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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애니

스물, BIFF 청춘스케치…부산국제영화제 20돌

등록 2015-09-20 20:57수정 2015-09-21 11:06

1996년 9월13일, 한국 영화사에 결정적 순간으로 기억된다.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설치된 무대 위에 눕혀져 있던 4층 건물 크기의 대형 스크린이 세워지는 순간, 5000명 관객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배우 문성근이 첫번째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을 알렸다. 부산국제영화제가 20돌을 맞았다. 영화제는 시네필을 한데 모으는 공동체로 시작해 영화 시장의 지표로 성장했다. 이제 정치적 독립이란 중요한 과제 앞에 서 있다. 청년 부산국제영화제가 겪어온 변화들, 그 성장기를 정리해보았다.

장면 1 169편 → 304편

부산영화제에서 뜨면 전국구 흥행 보장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 특별행사였던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한국 봉준호 감독의 ‘오픈 토크’.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 특별행사였던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한국 봉준호 감독의 ‘오픈 토크’.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첫번째 부산국제영화제 땐 8일간 15만9000명의 관객이 부산 남포동 영화의 거리를 찾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파였다. 문화불모지라는 인상이 강하던 부산에서 열리는 영화제가 성공할 것이라고 낙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1990년대 대중문화의 힘, 잠재돼 있던 문화적 욕구가 터져나온 사건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사실 그때의 관객수를 크게 뛰어넘지는 못한다. 지난해 열흘간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유료관객수는 22만6000명. 이미 좌석점유율이 80%에 이르는 상황이라서 앞으로도 관객수는 크게 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관객 구성엔 변화가 느껴진다.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초기엔 10~20대가 많았는데 지금 관객은 30~40대가 중심이다. 초기엔 일반극장에서 볼 수 없는 예술영화나 일본 영화를 찾아 관객들이 내려왔다면 지금은 영화에 대한 정보가 많으며 페스티벌을 문화로 여기는 세대들이 온다”고 했다.

부산은 작품의 운명을 미리 볼 수 있는 곳이다. <위플래쉬> <한공주> <워낭소리> <똥파리> <족구왕> 등 영화제에서 매진되거나 호응이 높았던 영화들은 상영관에서도 환호를 받았다.

영화제의 성장을 가름하는 데 상영작 수와 품질은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31개국 169편으로 시작한 영화제는 올해 75개국 304편의 영화를 초청해 상영한다. 이 중 국내외에서 처음 선보이는 월드 프리미어 94편과 자국 밖에서 처음 상영하는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27편이 포함돼 있다.

장면 2 정장 →노출

레드카펫 법칙도 변했다…단, 과유불급!

2010년 와이드앵글 파티에서 프랑스 여배우 쥘리에트 비노슈와 김동호 위원장이 함께 춤추고 있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2010년 와이드앵글 파티에서 프랑스 여배우 쥘리에트 비노슈와 김동호 위원장이 함께 춤추고 있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1회, 처음 깔린 레드카펫에선 여배우로는 강수연, 심은하, 김지미, 장미희 등이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았다. 심은하 정도가 목과 등이 파인 드레스를 입었을 뿐 강수연은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었고 정장에 가까운 옷차림을 한 배우들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여배우들이 레드카펫 위에서 존재를 알리는 시대가 왔다.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오인혜 패션은 ‘레드카펫 노출의 원조’로 꼽힌다. 그 이후 신인 여배우들이 레드카펫에서 노출 경쟁이 심해지자 지난해부터 부산국제영화제는 상영작과 관계없는 배우들의 레드카펫 출입을 제한하고 나섰다.

주최 쪽에 레드카펫의 무게는 적지 않다. 지금처럼 블록버스터 영화 홍보를 위해 외국배우가 내한하는 일이 거의 없던 제2회 영화제 때 배우 양조위(량차오웨이)와 제러미 아이언스 등이 한국에 온 것은 영화팬들에게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 뒤 왕가위, 성룡(청룽), 홍금보(훙진바오) 등 홍콩 스타 감독과 배우들이 한꺼번에 부산을 찾는 해(9회)를 거치면서 지금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매년 부산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엔니오 모리코네 음악감독(12회), 올리머 스톤 감독(15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18회) 등 거장들의 내한도 영화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올해엔 한국인들에게 ‘영원한 라붐’ 소피 마르소가 찾는다.

