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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밀양 할매·할배들의 ‘날 좀 보소~’

등록 2015-06-30 19:39수정 2015-06-30 19:39

영화 ‘밀양 아리랑’의 한 장면
영화 ‘밀양 아리랑’의 한 장면
영화 <밀양 아리랑>
투쟁 너머 순박한 농사꾼 삶 담아
눈물 타고 흐르는 전기 소비 각성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오~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오~소’

경상도를 대표하는 민요이자, 우리나라 3대 아리랑 가운데 한 곡인 ‘밀양아리랑’의 첫 소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밀양 아리랑>은 765㎸짜리 송전탑 설치를 둘러싸고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밀양의 주민들이 외지인에게 “제발 우리의 모습을 봐 달라”고 외치는 절박한 호소를 담고 있다.

이 영화는 대표적인 공기업인 한국전력(한전)이 원자력 발전소(신고리 3·4호)에서 생산된 전기를 서울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765㎸ 송전탑을 밀양 일대에 세우면서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전은 1979년 박정희 정권 시절 만들어진 ‘전원개발촉진법’을 들이대며 송전탑을 세울 토지를 강제 수용한다. ‘국가가 발전소·송전탑 등을 건설할 경우, 19개의 법률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조항만을 내세우며 주민들에게 정확한 설명도 하지 않고, 토론의 장도 마련해주지 않는다. 심지어 불량 부품이 쓰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신고리 원전 3·4호의 건설이 차질을 빚는 와중에도 밀양 송전탑 건설은 강행된다. 이 과정에서 고 이치우씨, 고 유한숙씨 등 2명의 주민이 자살을 하는 등 한전(경찰력이라는 공권력 포함)과 밀양 주민들과의 격렬한 갈등이 빚어진다.

영화는 경찰들과 싸우고 대치하고 농성하는 주민들의 모습만 담은 것이 아니다. 투쟁 속에서도 일상을 담담히 살아내는 모습도 상세히 담는다. 감자를 심고, 밭을 갈고, 김을 매고, 소꼴을 베고, 로터리를 치고, 감을 따고…. 이들은 머리띠를 두른 투쟁꾼보다는 “올해 농사는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는 순박한 농사꾼일 뿐이다. 여군이 되고 싶었다며 매일 팔굽혀펴기를 하며 몸을 단련하는 아낙네, 귀농한 후 땅의 소중함을 알게 돼 투쟁에 참여했다는 아줌마, 일제 강점기도 한국전쟁도 버텨낸 고향을 지키라는 시아버지의 유언을 받든 며느리도 있다.

주민들의 싸움이 힘겨운 이유는 여러 가지다. 공권력은 한전을 비호하는 사설 경호원일 뿐이고, 언론은 밀양사태의 근본 원인보다 ‘물리적 충돌’만을 중계하듯 보도한다. 주민들 간에 의견이 갈라지면서 한 울타리를 이고 살던 이웃사촌이 원수가 된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전기’다. 밀양의 투쟁이 단순히 한정된 지역의 ‘님비현상’으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는 전기의 소비자가 우리 모두이기 때문이다. 불을 밝히고, 밥을 짓고, 냉난방 기구를 돌리고, 컴퓨터 작업을 하는 우리의 모든 일상은 ‘전기 소비’를 바탕으로 한다. 우리의 편리한 소비 이면에는 어떤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 전기는 밀양 주민들의 눈물을 타고 흐른다. 고향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밀양 주민들의 싸움은 ‘송전탑 반대’에서 ‘원전 반대’로 그 폭을 넓혀간다.

결국 밀양에는 69기의 송전탑이 모두 건설됐다. 하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밀양은 “송전탑을 뽑자”는 구호를 외치며 끈질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날 좀 보소~’라는 외침에 귀를 기울이는 관객이 늘수록 할매·할배의 싸움도 끝을 볼 날이 가까워지지 않을까. 구슬픈 내용의 가사지만 세마치장단이라는 흥겨운 가락이 덧입혀진 ‘밀양 아리랑’처럼 이들의 싸움은 그저 슬픈 패배만은 아니다. 16일 개봉.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시네마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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