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보다 시원하고, 호러보다 짜릿
위부터 ‘베테랑‘의 황정민, 아래 왼쪽은 ‘베테랑‘의 무술감독 정두홍.
악당에게 맞고 잡히는 주인공 신선 정두홍 무술감독의 한 장면 황정민-유아인 붙을 때 “을의 끈질김 응원” 여름 극장가에 흥행 돌풍을 몰고온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과 최동훈 감독의 <암살>은 장르적 쾌감을 키운 액션 수작들이다. 공포물을 밀어내고 액션물이 여름 영화가 된 것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빠른 속도감, 스크린 밖으로 느껴지는 타격감, 보는 사람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운동감 등 액션물의 발전이 눈부신 덕분이다. 잘 싸운 액션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베테랑> 정두홍, <암살> 유상섭, 두 무술감독에게 싸움의 기술을 들었다. ■ 잽잽잽…류승완-정두홍 액션의 변화 “우리가 응원하는 인물이 통쾌하게 이기는 액션을 만들어야 했다. 현실적인 공간에서.” 류승완 감독의 말처럼 <베테랑>은 현실적인 액션으로 비현실적 꿈을 이루는 영화다. 황정민의 원맨쇼에 가까운 많은 액션 장면들은 컨테이너 박스나 옥상같은 복잡한 장애물들을 타 넘지만 위기감이나 긴장감을 주는 게 아니라 속도와 기술을 과시하며 즐거움을 준다. “성룡식 액션은 제 머릿속에 없고, 코미디 액션을 잘하지도 못한다. 다만 캐릭터들이 밝고 자유롭길래 그 캐릭터를 따라갔다.” 정두홍 무술감독은 전화 인터뷰에서 ‘현실적인 싸움’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했다. 류승완 감독과 정두홍 무술감독, 영화계의 대표적인 ‘액션 메이트’가 만들어낸 <베테랑>은 지금까지 그들의 작업스타일과도 크게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겁고 화려한 길로만 나아가고 있었던 그들의 액션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듯 날렵해졌다는 것이다. 정 무술감독은 “우리 액션이 초기로 돌아갔다고? 영화 <베를린> 이후 성숙해졌다는 말이 맞다. 그동안 내 스타일의 액션이 있어서 그 안에서 놀다보니 멀리 가질 못했는데 <베를린>을 통해 관객들이 좋아하는 지점을 알게 됐다”며 <베를린>의 영향을 거듭 강조했다. <베테랑>은 <베를린>처럼 ‘본 시리즈’에서 영향받은 스파이 액션을 추구하지만 총기나 거창한 대결을 걷어내고 대부분 손으로 싸우는 수기법 액션이라 더 가볍고 현실적이다. 정 무술감독은 또 “편집이나 촬영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동작이라고 하더라도 다 어루만졌다. 편집이 됐어도 이어져보이는 동작이 있어야 한다. 끊어지면 관객들이 먼저 알아차린다”고 했다. 형사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경찰조직은 부패하고 한두사람 무너져도 슈퍼갑은 그대로일 것이다. 슬랩스틱 같은 코믹한 액션 장면들은 사회를 바꿀 큰 파괴력은 없지만 가벼운 잽처럼 갑과 을 사이의 벽을 두드리고 관객들의 마음을 두드린다. 영화는 두 적수, 서도철(황정민)과 조태오(유아인)가 맞붙는 명동 싸움에서 절정을 이룬다. “보통 이런 영화에선 주인공이 악당을 철저하게 응징해야 끝나는데 우리 영화는 전혀 달랐다. 액션 장면에서만은 악당과 주인공이 바뀐 느낌이었다. 주인공이 잘 싸우는 게 아니라 맞다가 빠져나오고 다시 제압당한다. 그래도 그 끈질김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두홍 감독이 설명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액션 장면의 의미다.
위부터 ‘암살‘의 전지현, ‘암살‘의 무술감독 유상섭.
역사 관련돼 줄타기 등 과장안해 유상섭 무술감독의 한 장면 영화후반 암살단원이 뒷모습 보이며 숨질때 ■ 스트레이트…<암살>의 묵직한 액션 <암살>은 영화 배경을 같은 시대 뉴욕 뒷골목으로 옮겨도 비슷해 보일 뻔 했다. 영화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며 액션도 정통의 느낌을 추구하는 오래된 액션 누아르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가득했다. 유상섭 무술감독은 “그러나 홍콩영화처럼 과장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명료하고 간결한 액션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사건은 가상이지만 실제 항일운동가들 이름이 불려지는 영화에서 “빙글빙글 돌고 줄타고 오바하는 액션이 드라마의 실제성을 손상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암살>은 유상섭 무술감독이 <도둑들>에 이어 두번째로 최동훈 감독과 호흡을 맞춘 영화다. 그는 “최동훈 감독은 액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 나는 아직 감독님 머릿속을 잘 모르겠다. 5번쯤은 같이 해야 알려나”하고 웃었다. 또 <암살>은 그동안 한국 액션이 취약했던 총기 장면을 스펙터클하게 연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수십대의 총들이 일제히 울부짖었던 결혼식장 사격 장면에서 무술감독은 흥분했다. “저격총은 한발씩 쏘고 장전한다. 굉장히 샤프하면서 심플하다. 반대로 기관총은 희열을 느끼게 한다. 결혼식장에서 전지현씨가 기관총을 들었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몸의 액션도 있지만 총만 가질 수 있는 힘이 있다. 공포탄이지만 진동을 일으키는 총의 힘.”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총을 쏘는 사격액션은 연기와도 같았다. 전지현은 총소리가 쏟아지는 장면에서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았다고 했다. 유상섭 무술감독이 <암살>에서 가장 사랑한 액션 장면은 누군가의 죽음 장면이었다고 했다. “영화 후반 암살단원 중 하나는 숨을 거두면서도 쓰러지지 않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영화 <생사결>에서 무사가 숨이 넘어가기 전에 칼로 발등을 찍고 서서 죽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암살>의 모든 다른 배우들은 카메라를 향해서 죽지만 그만이 뒷모습으로 죽는다. 죽는 모습이 최고의 액션일 수 있다.” 암살의 액션이 유독 묵직한 이유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각 회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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