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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협녀’, 무딘 칼로 그 무얼 자를수 있을까

등록 2015-08-11 20:58

영화 ‘협녀: 칼의 기억’
영화 ‘협녀: 칼의 기억’
영화 ‘협녀: 칼의 기억’ 내일 개봉
‘차(茶)’와 ‘민란’, ‘칼’의 시대.

영화 <협녀: 칼의 기억>는 이 세 단어로 집약되는 이야기다. ‘민란’이 빈번했던 혼란한 시대를 배경으로, ‘칼’로 대표되는 무협 액션을 비극적 멜로드라마에 얹어 ‘차’라는 매개체를 통해 풀어낸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어공주>, <사랑해 말순씨> 등 드라마에 강한 면모를 보인 박흥식 감독은 전도연·이병헌·김고은이라는 최상급 배우들과 만든 ‘한국형 정통 무협 멜로’ 로 여름 대전이 한창인 극장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민란이 들끓던 시대 비극적 운명
배신-정의-복수의 검 부딪혀
마치 한폭의 동양화같은 액션신
어디서 본듯한 ‘중국무협’ 같기도
마음담은 활극 배우연기 놀라워

■ ‘민란’ 고려 말 무신시대. 풍천(배수빈)·설랑(전도연)·덕기(이병헌)는 부패한 권력에 찌든 세상을 바꾸자고 결의하고 백성들을 모아 민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욕망에 눈이 먼 덕기의 배신으로 풍천이 죽고 민란은 실패한다. 설랑은 풍천의 아이 ‘홍이’를 데리고 자취를 감춘다.

18년 뒤. ‘유백’으로 이름을 바꾼 덕기는 왕좌를 넘보는 고려 최고의 권력자가 되고, 설랑은 맹인이 된 채 ‘월소’라는 이름으로 홍이(김고은)를 키우며 살고 있다. 어느 날 자신이 주최한 무술대회에서 월소를 연상케 하는 홍이를 마주한 유백은 그를 쫓는다. “네 부모를 죽인 원수 2명에게 복수하는 것이 평생의 업”라는 말로 홍이를 단련해 온 월소는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그 원수 중 하나는 유백이며, 하나는 나”라고 고백한다. 월소를 엄마로 삼아 살아온 홍이는 큰 혼란에 빠진다.

‘민란’은 영화의 배경이자, 주인공들의 신념, 그리고 비극적 운명을 양산한 원인이다. 설랑은 배신한 덕기에게 말한다. “피로 지은 죄, 피로 씻을 것이다. 잊지 마라. 우리는 홍이 손에 죽는다”고.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무거운 ‘비감미’를 풍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극이 진행될수록 관객은 셋의 운명이 더 슬프고 애잔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비밀’과 마주한다.

■ ‘칼’ <협녀>에는 세 개의 칼이 등장한다. 뜻을 세우는 풍천의 검, 불의에 맞서는 설랑의 검, 소중한 것을 지키는 덕기의 검. 그러나 민란의 실패로 세 검은 서로 다른 ‘마음’을 품고 다시 부딪힌다. 박흥식 감독은 “검에도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검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기 위해 사운드도 그렇고, 검의 모양도 그렇고 주인과 매칭 시키려고 많이 노력했다”라고 설명했다.

<협녀> 액션신의 특징은 슬로우 모션과 아름다운 영상미다. ‘칼’과 ‘칼’이 만날 때마다 카메라는 슬로 모션으로 배우들의 표정을 자세히 비춘다. 과감하고 격렬한 액션 신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협녀>에서 액션은 주인공들의 감정을 담아내는 ‘도구’다. 액션 연기를 하면서 디테일한 표정연기까지 자연스럽게 해 낸 배우들의 실력이 놀랍다. 감독은 액션을 화려한 영상미를 통해 아름답고 유려하게 담아내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한다. 해바라기밭, 대나무밭, 갈대밭 등을 배경으로 칼은 유영하듯, 춤을 추듯 움직인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한 느낌이다.

문제는 이 모든 장면이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는 데 있다. 중국 무협 영화의 진수로 꼽히는 호금전 감독의 <협녀>(1971)와 이 영화의 오마주인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2000) 속 ‘대나무 숲 액션’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빗 속 결투신 역시 장이머우 감독의 <영웅>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형 무협 멜로’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중국 무협 영화의 복사판’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 ‘차’ 박흥식 감독은 “<협녀>는 액션보다는 멜로드라마의 연장선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말한다. 그만큼 드라마에 힘을 줬다는 뜻이다. 영화는 덕기와 설랑의 ‘사랑과 욕망’때문에 빚어진 비극적 가족사다. 영화 속에서 둘의 관계는 ‘차(茶)’로 설명된다. ‘누이(설랑)의 차 맛을 잊지 못한다’는 덕기와 ‘차를 끓일 때마다 덕기를 떠올리는’ 설랑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끊을 수 없는 ‘애증’의 관계다.

다소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차’라는 소재는 영화 전체의 대사와도 맥을 같이 한다. ‘진짜 좋은 건 모르는 듯 아는 듯 천천히 오는 것이다’, ‘가장 약한 부분이 네 전체를 나약하게 만든다’, ‘옳은 것은 모두에게 옳은 것이다’ 등 단어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골라 쓴 듯 한 대사는 한 편의 시와 같다. 하지만 이 문어체 대사가 배우들의 입을 통해 발화되는 순간, 어색하고 오글거리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이병헌과 전도연, 김고은의 연기가 모두 발군임에도 대사의 민망함은 100% 상쇄되지 않는다.

묵직한 대사, 영화 전체를 휘감은 비감미는 시종일관 관객의 마음을 짓누른다. 더운 여름,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안기는 <암살> <베테랑> 등 경쟁작에 견줘 <협녀>의 ‘민란’은 너무 무겁고, ‘칼’은 너무 무디고, ‘차’는 너무 뜨겁다. 13일 개봉.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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