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키스장면에 오버랩 된 화면은 어둡고 광활한 사막의 밤하늘과 그에 맞닿은 모래언덕을 배경으로 옷을 벗는 이향의 모습이다. 이향은 한승엽의 옷을 벗기고 그의 얼굴을 만진다. 그의 얼굴 모양을 손끝으로도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향은 사막 위에 몸을 눕힌다. 부드럽지만 뜨거운 입맞춤과 함께 두 사람은 하나가 된다.’
이 대목만 읽고도 영화의 제목을 번뜩 떠올린다면, 당신은 진정한 영화팬이다. 이 장면은 데뷔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산소같은 여자’로 불리는 이영애의 스크린 데뷔작 <인샬라>(1997·이민용 감독) 속 ‘정사신’이다. 이젠 영원히 정사신 따위는 기대할 수 없는 한류스타가 된 이영애도 최민수와 함께 사하라 사막을 배경으로 전라의 연기를 펼치던 때가 있었다.
조원희 영화감독이 <한국 영화사상 가장 에로틱한 순간 51>이라는 야릇한 제목의 전자책을 최근 출간했다. 사상 최초의 트렌스젠더 러브신, 동성끼리의 적나라한 성애 장면, 톱 배우의 노출신 등으로 화제가 된, 한국 영화 사상 가장 논쟁적인 에로티시즘 영화들을 모았다. ‘만개한 여인의 다리 <소름>’, ‘먹물들이 침대에서 이야기하는 것들 <세기말>’, ‘성인들의 오락실 사용법 <정사>’, ‘엄마는 잤을까 <마더>’ 등 목차만 봐도 꽤나 도발적이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는 자타공인 영화계의 대표 이야기꾼이자 잡학의 대가인 조 감독은 영상보다 더 생생하고 자극적인 언어로 정사신을 설명하고 이들 장면의 탄생 과정을 해설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야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해박한 영화 지식과 촌철살인은 독자의 지적 허영심까지 만족시켜줄 듯 하다.
출퇴근길 무료한 지하철(버스)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보거나, 배우자 몰래 서재에서 보기를 추천한다.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으로 발간한 저자의 세심한 배려가 고마울 따름이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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