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맥스>의 한 장면.
2015 상반기 한국영화 결산
‘총체적 난국’. 2015년이 절반 가까이 지난 현재, 한국영화의 현 주소다.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한국영화 점유율, 20돌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를 두고 계속되는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와 영화계의 갈등, 귀환한 유명 감독들의 부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역습까지….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한국 영화계지만, 아직 ‘절반’이 남아 있기에 2015년에도 희망은 있다. 상반기 한국 영화계를 정리한다.
어벤져스의 강한 한방…200만 돌파 고작 4편
거장들도 휘청…손익분기점도 못 넘어
20대 배우 미친 존재감…김우빈·박서준·조현철 ■ 이보다 나쁠 수 없다
올해 상반기 한국 영화의 성적은 통계가 작성된 2004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23일 영진위 입장권 통합전산망의 집계를 보면, 1월부터 현재까지 상반기 한국영화 점유율은 41.0%다. 누적관객은 관객 3710만여명. 외화는 같은 기간 5326만여명을 모아, 점유율 59.0%를 기록했다. 한국 영화는 지난 2011~2014년까지 4년 연속 점유율 50%를 넘겼다. 가장 부진했던 지난 2008년에도 점유율 42.1%를 기록했다. 월별 기록을 보면, 지난해 12월 개봉해 1000만을 돌파했던 영화 <국제시장>이 뒷심을 발휘했던 지난 1월에만 한국 영화 점유율이 외화를 앞질렀을 뿐, 2~6월까지 외화에 일방적으로 밀렸다. 최근 ‘메르스 사태’ 때문에 극장을 찾는 관객수가 줄어든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올해 개봉 영화 가운데 200만명 이상을 동원한 한국영화는 <조선명탐정2: 사라진 놉의 딸>(387만여명), <스물>(304만여명), <강남 1970>(219만여명), <악의 연대기>(219만여명) 등 겨우 4편에 불과하다. 반면 외화는 1000만 클럽에 가입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1049만여명)을 비롯해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612만명),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373만명), <쥬라기 월드>(352만여명), <분노의 질주: 더 세븐>(324만명), <빅 히어로>(280여만명), <스파이>(230여만명) 등 7편에 이른다.
■ 귀환한 유명 감독들의 부진
한국 영화의 부진은 기대를 모았던 명장들의 복귀작이 신통치 않은 성적을 거둔 탓도 있다.
거장 임권택 감독은 올해 자신의 102번째 영화 <화장>을 내놓았다. 김훈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평단과 언론은 좋은 평가를 내놓았지만, 관객은 외면했다. 겨우 14만명이 찾았을 뿐이다. <강남 1970>으로 돌아온 유하 감독의 성적표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말죽거리잔혹사>, <비열한 거리>에 이은 ‘강남 3부작’의 마지막편인 이 작품은 10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갔고, 이민호·김래원 등 톱스타를 내세웠다. 하지만 관객수는 219만여명에 그쳐 손익분기점인 300만명에 미치지 못했다. <태극기를 휘날리며>로 1000만 관객을 동원했던 강제규 감독의 신작 <장수상회>(116만명), <내 아내의 모든 것>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등으로 감각적 연출을 선보였던 민규동 감독의 신작 <간신>(110만여명)도 손익분기점에 미달해 아쉬움을 남겼다.
하반기에 <베를린>의 류승완(<베테랑>), <도둑들>의 최동훈(<암살>), <왕의 남자>의 이준익(<사도>),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이석훈(<히말라야>) 등 또다른 감독들이 새로운 작품을 들고 귀환할 예정인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이들이 상반기 한국영화의 부진을 씻고 하반기 ‘대반전’을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 그래도 그들이 있었다
‘주목할 만한 배우’ 몇몇을 발견한 게 그나마 상반기 한국 영화의 성과다.
먼저 20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첫 주연 영화 <친구2>(2013)와 <기술자들>(2014)의 연이은 흥행으로 티켓파워를 입증했한 김우빈은 올해 <스물>로 확실한 자리를 굳혔다. 함께 <스물>에 출연한 강하늘, 투피엠의 준호도 관객의 눈도장을 받았다. 강하늘 역시 드라마 <미생>의 인기를 스크린까지 확장했고, 지난해 <감시자들>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준호는 ‘연기돌’이라는 꼬리표를 뗄 만큼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청춘스타 이민호 역시 <강남 1970>에서 다소 폭력적이고 우울한 ‘조폭’ 역할을 맡아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뤘다. 200만 관객을 동원한 <악의 연대기> 박서준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주연은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 ‘미친 존재감’을 뽐낸 조연도 있다. <차이나타운>에 출연한 조현철이 대표적이다. 조현철은 ‘엄마(김혜수)’가 시키는 일이라면 살인도 서슴치 않는 지적장애아 ‘홍주’역을 맡아 어눌함과 광기를 동시에 폭발시키며 주목받았다. <조선명탐정2>에 깜짝 출연한 가수 조관우는 어수룩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본색을 드러내는 악인 ‘조 악사’역을 맡아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외화에선 단연 <매드맥스>의 ‘빨간 내복 기타맨’이 돋보였다. 두프 웨건에 올라타 화염 방사기가 장착된 전자기타를 연주하며 광기를 북돋은 호주 출신 뮤지션 겸 배우 아이오타는 테마곡을 직접 쓰고 녹음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큰 화제를 모았다.
■ 영화는 끝나도 대사는 남는다
영화는 끝나도 ‘명대사’는 관객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한국 영화 <차이나타운>에 나온 “증명해 봐, 네가 아직 쓸모 있다는 증명” 역시 상반기 영화에서 손꼽히는 명대사다. ‘쓸모’를 증명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 법칙인 차이나타운을 그린 이 영화에는 “쓸모없으면 너도 죽일거야”, “엄마가 쓸모 없으면 죽인댔어” 등 시종일관 비슷한 대사가 반복된다. 단순히 누아르적인 영화의 분위기를 살리는 것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길들여진 한국사회의 모습을 반영한 대사로 해석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의 흥행 성적’을 보여준 <킹스맨>은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명대사를 남겼다. 해리(콜린 퍼스)가 에그시(테론 에거튼)를 괴롭히는 동네 건달들을 제압하기 직전에 한 이 말은 ‘젠틀맨 열풍’과 함께 인구에 회자되는 대사로 자리잡았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거장들도 휘청…손익분기점도 못 넘어
20대 배우 미친 존재감…김우빈·박서준·조현철 ■ 이보다 나쁠 수 없다
<어벤져스>의 한 장면.
영화 <킹스맨>의 한 장면.
왼쪽부터 임권택, 유하, 강제규 감독.
김우빈
박서준
조현철
<차이나타운>의 김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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