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장원, 현성, 정희석씨.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 ‘세 친구’의 20년
1990년대 낙오된 청춘의 초상
삼겹·무소속·섬세를 아시나요
1990년대 낙오된 청춘의 초상
삼겹·무소속·섬세를 아시나요
삼겹, 무소속, 섬세. 산동네 골목길 담벼락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세 청춘이 서 있다. 한 명은 뚱뚱하고 한 명은 담배를 꼬나물고 한 명은 외롭다. 22초 동안 카메라는 아무 말 없이 이들을 응시한다. 임순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세친구>(1996)는 사회와 학교, 주류가 외면한 공터에 버려진 세 젊은이의 할 일 없음과 낙오의 풍경을 그렸다. 20년이 다 된 지금에 와서 이 영화를 꺼내보는 이유는 영화 속 ‘세 친구’가 이듬해 시작되어 지금도 지속되는 아이엠에프(IMF) 체제 이후의 삶을 예견한 어떤 징후적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삼겹, 무소속, 섬세는 거품 성장의 경계면에서 ‘88만원 세대’를 선험적으로 재현한 인물들이었다. 당시 임순례 감독은 기성배우를 배제하고 영화 속 인물과 가장 가까운 인물을 현실에서 찾았다. 세 아마추어 배우는 현실 속 삼겹, 무소속, 섬세였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들은 어떻게 무한경쟁의 시대를 헤치고 마흔 즈음에 접어들었을까? ‘삼겹’ 역을 맡았던 이장원(44)씨, ‘무소속’ 역을 맡았던 현성(40)씨와 ‘섬세’ 정희석(41)씨가 2일 20년 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세 사람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22초 쇼트’를 오마주 했다.
깨져도 포기 않고 성실함으로 버틴 그때의 루저들
▶ <세친구>를 봤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치과의사와 헬스트레이너가 나오는 시트콤 <세 친구>(2000~01)를 이야기하곤 했다. 1990년대 젊음에 대한 영화라고 힌트를 주면, ‘잘생긴’ 엑스세대가 나오는 영화 <비트>(1997·정우성 고소영 주연)를 기억했다. 그 전에 <세친구>(1996)라는 영화가 있었다. 임순례 감독은 1996년 학교와 사회, 제도 바깥의 공터에 버려진 세 젊은이의 할 일 없음, 지리멸렬한 낙오의 이야기를 첫 장편으로 내놓았다. 그때, 엑스세대가 표상하는 반항과 도전조차도 사치스러운 젊은이들이 있었다.
첫 영화였다. 현성, 정희석, 이장원이 출연하는 첫 영화였으며, 후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제보자> 등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었다. 고졸 청춘의 변두리적 삶을 사회성 짙게 그린 첫 작품이었으며, 우울하고 비관적이지만 이토록 리얼리즘을 매섭게 구현한 영화는 처음이라는 평론가들의 찬사가 쏟아진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 <세친구>의 첫 장면은 서울의 한 고등학교 졸업식이다. 주인공은 대학 합격 통지서는커녕 졸업식날에도 할 일이 없어 짜장면을 먹고 비디오방을 전전하는 ‘무소속’(현성), ‘섬세’(정희석), ‘삼겹’(이장원)이다. 무소속은 만화를 그려 공모전에 내지만 자신의 작품이 표절되어 팔리고, 여성적인 성격의 섬세는 미용실 원장인 엄마 몰래 미용학원을 다닌다. 뚱뚱한 삼겹은 인생 목표 없이 그저 먹고 비디오를 보는 게 일이다. 그 흔한 젊은이의 반항과 객기도 이 청춘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다. 동네 건달에 폭행당하고 복수를 하려다 얻어터지고 군대를 안 가려고 먹물을 먹거나 살을 찌운다. 당시 우리가 살면서 모른 척했던 군상들, 요즈음 말로 ‘루저’라고 표현되는 이들이 무소속, 섬세, 삼겹이었다.
‘무소속’ 현성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주연 맡아
정말 “잘되는 게 팔자”인가 했는데
흥행 대참패 뒤 뭘 해도 안 되더라
복권 1등 당첨 뒤 다시 복권 산 기분
차 안에서 노래 불러 앨범 낼 계획 ‘섬세’ 정희석
‘세친구’ 개봉 한달만에 군대행
일본 가서 돌아온 뒤 출판사 일 하다
현재 동대문서 옷가게 사장님
오후 출근 새벽 퇴근 바쁜 나날
단편 연기는 한번 해보고 싶어 ‘너무 잘생겨’ 밀린 장혁 임순례 감독은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나를 삼등분해서 세 인물에 투영해 놨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 폭력적인 학교, 고등학교 중퇴로 이어졌던 임 감독의 과거는 무소속, 섬세, 삼겹이라는 세 친구를 영화 속으로 불러들였다. 주연배우 현성(40)씨, 정희석(41)씨, 이장원(44)씨는 당시 영화 속 세 친구와 비슷한 스물 안팎의 나이였고, 외모, 성격, 말투까지 꼭 닮은 페르소나였다. 1995년 기획과 시나리오 집필이 시작되어 이듬해 촬영과 편집을 마치고 영화가 개봉됐다. 세 배우는 어찌된 일인지 영화계에서 이내 사라졌다. 군대에 갔고 다른 직장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장원(삼겹 역)씨는 이듬해 성우가 됐다. 정희석(섬세 역)씨는 제대를 하고 무역회사, 출판사 등에서 일하다 옷가게 사장님이 되었다. 현성(무소속 역)씨는 제대 뒤 단박에 스타덤에 올랐으나 항상 일이 잘 풀린 것은 아니었다. 영화를 찍고 처음으로 임순례 감독이 세 배우와 자리를 함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한번 만남의 자리를 요청했다. 세 친구는 흔쾌히 수락했다. 지난 2일 서울 공덕동의 한 카페에서 함께 인터뷰를 했다. 두번째 만남이었지만 아직 반가움이 가시지 않았다. 이날 만남은 인터뷰라기보다는 20년의 삶을 나누고 공명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사회 영화 <세친구> 속 세 친구의 20년 동안의 삶이 어땠을까 궁금했습니다. 임순례 20년이 지나도 몸매는 변하지 않는다는 불변의 법칙?(모두 웃음) 사회 영화가 의외로 디브이디(DVD)로 나오지 않았더라고요. 서울 상암동 영상자료원에 가서 봤습니다. 당시 <세친구>가 스타는 물론 기성 배우조차 기용하지 않은 것으로 주목을 받았죠? 임순례 대학을 안 간 가난한 동네의 스무살 아이들을 기성 배우에게 맡기면 느낌이 안 날 거 같았죠.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영화 속 캐릭터와 가장 가까운 배우를 현실에서 찾았습니다. 연출부 네댓명에게 아침마다 비디오카메라를 주고 20대가 모인 장소에 가서 무소속에 관한 이미지를 찍어오라고 했어요. 1996년 2월엔가 현성이가 서울예전(현 서울예대)에서 친구 연극영화과 원서 내는 데 따라왔다가 찍혔어요.
