을 활용하고 싶은 동시대 창작자들에게 모범으로 기록될 법하다. 욕심을 부리되 무리가 없다는 점에서.

위근우 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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