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엠제트 국제다큐영화제에 소개된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남북미생> <북녘에서 온 노래> <안나, 평양에서 주체영화를 배우다!>.
디엠제트 국제다큐영화제 제공
북한에 대한 기록은 그 자체가 ‘선동’이거나 ‘고발’이기 십상이다. 체제가 아닌 삶을 기록한 영화는 없을까? 17일부터 열리는 디엠제트(DMZ) 국제다큐영화제에선 북한을 소재로 한 8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그중 5편은 북한에서 촬영한 영화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나는 선무다>부터 ‘분단 70년 특별전’에서 상영되는 영화까지 좀더 가깝게 북한의 얼굴에 접근한 영화를 만나보았다.
유순미 감독의 <북녘에서 온 노래>는 사람이 거꾸로 매달린 북한 서커스 장면, 광명성 3호 발사를 축하하는 영상,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 등이 숨가쁘게 이어지면서 시작한다. 북한에서 제작한 영화, 드라마, 공연 등 각종 홍보 영상부터 유치원 선생님의 아코디언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북한 어린이 모습까지 영화엔 볼륨 높인 음악이 끊이질 않는다. 예술이 선전·선동을 담당하는 북한 사람들의 일상이 실제 그럴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들어도 결국 한가지 종류의 음악밖에 없는 사회가 바깥사람의 눈에는 기이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0년부터 북한을 3차례 방문한 유 감독은 단일하고 폐쇄적인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정서를 탐구하려 한다. 매사추세츠 예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유 감독의 국적이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북한 체제 홍보 영상에서 ‘수령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눈물짓는 장면을 보면 우리는 흔히 세뇌당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전쟁 뒤 황폐한 터전에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 필요했던 신념체계를 이해해야만 알 수 있는 정서다. 북한의 각종 예술은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전진을 계속해온 그들의 심리상태를 짐작하게 한다. 물론 이해는 하더라도 프로파간다로 몰락한 예술은 참담하다. 영화엔 해만 지면 캄캄해지는 평양에서 작은 불빛을 반짝거리며 돌아가는 회전목마와 관람차, 함흥시 같은 지방도시 등 그동안 쉽게 볼 수 없었던 북한의 풍경도 담겨 있다.
‘탈북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남한과 북한 사이에 낀 채로 살아간다. 북한군을 위해 선전물을 그리다 남한으로 흘러들어온 화가 선무는 특히나 그랬다. 애덤 쇼버그 감독의 다큐멘터리 <나는 선무다>는 경계선에서 사는 탈북 화가 선무가 지난해 7월 중국에서 전시회를 열려다 위험에 직면한다는 이야기다. 똑같이, 얼굴을 붉히고 입을 벌려 웃고 있는 그림 ‘조선소년단’의 모습이나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은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 등을 그린 그의 그림은 심각한 체제비판화라기보다 북조선 스타일의 팝아트에 가깝다. 하지만 그의 예술 혹은 농담은 통하지 않는다. 여러 나라를 돌며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애덤 쇼버그 감독은 선무의 그림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북한의 노래와 중국 가락, 팝 등을 얹어 화가의 작품만큼이나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었다.
<평양연서>와 <남북미생>은 독일에서 활동하는 조성형 감독이 북한 거주자나 북한 출신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만들어낸 영화다. 특히 <남북미생>은 지금 북한 젊은이들의 일상을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다. 평양에 사는 방계영은 억압적이고 전체주의적이며 구시대적인 체제 속에서 살아간다. 남과 북의 두 여학생 이야기를 그리는 이 영화에서 서울 여학생인 허선경은 역동적이며 위협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산다. 어느 쪽이든 밝고 힘이 넘치는 젊은이들이 낡고 무거운 체제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북한 영화제작 현장을 담은 <안나, 평양에서 주체영화를 배우다!>와 북한 여자축구 선수들 이야기를 그린 <하나, 둘, 셋>은 모두 외국 감독이 북한에서 거주하면서 만든 영화다. 오스트레일리아 감독 안나 브로이노프스키가 북한의 선전영화 기법을 배워 영화를 만든다는 내용의 코미디 영화 <안나…>는 고립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숨겨두고 있다. <하나, 둘, 셋>은 스포츠와 애국심이라는 소재를 통해 평양시민들의 열정과 이상을 탐구한다.
“북한에 대해선 무엇을 이야기하든 정치가 된다.” 영화 <나는 선무다>의 대사처럼 체제라는 프레임을 벗어난 북한 이야기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북한을 구경거리로 삼지 않고 탐색하는 영화, 북한의 민낯을 드러내는 영화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메가박스 백석, 파주출판도시관 등에서 상영하는 영화제는 24일까지 열린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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