현성(무소속 역) 당시 저는 ‘카프라’라는 무명 밴드에서 보컬을 하던 동네 로커였어요. 시험도 안 보는 애가 적응 못하고 어슬렁거리는 느낌이 카메라에 찍힌 거죠.
임순례 그때 롯데월드에서 장혁도 찍혀서 왔어요. 그런데 너무 잘생겨서 현성씨에게 밀렸어요.(웃음) 영화주간지 <씨네21>에도 광고를 내서 무소속, 섬세, 삼겹 역의 지원을 받았어요. 사진과 편지를 보고 희석씨를 섬세로 불렀습니다. 민용근 감독(영화 <혜화,동> 연출)도 당시 섬세 후보로 거의 최종까지 올라왔어요. 희석이가 없었으면 민용근 감독이 됐을 거야. 의외로 삼겹을 뽑는 게 힘들었어요. 덩치가 있는 연기자가 많지 않았거든요. 전국 연극영화학과에 방을 붙였는데, 중앙대에 붙인 방에 (친구들이) 장원씨가 딱이라면서 이름을 써놓았대요.
이장원(삼겹 역) 그렇게 감독님 처음 뵈었는데, (후보 여러 명 모아놓고) 오디션을 계속한다는 거예요. 오디션이 아니라 연영과 커리큘럼 같았어요. 갑자기 세명에게 즉흥연기도 시키고. 희한한 경험 다 했죠. (삼겹 역 후보로 뽑힌) 전국에 있는 뚱뚱한 사람들 다 봤으니까. 뚱뚱한 애들도 참 종류가 다양하더라.
정희석(섬세 역) 저는 영화를 좋아하는 대학생이었어요. 비디오 많이 빌려 보고 <씨네21> 나오면 달려가서 사보고. <씨네21> 보고 섬세 역에 지원하는 손편지를 썼어요.
세 사람은 당시 영화 속 세 친구와
비슷한 스물 안팎의 나이였고
외모·성격·말투도 닮은 페르소나
그러나 곧 영화계에서 사라졌다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삼겹’ 이장원
온라인·모바일 게임 더빙도 하는
프리랜서 성우 생활 하고 있지만
단역이라도 오디션 보고 다녀
최근 ‘쓰리 섬머 나잇’서 털보 역
“한 신이라도 찍으면 마음 편해요” 영화감독 임순례
한국사회 폭력의 근원이 뭔가
저는 군대와 학교라 생각한 거죠
대학 못 나오고 가난한 이들 삶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펼쳐질까
세 친구의 세계는 현재진행형이죠 제작 방식에서 메시지까지 ‘리얼리즘’ 영화 <세친구>는 제작 방식에서 메시지까지 ‘리얼리즘’이라는 하나의 주장을 구현했다. 영화는 현실을 가장 가깝게 반영해야 했고, 기성배우는 과거 영화의 캐릭터를 지울 수 없기 때문에 캐스팅 과정에서 배제했다. 제작진은 무소속, 섬세, 삼겹과 가장 가까운 인물을 현실에서 찾았다. 후보들을 한데 모아놓고 오디션을 봐서 최종 선발했다. 그래서였을까. 20년이 흘렀는데도 40대 아저씨들의 모습, 말투, 성격에서 영화 속 무소속, 섬세, 삼겹이 포개졌다. 날렵한 용모의 현성씨는 무소속처럼 자신의 인생에 고민이 많았으며, 마른 인상의 정희석씨는 섬세처럼 말수가 적고 수줍어했다. 이장원씨는 삼겹처럼 시원시원하게 말하고 낙천적이었다. 이렇게 현실의 배우와 영화 속 인물의 간극은 최대한 좁혀졌고, 영화는 현실을 보여주는 투명한 거울에 가까워졌다. 임순례 캐스팅에 위기가 있었죠. 본촬영 직전에 졸업식 장면을 실제 졸업식에 붙여 찍을 때였는데, 현성이가 갑자기 안 한다고 한 거예요. 현성 어쩌다 호기심에 ‘예’ 하고 영화를 찍겠다고 했는데, 당시 저를 지배하고 있던 마음은 ‘로커는 로커다, 음악을 해야지’ 이랬거든요. 그날이 실제 제 졸업식날이었는데 이상한 데 와서 졸업식을 하고 있고, 난 로커인데 연기를 하고 있고. 조감독님 찾아가서 ‘못하겠습니다’ 했어요. 임순례 현성이가 하는 도곡동 지하 연습실에 찾아갔어요. 록밴드 리더가 현성이보다 한살 많았는데, 현성이한테는 그 형이 세상의 중심인 거예요. 형을 설득하면 되겠다 싶어서 새벽 대여섯시까지 포장마차에서 그 꼬마한테 술 사주면서 설득을 했는데, 결국 형이 ‘현성이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한 거지.(모두 웃음) 사회 연기를 할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 삼겹(이장원)이었는데, 후배들 보면서 한심했겠네요? 이장원 저도 질풍노도의 시기였어요. 연극영화과 졸업하고 뭘 해야 되나 하고 있을 때였으니까. 현성이가 록 하는 것처럼 우리는 연극이었거든요. 