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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회.사.괴.담

등록 2015-08-18 18:59

영화 '오피스'의 한 장면.
영화 '오피스'의 한 장면.
영화 ‘오피스’ 일상적 공간 사무실서
의문의 사건 일어나 긴장감 배가
# “왜 그런 사람 있잖아요. 우직하고 융통성 없는. 일은 졸라 열심히 하는데, 눈치 없이 위에서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삽질만 하는 그런 사람.”

영업2팀 김병국 과장에 대한 동료들의 평가다. 한 가족의 가장이자 착실한 회사원인 김 과장(배성우)은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아내와 어머니, 희귀병을 앓는 아들까지 일가족 모두를 살해하고 사라진다. 형사인 최종훈(박성웅)은 사건 직후 회사로 되돌아온 김 과장의 모습이 폐쇄회로(CCTV) 화면에 찍힌 것을 발견하지만, 회사를 떠나는 화면은 확보하지 못한다. 김 과장은 아직 회사에 있는 걸까?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든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마. 괜히 존재감만 더 없어 보여. 자신감이 그렇게 없나 싶은 게. 미례씨 가만히 보면 꼭 김 과장님 같은 구석이 있더라.”

사라진 김 과장과 가깝게 지낸 인턴 이미례(고아성·사진)에게 건네는 정직원들의 충고다. 지방대를 졸업한 인턴 5개월차 이미례는 온갖 궂은일을 한다. 서울에 직장을 잡기 위해 중학교 때부터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는 이미례. 하지만 화려한 스펙, 예쁜 얼굴, 센스까지 겸비한 해외파 신다미(손수현)가 새 인턴으로 들어오며 정직원의 꿈은 멀어져간다. 때마침 사무실에서는 의문의 사건이 하나씩 벌어지기 시작한다.

<오피스>는 사무실이라는 제한적이고 일상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가장 현실적인 공포를 그려내는 영화다. 겉으로는 서로 협력하고 공존하며 발전을 도모하는 공동체처럼 보이는 사무실은 실제로는 야생보다 더 냉정한 약육강식의 세계, 생존을 위한 투쟁의 장이다. 영화 속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회의실, 비상계단, 화장실에서는 갖가지 구설과 뒷말이 난무한다. 회사원만 그런 게 아니다. 진실을 추적해야 할 형사도 승진에 목메고 윗사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월급쟁이에 불과하다.

귀신·악령 같은 초현실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부대끼는 일상이 영화 속 공포의 근원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이웃 주민을 연쇄 살인범으로 설정한 <이웃사람>(2012), 남의 집에 몸을 숨기고 사는 낯선 사람이라는 도시괴담에서 출발한 <숨바꼭질>(2013) 등을 통해 관객은 이미 ‘낯익은 현실’이 가장 공포스러울 수 있다는 경험을 한 터다. <오피스>는 이런 일상 공포의 대상을 내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사무실, 그리고 옆자리 동료로 치환한 셈이다. 어느 순간 사무실의 모든 집기는 공포의 소재가 된다. 칸막이(파티션)는 출구를 알 수 없는 미로처럼 어지럽다. 스테이플러의 짤깍짤깍 소리, 알람시계의 똑딱똑딱 소리는 강박적 소음으로 느껴진다. 홍원찬 감독은 “입시지옥의 스트레스를 호러로 풀어낸 <여고괴담>의 직장버전이 바로 <오피스>”라는 말로 이 ‘현실 밀착형 스릴러’를 설명했다.

과도하게 잔인한 장면도, 뒤통수를 후려치는 엄청난 반전도 없지만, 적절히 죄었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긴장감을 유지하는 감독의 연출력이 꽤 놀랍다. 영화의 두 축인 고아성과 박성웅은 물론 배성우, 김의성, 류현경 등 조연들의 연기도 고르게 탄탄하다. 올해 칸 영화제 ‘미드나잇 상영’ 부문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영화에서 온갖 무시를 당하면서도 온순하기만 한 김 과장은 “쥐고 있으면 묵주처럼 편안해진다”며 서랍 속에 ‘칼’을 품는다. 이 칼은 부조리한 경쟁사회를 향한 숨죽인 ‘살의’다. 현실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영화를 보고 난 뒤 마음 속 어딘가 숨겨놓은 자신만의 칼을 더듬어 볼지도 모르겠다. 27일 개봉.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영화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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