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영화·애니

레드카펫, 여인에게 길을 내주다

등록 2015-08-16 22:17수정 2015-08-17 15:08

여배우 전성시대…3인3색 인터뷰
왼쪽부터 이정현, 김고은, 한효주.
왼쪽부터 이정현, 김고은, 한효주.
■ 사차원 여자 살인자 “잔인해서 싫었어요? 화끈하지 않았나요?” 인터뷰를 위해 만난 배우 이정현은 애교와 불안이 섞인 어조로 기자에게 되레 묻는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여주인공 수남도 그랬다. 다른 사람을 찌르면서도 “미안해요. 제가 당신 죽이는 것 좀 이해해주면 안 되나요?” 하고 안타깝게 물었다. 이정현(35)이 만들어낸 순수하고 불안한 여자 살인자다.

“수남은 비정상적으로 순수하고 맹목적인 여자니까 최대한 어리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미성년의 얼굴로 어른의 일을 해치우는 주인공은 이정현 자신과도 비슷해 보인다. 박찬욱 감독의 권유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시나리오를 읽고 1시간 만에 출연을 결정했다는 그는 무보수로 출연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제작비를 보태기까지 했다. “의미있게 퍼주었다고 생각해요. 여자 영화를 정말 하고 싶었는데 할 수가 없었어요. 여자는 남자배우 들러리나 서는 의미없는 캐릭터 천지였죠. 이 영화를 놓치면 또 언제 여자가 임팩트를 주는 역을 해볼까 싶었어요.”

16살에 영화 <꽃잎>으로 데뷔하고, 17살에 가수 신인왕을 받은 그는 일찍부터 카메라 앞에 섰다. “중국에선 한류 스타였지만 한국에선 귀신 역만 들어와서 할 수가 없었다”는 그는 이십대를 슬럼프와 싸웠다. 그를 다시 배우의 길로 이끈 것은 박찬욱·박찬경 감독의 짧은 영화 <파란만장>이었다. 이정현은 이 영화에서 신기 어린 무당으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은 듯했다. 그 뒤 강이관 감독의 <범죄소년>과 김한빈 감독의 <명량> 등에서 뚜렷한 줄기를 잡아가고 있지만 늘 자신에 맞는 역에 주려 있고 또 만나지 못할까봐 불안하다.

“이 영화가 개봉하고 관객을 만난다는 사실에 감사해요. 하지만 불안하죠. 다음 작품을 손에 들고 있어야 마음이 편한데. 감정이 나오려면 제가 좋아할 수 있는 영화를 만나야 하는데. 왜 좋은 영화는 독립영화밖에 없을까요?”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씨지브이아트하우스 제공

■ 칼을 품은 무협 소녀 김고은(24)은 <협녀: 칼의 기억>에서 가볍고 날랜 몸으로 2시간 내내 하늘을 붕붕 난다. 80회 촬영에 80번 와이어에 올랐고 대역 없이 액션의 95%를 소화했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파 여러날 울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스스로를 보며 내가 정말 연기를 좋아하는구나 싶었어요. 나태해질 때마다 떠올릴 작품이 바로 <협녀>예요.”

그는 자칭 ‘무협 소녀’다. 4살 때 아버지 사업 때문에 중국으로 건너가 10년을 살았기 때문에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 장이머우 감독의 <영웅>,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 등 무협영화에 너무 익숙하단다. “<협녀> 시나리오를 읽으며 마음이 동요했어요. 마냥 천진난만하고 선머슴 같던 홍이가 마지막엔 아주 다른 인물이 돼 있더라고요. 감정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살리는 게 중요했죠.” 유난히 우는 장면이 많지만 모든 비밀이 밝혀지고, 홍이가 설랑(전도연)·덕기(이병헌)와 맞서는 마지막 장면의 ‘눈물’은 특별하다고 설명했다. “그 눈물이 설득력 있다면 내가 홍이를 잘 연기한 셈”이라고 했다. 앳된 얼굴로 말갛게 웃으며 노시인의 마음을 휘어잡았던 ‘은교’는 3년 만에 훌쩍 자라 있었다. 올해 누아르 영화 <차이나타운>의 ‘일영’으로 자신의 ‘쓸모’를 확실히 보여준 그는 <협녀>의 ‘홍이’로 러닝타임 내내 ‘존재감’을 과시했다. 하지만 여전히 김고은은 소년과 소녀, 그 중간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은교 이미지가 너무 강한가봐요. 싫지 않으냐고들 하는데 전 행복해요. 배우가 대표작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요. 전 데뷔작이 대표작이잖아요?”

김혜수·전도연 등 기라성 같은 선배와 작업하며 많은 도움을 받아 시행착오를 줄일 시간을 벌었다는 김고은. 동시에 “내가 아직 여물지 못했구나”라고 느꼈단다. “여배우로서 존재감 있는 역을 맡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배들처럼 후배를 배려할 줄 아는 여배우가 되고 싶어요.”

유선희 기자, 사진 딜라이트 제공

■ 21명과 사랑에 빠진 여자 “이번 작품 찍으며 감독님한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얼굴 왼쪽으로, 15도만 더 틀고’같은 말이에요. 감독님이 시에프(CF)를 하셔서 그런지 ‘각’을 중시하더라고요. 클로즈업이 많으니 틈만 나면 피부과에 달려갈 수밖에요. 하하하”

<뷰티 인사이드> 속 ‘이수’ 역 한효주(29)는 ‘작정하고’ 예쁘다. 아침햇살에 부스스 눈을 뜨는 장면도,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짓는 장면도 사랑스럽다.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변하는 남자 ‘우진’의 상대역 한효주는 21명과 사랑에 빠진다. “재밌지만 부담되는 설정이죠. 한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이수랑 제가 처한 상황이 똑같은 거예요. 처음 만난 배우와 낯설게 인사하고, 한두 장면 찍고 헤어지고. 감정이입 절로 되더라고요.” 한효주는 이 작품이 판타지 장르면서도 현실에 기반해서 좋았다고 했다. “영화 속에선 외모가 변하는 게 걸림돌이고 현실에선 그게 학벌·경제력·집안이라는 게 다를 뿐이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데이트 영화예요.”

<찬란한 유산> <동이> 등 드라마를 통해 입지를 다진 한효주는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감시자들>을 거쳐 올해는 <쎄시봉>으로 관객과 만났다. 캐릭터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역시 죄다 ‘예쁜 역할’이란 점.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를 좋아하니,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작품을 안 한 것 같아요. 20대는 예쁜 나이잖아요. 굳이 망가지거나 억세지고 싶진 않아요.” 한 발 한 발 천천히 가고 싶지 단지 ‘변신’을 위해 한꺼번에 열 걸음을 내딛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젠 30대가 코앞, 데뷔 10년차다. 그래서 한 걸음을 더 뗀 것이 다음 작품 <해어화>. 굴곡진 삶과 사랑에 흔들리는 기생 역이다 .

“<뷰티…>를 여성 원톱 영화라 해주시니 감사해요.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지금까지 별로 없었잖아요. 얼마 전 <베테랑> 봤는데, 유아인씨 여성 버전 같은 악역이 있다면 정말 탐날 것 같아요.”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영화인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