진정 연기를 하면 연극을 해야 한다, 뭐 이런. 근데 학교 밖으로 나가니까 쉽지가 않아. 대학로 가서 전단지부터 돌려야 하는데, 휴우. 사회 섬세(정희석)는 두렵지 않았어요? 갑자기 영화배우가 된 건데. 이장원 (끼어들며) 맨 처음 희석이 봤을 때, 뭐라고 해야 하지? 파르르 떨리는 꽃잎 같은. 얘가 영화 찍을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떨 때 보면 독종 기질이 있어요. 세명씩 즉흥연기 하는데, 희석이가 어떻게 해서든지 하더라고요. 정희석 연기 배운 것도 아니고 영화 찍는다고 주변에 얘기도 안 해서 가족도 잘 몰랐어요. 가족들도 얘가 자꾸 어딜 가는데, 어디 가냐 하시고. <세친구> 개봉하고 어머님이 보셨는데, (섬세가) ‘너 같다’ 그러시더라고요. 사회 무소속은 계속 영화계에서 활동을 하셨고, 섬세와 삼겹은 영화 개봉 뒤 갑자기 사라졌어요. 영화 마치고 무얼 하셨습니까? 정희석 <세친구> 개봉이 11월이었는데, 12월3일에 군대 갔어요. 임순례 희석이가 조금만 더 (몸무게를) 빼면 됐는데. 정희석 5급이 면제인데, 4급 받고 갔어요. 사회 조금 더 빼시지 그랬어요? 정희석 뺄 수 없는 단계까지 내려가야 하니까.(웃음) 근데 군대에 갔는데, 코만도총이라고 이따만한 걸 주는 거예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소대장과 면담을 했어요. 내 체격으로 안 되겠으니 좀 바꿔달라고 부탁했죠. 이장원 소대장이 바꿔줬어? 정희석 바꿔줬어요. 사회 (놀라며) 행정병으로라도 빼줬어요? 정희석 소총수.(모두 웃음) 현성 1998년에 군대를 갔는데, 일병 때인가, 육군 홍보영화를 찍는다고 오라고 했어요. 고참들이 ‘잘 가라’ 했는데, 갔더니 정작 제가 누군지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돌아왔죠. 수도방위사령부에서 근무했는데, 제1경비단가를 제가 만들었어요. 지금도 서대문 주변을 지나가면 들려요.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같이, 의지와 정열로 뭉친 용사들~ 이장원 케이비에스(KBS) 성우들과 교육연극을 했는데, 친구 하나가 성우 공채 원서를 줬어요.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신 아버지가 끌고가서 시험을 봤어요. 스물여섯살에 <세친구> 찍고 스물일곱살에 성우가 된 거죠. 지금은 만화 더빙도 하고 온라인 게임, 모바일 게임 더빙도 하고…. 이장원씨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아! 그 목소리!”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허스키한 목소리의 악역을 떠올려보라. 이장원이다. 그는 성우로 활동하면서 <한국방송>이 중국 동북지방 등에 송출하는 사회교육방송(현 한민족방송)의 옛날 가요 프로그램 ‘세월 따라 노래 따라’를 1998년부터 2013년까지 진행했다.
불편한 영화? 그땐 이해 못했는데…
영화 <세친구>의 이야기는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홀로 미용 연습을 하던 섬세는 동네 건달에게 남자답지 못하다고 성폭행을 당한 뒤 스스로를 자신의 방에 가둔다. 남자가 되고 싶어서 군대를 가려 하지만, 정신질환으로 군 면제 판정을 받는다. 삼겹은 비디오가게에 취직해 동네 여자를 쫓아다니지만 무시만 당한다. 뚱뚱한 잉여의 삶은 군대도 받아들이지 않아서 몸무게 초과로 면제를 받는다. 무소속은 옥상에서 양주를 마시고 각목을 삼겹에게 건넨다. 오른쪽 어깨에 가격할 부분을 표시해 놓고 때리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엑스레이를 찍었는데도 이상이 없다. 입영통지서를 받은 무소속은 섬세, 삼겹의 전송을 받으며 춘천 102보충대로 떠난다.
사회 영화배우인데 다들 평범한 삶을 사신 거 같아요.
임순례 영화가 성공했으면 안 그랬을 텐데.(웃음) 모두들 이전 인생으로 돌아간 거지.
현성 저는 성공할 뻔했죠. 제대하고 나서 오디션 보면 다 잘되는 거예요. 영화 <스물넷>(2001·임종재 감독)을 찍고,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에도 (주연으로) 캐스팅됐어요. 그때 송승헌, 유승범, 이정재가 (후보로) 쭉 있었어요. 감독님이 고민하시다가 (제가) 된 거예요. 당시엔 ‘잘되는 게 내 팔자구나’ 싶었죠. 시나리오도 계속 들어왔는데, 서너개 작품을 거절할 정도였으니까. 성냥팔이는 후반 작업을 꽤 오래 했는데, 그때는 개봉만 하면 끝장(성공)이다, 쟤는 완전 떴다… 그런 분위기였거든요.
임순례 그 당시에 100억원을 썼으니까.
현성 그런데 흥행 대참패를 했어요. 나로선 망한 영화의 주연배우가 되어 버렸고. 그 뒤로는 오디션을 봐도 안 되고 미팅을 해도 안 되고 술을 막 마셔도 안 되고. 삼년 내내 뮤직비디오 한편 찍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오디션 봐서 열심히 한 것뿐인데, 내 잘못도 아닌데. 두 작품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내 노력으로 한걸음씩 나아가며 성장하는 걸 느꼈을 텐데…. (그렇게 처음부터 주연으로 나가니) 시작부터 만회해야 했어요. 과장된 비유를 하자면 첫번부터 복권 1등에 당첨됐다가 돈 탕진하고 나서 다시 복권을 사는 기분이랄까. 작은 역, 좋은 역을 해도 기쁘지 않았어요. 어느 순간 ‘이건 아닌 것 같다’ 정신이 들더라고요. 다 잊어버리자, 이전 일은 없었던 거다, 난 그 전에 연기 안 했던 거다… 되뇌면서 다시 연기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신통치는 않네요.(웃음)
사회 희석씨는 영화를 계속 안 하셨나요?
정희석 군대 갔다 오니까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학교도 졸업해야 했고. 2000년에 일본에 가서 2년을 살았어요. 돌아와서 무역회사에 취직을 했죠. 야근, 접대로 점철된 생활을 일년 하다가 나왔어요. 학원 다니면서 편집디자인을 공부했고 출판사에 들어갔죠.
이장원 열정이 언제 옷으로 바뀐 거야?
정희석 출판사에 편집디자이너로 들어갔는데, 저녁 7시에 밥을 주더라고요. 그때부터 야근이 시작이더라고요. 그때 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예전에 옷가게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2004년엔가 동대문에 가서 일할 작정으로 옷 판매를 배웠어요. 2007년에 가게를 차렸고요. 그때 우연히 옷을 사러 온 현성이가 “어, 형이 왜 여기서 옷을 팔아?” 했죠.
현성 동대문 두산타워에서 꽤 큰 가게 사장님이세요.
정희석 계절을 넘기면서 패션 흐름도 봐야 되고, 거래처 디자이너 만나서 옷 디자인도 의논해야 하고 오후 출근에 새벽 퇴근… 할 일이 많아요.
사회 영화 <세친구>를 가장 최근에 보신 건 언제예요?
정희석 어제 저녁에 다시 꺼내 봤어요. 예전에는 얼굴이 화끈거려서 못 봤는데, 어제 볼 때는 편안하더군요. 낄낄대면서 웃고.
이장원 비디오테이프가 어디 처박혔는지 모르겠더라고. 같이 보기엔 얼굴이 달아올라서 아내도 아직 못 봤어요. 하여튼 파일 좀 줘봐.
현성 오늘 새벽에 보고 나왔는데,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장원이 형은 삼겹과 다른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장원이 형은 삼겹을 연기하는 게 보이는데, 희석이 형과 나는 정말 연기를 못했고 현실 속의 인물 그대로였죠. 과거의 제가 보였어요.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100% 싱크로율로 저였어요. 예, 연기가 아니었어요. 인간 김현성의 청춘이 그대로 있었죠. ‘불편한 영화’라는 세간의 평을 젊었을 때는 이해 못 했어요. 군대 가기 전에 먹물 먹고 군대 가서 안 좋아져 나오는 풍경들. 사실 내 주변에는 그보다 더한 사람이 많았고, 나도 그렇게 살고 있었으니까요. 마치 숲속에서는 숲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세상을 이해하지 못했던 거죠. 그런데 인생의 질풍노도를 겪으며 20년을 살고 나니, 영화의 그런 시선들이 차츰 보이더라고요.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현실의) 불편하고 답답하고 짜증나는 느낌….
그들과 88만원 세대
성공으로 향하는 길에는 과속방지턱이 있기 마련이다. ‘망한 영화’의 주연배우라고 해서 현성씨는 거기서 주저앉지 않았다. 대박을 터뜨리거나 국제영화제에 진출한 작품도 없지만, 그는 꾸준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두뇌유희 프로젝트, 퍼즐>(2006), <채식주의자>(2009), <노크>(2012) 등의 주연을 맡았다. 2004년에 결혼했고 지금은 9살 아들, 7살 딸 두 아이의 아빠다. 맞벌이라서 작품이 없는 기간에는 그가 아이들을 돌본다. 그가 휴대전화를 열어 배경화면을 보여주었다. 태권도, 발레, 가스펠 등 빼곡히 찬 두 아이의 일정표가 나타났다.
현성 진한 색은 아들이고 흐린 색은 딸인데, 외워지지가 않네요. (학원에) 아들 넣고 와서 (학원 끝나는) 딸 받고… 그 와중에 장도 보고 일도 하고 그래요.
임순례 현성이는 옛날부터 음악에 대한 순정이 있었지.
현성 맞아요. 사실 연기하면서 일부러 멀리했는데, 제일 좋아하는 게 음악이에요. 가장 큰 달란트죠. 기타를 꺼내 노래를 시작했어요. 주로 방에서 녹음하는데 시끄러워서 잘 안됐는데, 우연히 차 안이 방음이 잘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주차장에서 차를 세워놓고 노래를 부르고 녹음을 해요. 에어컨 끄고 노래 부르다 숨 막히면 문 열고 쉬고. 비 내리면 똑똑똑 하는 소리가 운치도 있고. 노래하다 갑갑하고 막히면 훌쩍 호수공원 같은 데로 가서 하고. 주변에서 한번 음반을 내면 어떠냐고 해서 주저하다가 디지털싱글을 내기로 결심했어요. 배우 현성이 무료할 때 차 안에서 만든 음악을 일년이든 이년이든 한번씩 내는 거죠. 앨범 타이틀은 ‘가끔, 차 안에서 만드는 노래’.
임순례 들었는데 참 좋더라고. 난 옛날에 현성이가 ‘카프라’ 밴드 할 때부터 들었어. 그땐 나이가 어렸지만 지금은 안정되어서 정말 좋더라고.
정희석 재킷 이미지 필요하면 연락해. 내가 그려줄게.
사회 두 분은 연기에 대한 미련은 없어요?
이장원 성우 전속기간이 3년이에요. 그다음엔 프리랜서로 풀려요. 비정규직이지.(웃음) 나이가 있어서 예전처럼 일이 많지 않아요. 다시 연기를 시작해서 단역이라도 오디션도 보고 다녀요. <쓰리 섬머 나잇>(김상진 감독)에서 털보 역을 했는데, 우리가 얘기하는 ‘겉절이’…(웃음) 내가 연영과 출신이잖아. 그래서 한 신이라도 찍으면 마음이 편하더라고.
사회 희석씨는요?
정희석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이장원 시켜주면 할 거잖아. 형처럼 오디션을 다녀. 20대 초반이랑 같이 있어봐. 씁쓸하긴 한데, 요즈음은 오디션 시대니까 감독님이 날 모르면 가서 해야 하는 거라. 오디션 인터넷 사이트도 있어.
임순례 희석이가 예전에 연기를 더 해야 할지 나한테 상담했던 거 같아. 그때는 이미지 캐스팅이었으니까 난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도 가벼운 역들은 생활의 활력소가 될 거야.
정희석 단편은 한번 해보고 싶어요.
이장원 희석이 연기 많이 늘었을 거야. 삶을 많이 겪어서.
영화 <세친구>는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무소속은 군대에 가서 선임병(당시 박원상이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유명한 배우가 되었다)에게 폭행을 당한다. 제대를 하고 세 친구의 골목으로 돌아온 그는 그러나 섬세와 삼겹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귀가 멀었다. 결말은 이렇다. 섬세는 극장에서 게이와의 접촉을 망설이고 삼겹은 사우나에서 살을 빼다 쓰러진다. 영화는 무소속이 골목 시장의 어두운 한구석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감정의 동요 없이 응시한다.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어둡고 답답한 결말 중 하나로 꼽히는 <세친구>가 개봉된 게 1996년 말이다. 한국 경제의 거품이 터지기 직전이었고, 거품의 경계면에서 이른바 ‘엑스세대’가 젊음을 대표하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영화 <비트>에 열광했지만, 영화 <세친구>는 부담스러워했다. 무소속, 섬세, 삼겹의 꾀죄죄한 군상과 변두리적 풍경은 당시 물질주의에 취한 우리가 보려 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일년 뒤 아이엠에프(IMF)가 닥치고 신자유주의가 독주하면서 이런 비가시적인 풍경은 서서히 부상했으며, 개중의 일부는 2007년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으로 호명됐다. 88만원 세대가 담론의 추상으로부터 구체적 현실을 비추었다면, 영화 <세친구>는 애초부터 구체적 인물과 사건으로 시대를 지키고 있었다.
이장원 <세친구> 개봉 이듬해 아이엠에프가 터지고 막막하더라고요. 케이비에스 성우로 들어갔는데, 전속들이 모여서 어떻게 해야 하나 회의하고…. 영화 마지막에서 삼겹이 살 못 빼고 사우나에서 쓰러지잖아요. 그렇게 삶이 팍팍하잖아요. 그런데 인생은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하는 거고. 다행히 저는 삼겹처럼 포기하지 않고 옳은 길을 걸으며 여기까지 왔죠. 돈은 쪼들리지만 지금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이유지요.
사회 그래도 삼겹은 포기 안 하고 살았을 거 같은데요.
정희석 편의점도 알아보고 살도 빼지 않았을까? 아니, 식당을 운영했을 수도 있어.(모두 웃음)
사회 섬세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정희석 어제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는데, 섬세도 힘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섬세도 (언뜻 루저처럼 보이지만) 미용학원도 능동적으로 찾아다니고 미용사 시험을 준비하잖아요. 항상 무언가를 했어요. 영화 끝나고서도 도전을 했을 거 같아요. 자기 이름으로 된 미용실을 했거나 어머니를 설득해서 같이 했을 거야.
현성 세 친구의 미래를 보여주는 영화라면 굳이 감독님이 만들었을 거 같지도 않아요. 예전에는 사회의 부조리들이 감춰지고 (사람들을) 세뇌시키니까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인터넷에서 만천하에 공표되고 까발려지잖아요. 동시에 왜곡되고 물타기가 되면서 이상한 현상이 되어버리고요. 세월호 유족처럼 자식을 잃어 화가 나는데도 빨갱이가 되어버리고. 그렇다고 제가 뭘 할 수도 없는 상황…. <세친구>를 다시 보면서 그런 게 더 와닿았어요.
임순례 제가 당시 한국 사회를 굉장히 폭력이 만연한 사회라고 느꼈어요. 그럼 폭력의 근원이 무엇인가? 군대와 학교라 생각한 거죠. 대학 못 나오고 가난한 사람들은 고교 졸업 때부터 사회의 메인스트림에서 이탈하는데, 그 사람들의 삶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펼쳐질까? 저는 굉장히 암울하게 본 거죠. 영화의 마지막에서 현성이가 시장의 아주 어두운 곳으로 걸어 들어가잖아요. 이 상황이 빠른 시일 안에 개선되진 않을 것이고 세 친구도 굉장히 어두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예언이었죠. 20년이 지났는데, 영화가 얘기한 것이 하나도 개선되지 않고 악화됐어요. 양극화는 심화됐고 폭력은 양상을 달리해 심해졌고, 세 친구를 둘러싼 세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죠.
화려한 조명 없이 한 계단 한 계단
세계는 더욱 암울해졌지만, 성실함이야말로 현실 속 세 친구가 세계를 버티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과도한 조명이 자신들에게 비치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능력과 실력만큼 대우받는 걸 편해했으며 그렇게 한 계단 한 계단을 밟아 올라왔다.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지 않았지만 그들 삶에서는 확고한 중심이 되었다.
임순례 대단히 성공한 배우가 되거나 돈을 많이 번 사람이 된 건 아니지만, 세 친구 다 표준 이상의 건강한 삶을 살고 있어요. 특히 현성이는 육아를 꼼꼼하게 챙기면서 바르고 진정성 있게 살아가고 있는 거 같아. 인간 현성의 삶으로서도 훌륭하고, 그 모습이 바탕이 되어 배우로서도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이장원 그럼, 훌륭하지.
임순례 희석이도 여러 일을 시도하다가 자기한테 맞는 일을 찾은 거잖아. 사회에 어떤 거를 양보하고 포기한 게 아니라 끊임없이 뭔가 모색해 추구해 성공한 거니까.
이장원 여자만 있으면 돼. 결혼만 하면 돼.(웃음)
임순례 장원씨도 마찬가지야. 낯선 성우의 세계에 가서 자기 능력 발휘하고 가정도 잘 꾸리고 유지하고. 영화 속 캐릭터는 다 ‘루저’지만, 현실 속 세 친구는 잘 헤쳐 나가고 있어요.
영화 속의 세 친구도 원래 루저가 아니었는지 모른다. 주류 사회에서 패배하고 밑바닥을 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희석씨의 말처럼 깨지면서도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시간의 대화가 끝나고 임순례 감독이 “저녁이나 먹고 가자”고 말했다. 한국 영화사의 한 꼭짓점을 장식한 영화의 배우들이 허름한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이장원씨는 “딸에게 줄 중고 장난감을 신도림역에서 받아야 한다”며 차를 세워둔 언덕으로 올라갔다. 덩치 큰 몸을 이끌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걸어 올라갔지만, 영화 <세친구>의 무소속이 어두운 시장 속으로 사라질 때처럼 그의 뒷모습은 우울해 보이지 않았다.
사회·정리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현성(무소속 역)
영화가 없을 때 현성씨는 경기도 고양시의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음악을 한다. 8일 그가 작업실 ‘카레이스튜디오’를 보여주었다. 검은 레이 자동차다. 이곳에서 세 곡을 녹음했다. 첫 곡 ‘여전히 그대를’을 이달 중 발표하려고 한다. 4~5년 전 스케치에 들어가, 차 안에서 작곡을 했고, 동네 커피숍에서 가사를 썼다. 제11회 미쟝센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독개구리>에서 호흡을 맞춘 고정욱 감독과 <그대에게 가는 길>(가제)을 준비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활동했다가 뇌리에서 사라진 가수가 미사리의 카페에서 연주하면서 일어난 일을 다룬 작품이다.
정희석(섬세 역)
7일 정희석씨는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지하 2층 ‘TAE’ 앞에 서 있었다. 2007년 문을 연 이 남성의류숍은 오전 10시30부터 이튿날 새벽 5시까지 연중무휴 영업, 직원은 세명이다. 정씨는 오후 3~4시에 나와 새벽까지 가게를 본다. 요즈음엔 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사람이 없다고 한다. 연예인 전현무, 신승훈도 왔다 갔는지, 탈의실에 연예인 몇 명의 사인이 붙어 있다. 서너평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꽤 커졌다. 정희석씨는 “편안한 느낌의 옷,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옷과 함께 입을 수 있는 옷을 내놓는다”고 말했다.
이장원(삼겹 역)
“맨날 하는 게 악역이야.” 이장원씨는 8일 오후 서울 상암동 투니버스 녹음실에서 애니메이션 <괴도 키드> 23~24화를 녹음했다. 주인공 ‘괴도 키드’가 쫓고 있는 악당 ‘스네이크’ 역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착한 눈사람 ‘올라프’의 목소리가 바로 이장원이다. 목소리가 주는 상상 속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성우는 실제 모습을 드러내는 걸 피해야 한다. 올라프 역을 맡은 이장원이 사실 악역의 단골 성우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심파괴자’로 인터넷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영화 의 명장면으로 알려진 ‘22초 쇼트’.
‘무소속’ 현성(40)씨는 연기로 놓았던 기타를 차 안에서 다시 잡았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섬세’ 정희석(41)씨는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에서 남성 전문의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삼겹’ 이장원(44)씨는 성우로 활동을 하면서 최근 연기를 다시 시작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주연 맡아
정말 “잘되는 게 팔자”인가 했는데
흥행 대참패 뒤 뭘 해도 안 되더라
복권 1등 당첨 뒤 다시 복권 산 기분
차 안에서 노래 불러 앨범 낼 계획 ‘섬세’ 정희석
‘세친구’ 개봉 한달만에 군대행
일본 가서 돌아온 뒤 출판사 일 하다
현재 동대문서 옷가게 사장님
오후 출근 새벽 퇴근 바쁜 나날
단편 연기는 한번 해보고 싶어 ‘너무 잘생겨’ 밀린 장혁 임순례 감독은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나를 삼등분해서 세 인물에 투영해 놨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 폭력적인 학교, 고등학교 중퇴로 이어졌던 임 감독의 과거는 무소속, 섬세, 삼겹이라는 세 친구를 영화 속으로 불러들였다. 주연배우 현성(40)씨, 정희석(41)씨, 이장원(44)씨는 당시 영화 속 세 친구와 비슷한 스물 안팎의 나이였고, 외모, 성격, 말투까지 꼭 닮은 페르소나였다. 1995년 기획과 시나리오 집필이 시작되어 이듬해 촬영과 편집을 마치고 영화가 개봉됐다. 세 배우는 어찌된 일인지 영화계에서 이내 사라졌다. 군대에 갔고 다른 직장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장원(삼겹 역)씨는 이듬해 성우가 됐다. 정희석(섬세 역)씨는 제대를 하고 무역회사, 출판사 등에서 일하다 옷가게 사장님이 되었다. 현성(무소속 역)씨는 제대 뒤 단박에 스타덤에 올랐으나 항상 일이 잘 풀린 것은 아니었다. 영화를 찍고 처음으로 임순례 감독이 세 배우와 자리를 함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한번 만남의 자리를 요청했다. 세 친구는 흔쾌히 수락했다. 지난 2일 서울 공덕동의 한 카페에서 함께 인터뷰를 했다. 두번째 만남이었지만 아직 반가움이 가시지 않았다. 이날 만남은 인터뷰라기보다는 20년의 삶을 나누고 공명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사회 영화 <세친구> 속 세 친구의 20년 동안의 삶이 어땠을까 궁금했습니다. 임순례 20년이 지나도 몸매는 변하지 않는다는 불변의 법칙?(모두 웃음) 사회 영화가 의외로 디브이디(DVD)로 나오지 않았더라고요. 서울 상암동 영상자료원에 가서 봤습니다. 당시 <세친구>가 스타는 물론 기성 배우조차 기용하지 않은 것으로 주목을 받았죠? 임순례 대학을 안 간 가난한 동네의 스무살 아이들을 기성 배우에게 맡기면 느낌이 안 날 거 같았죠.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영화 속 캐릭터와 가장 가까운 배우를 현실에서 찾았습니다. 연출부 네댓명에게 아침마다 비디오카메라를 주고 20대가 모인 장소에 가서 무소속에 관한 이미지를 찍어오라고 했어요. 1996년 2월엔가 현성이가 서울예전(현 서울예대)에서 친구 연극영화과 원서 내는 데 따라왔다가 찍혔어요.
영화 이후 20년을 해쳐온 무소속, 섬세, 삼겹. 앞으로도 이들의 인생에 행운이 깃들길 빈다.
비슷한 스물 안팎의 나이였고
외모·성격·말투도 닮은 페르소나
그러나 곧 영화계에서 사라졌다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삼겹’ 이장원
온라인·모바일 게임 더빙도 하는
프리랜서 성우 생활 하고 있지만
단역이라도 오디션 보고 다녀
최근 ‘쓰리 섬머 나잇’서 털보 역
“한 신이라도 찍으면 마음 편해요” 영화감독 임순례
한국사회 폭력의 근원이 뭔가
저는 군대와 학교라 생각한 거죠
대학 못 나오고 가난한 이들 삶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펼쳐질까
세 친구의 세계는 현재진행형이죠 제작 방식에서 메시지까지 ‘리얼리즘’ 영화 <세친구>는 제작 방식에서 메시지까지 ‘리얼리즘’이라는 하나의 주장을 구현했다. 영화는 현실을 가장 가깝게 반영해야 했고, 기성배우는 과거 영화의 캐릭터를 지울 수 없기 때문에 캐스팅 과정에서 배제했다. 제작진은 무소속, 섬세, 삼겹과 가장 가까운 인물을 현실에서 찾았다. 후보들을 한데 모아놓고 오디션을 봐서 최종 선발했다. 그래서였을까. 20년이 흘렀는데도 40대 아저씨들의 모습, 말투, 성격에서 영화 속 무소속, 섬세, 삼겹이 포개졌다. 날렵한 용모의 현성씨는 무소속처럼 자신의 인생에 고민이 많았으며, 마른 인상의 정희석씨는 섬세처럼 말수가 적고 수줍어했다. 이장원씨는 삼겹처럼 시원시원하게 말하고 낙천적이었다. 이렇게 현실의 배우와 영화 속 인물의 간극은 최대한 좁혀졌고, 영화는 현실을 보여주는 투명한 거울에 가까워졌다. 임순례 캐스팅에 위기가 있었죠. 본촬영 직전에 졸업식 장면을 실제 졸업식에 붙여 찍을 때였는데, 현성이가 갑자기 안 한다고 한 거예요. 현성 어쩌다 호기심에 ‘예’ 하고 영화를 찍겠다고 했는데, 당시 저를 지배하고 있던 마음은 ‘로커는 로커다, 음악을 해야지’ 이랬거든요. 그날이 실제 제 졸업식날이었는데 이상한 데 와서 졸업식을 하고 있고, 난 로커인데 연기를 하고 있고. 조감독님 찾아가서 ‘못하겠습니다’ 했어요. 임순례 현성이가 하는 도곡동 지하 연습실에 찾아갔어요. 록밴드 리더가 현성이보다 한살 많았는데, 현성이한테는 그 형이 세상의 중심인 거예요. 형을 설득하면 되겠다 싶어서 새벽 대여섯시까지 포장마차에서 그 꼬마한테 술 사주면서 설득을 했는데, 결국 형이 ‘현성이를 보내드리겠습니다’ 한 거지.(모두 웃음) 사회 연기를 할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이 삼겹(이장원)이었는데, 후배들 보면서 한심했겠네요? 이장원 저도 질풍노도의 시기였어요. 연극영화과 졸업하고 뭘 해야 되나 하고 있을 때였으니까. 현성이가 록 하는 것처럼 우리는 연극이었거든요. 진정 연기를 하면 연극을 해야 한다, 뭐 이런. 근데 학교 밖으로 나가니까 쉽지가 않아. 대학로 가서 전단지부터 돌려야 하는데, 휴우. 사회 섬세(정희석)는 두렵지 않았어요? 갑자기 영화배우가 된 건데. 이장원 (끼어들며) 맨 처음 희석이 봤을 때, 뭐라고 해야 하지? 파르르 떨리는 꽃잎 같은. 얘가 영화 찍을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떨 때 보면 독종 기질이 있어요. 세명씩 즉흥연기 하는데, 희석이가 어떻게 해서든지 하더라고요. 정희석 연기 배운 것도 아니고 영화 찍는다고 주변에 얘기도 안 해서 가족도 잘 몰랐어요. 가족들도 얘가 자꾸 어딜 가는데, 어디 가냐 하시고. <세친구> 개봉하고 어머님이 보셨는데, (섬세가) ‘너 같다’ 그러시더라고요. 사회 무소속은 계속 영화계에서 활동을 하셨고, 섬세와 삼겹은 영화 개봉 뒤 갑자기 사라졌어요. 영화 마치고 무얼 하셨습니까? 정희석 <세친구> 개봉이 11월이었는데, 12월3일에 군대 갔어요. 임순례 희석이가 조금만 더 (몸무게를) 빼면 됐는데. 정희석 5급이 면제인데, 4급 받고 갔어요. 사회 조금 더 빼시지 그랬어요? 정희석 뺄 수 없는 단계까지 내려가야 하니까.(웃음) 근데 군대에 갔는데, 코만도총이라고 이따만한 걸 주는 거예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소대장과 면담을 했어요. 내 체격으로 안 되겠으니 좀 바꿔달라고 부탁했죠. 이장원 소대장이 바꿔줬어? 정희석 바꿔줬어요. 사회 (놀라며) 행정병으로라도 빼줬어요? 정희석 소총수.(모두 웃음) 현성 1998년에 군대를 갔는데, 일병 때인가, 육군 홍보영화를 찍는다고 오라고 했어요. 고참들이 ‘잘 가라’ 했는데, 갔더니 정작 제가 누군지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돌아왔죠. 수도방위사령부에서 근무했는데, 제1경비단가를 제가 만들었어요. 지금도 서대문 주변을 지나가면 들려요.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같이, 의지와 정열로 뭉친 용사들~ 이장원 케이비에스(KBS) 성우들과 교육연극을 했는데, 친구 하나가 성우 공채 원서를 줬어요.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신 아버지가 끌고가서 시험을 봤어요. 스물여섯살에 <세친구> 찍고 스물일곱살에 성우가 된 거죠. 지금은 만화 더빙도 하고 온라인 게임, 모바일 게임 더빙도 하고…. 이장원씨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아! 그 목소리!”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허스키한 목소리의 악역을 떠올려보라. 이장원이다. 그는 성우로 활동하면서 <한국방송>이 중국 동북지방 등에 송출하는 사회교육방송(현 한민족방송)의 옛날 가요 프로그램 ‘세월 따라 노래 따라’를 1998년부터 2013년까지 진행했다.
지난 2일 서울 공덕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세친구>의 주연 배우들이 만났다. 인터뷰라기보다는 20년의 삶을 나누는 공명의 시간에 가까웠다. 왼쪽부터 현성(무소속 역), 정희석(섬세 역), 이장원(삼겹 역)씨와 임순례 감독.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1996년 영화 의 제작 직후 임순례 감독이 세 주연 배우와 함께 관객과의 대화 행사를 열고 있다. 왼쪽부터 이장원, 현성, 정희석씨. 자료사진
임순례 감독도 담벼락에 함께 섰다. 임 감독은 를 장편 데뷔작으로 시작해 등을 만들었다. 왼쪽부터 임순례 감독, 섬세 역의 정희석씨, 무소속 역의 현성씨, 삼겹 역의 이장원씨.
현성(무소속 역)
정희석(섬세 역)
이장원(삼겹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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