해외 영화인들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온 수를 보면 부산과의 친밀도를 짐작할 수 있다. 홍콩 배우 양조위는 영화제 초기 때 3번을 참가했다. 15회부터 등장한 탕웨이가 올해도 영화제를 찾는다면 4번째 참가로 가장 많이 부산에 온 외국 배우가 된다. 대만의 허우샤오셴 감독과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각각 3번 초청받았다. 1회 때부터 레드카펫을 밟다가 올해는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배우 강수연은 최장기 레드카펫 출석자다.

단 한번을 다녀갔지만 친구인 양 두고두고 이야기되는 배우도 있다. 2010년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 주연으로 부산에 왔던 프랑스 여배우 쥘리에트 비노슈는 독립영화인을 위한 행사인 와이드앵글 파티에도 참석했다. 이 파티는 김동호 위원장이 춤을 추기 시작하면 젊은 영화인들은 모두 따라 춤을 춘다는 전통이 있다. 이날 파티가 시작되자 쥘리에트 비노슈는 함께 참석한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까지 무대로 끌어내며 춤을 췄다. 때론 보이지 않는 레드카펫이 더 뜨거웠다.

장면 3 남포동 →해운대

소박한 정겨움은 가고

영화제 기간 동안 밤늦은 부산 남포동 극장 거리엔 영화인들의 거리 술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화제 기간 동안 밤늦은 부산 남포동 극장 거리엔 영화인들의 거리 술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비프광장’을 중심으로 부산극장, 대영시네마, 국도극장, 아카데미극장 등이 ‘ㄱ자 모양’으로 늘어섰던 부산 남포동 극장거리는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영화제의 중심이었다. 단순히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극장뿐만이 아니다. 횟집·완당집·추어탕집·할매김밥집 등 맛집부터 씨앗호떡·부산떡볶이 등 부산 명물 먹거리를 파는 노점상까지 즐비하게 늘어서 영화제를 찾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드는 곳이었다.

영화제가 열리면 남포동 일대는 파티와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1회 영화제가 열린 1996년부터 3회 1998년까지는 유흥업소 심야영업이 금지된 시절이었다. 자정이 넘어 갈 곳이 없어진 영화인들과 시네필은 골목길에 신문지를 펴고 앉아 술판을 벌였다. 영업시간 금지가 풀린 이후부터는 비프광장에서 로얄호텔로 가는 골목에 늘어선 포장마차촌으로 뒤풀이 장소가 바뀌었다.

그러나 ‘남포동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전통의 남포동 단관 극장이 하나씩 문을 닫기 시작하고, 신도시 해운대에 복합상영관이 하나둘 문을 열면서 영화제의 중심도 해운대로 옮겨간다. 2002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제를 남포동과 해운대에서 분산 개최하기로 결정했고, 해운대 센텀에 영화제 전용관인 영화의 전당이 들어선 2011년부터는 아예 해운대 위주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해운대에는 고급 호텔과 복합상영관, 화려한 술집이 즐비하다. 길거리 술자리 대신 투자배급사와 제작사들이 마련하는 공식 파티가 줄줄이 열린다. 이제 남포동엔 표지석과 핸드프린트만이 남아 옛 영광을 추억하게 한다.

장면 4 김동호→이용관

성장통은 잠시만

2014년 해운대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19회 영화제 개막식.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2014년 해운대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19회 영화제 개막식.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김동호 전 위원장은 영화인들 사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아버지’로 불린다. 영화진흥공사 (현 영화진흥위원회) 사장 재직 시절 강한 추진력과 친화력으로 영화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그는 초대 집행위원장으로 추대됐다. 해외 영화제와 부산시·정부 쪽에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던 김동호 위원장은 특히 ‘영화제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다. 1회 때부터 모든 정치인과 관의 축사를 없애고 오직 시장이 개막선언만을 하도록 한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영화제가 본 궤도에 오르면서 김 전 위원장은 ‘후임’을 물색했다. 자연스런 승계를 위해 2007년부터 이용관 현 위원장과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로 영화제를 이끌다가 2010년 영화의 전당 완공을 앞두고 퇴임한다.

영화제 시작부터 두 위원장을 지켜본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는 김동호 위원장을 ‘덕장’에, 이용관 위원장을 ‘용장’에 비유했다. 그는 “김 전 위원장이 여러 사람의 의견을 조율하고 화합을 유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면, 이 위원장은 단호히 결단을 내리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또 “김 전 위원장이 개·폐막작이나 초청 영화 선정을 프로그래머에게 전적으로 맡긴 것과 달리 평론가이자 학자 출신인 이 위원장은 개·폐막작 선정 만큼은 직접 챙기는 점도 다르다”고 덧붙였다.

2011년부터 시작된 이용관 체제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 <다이빙벨> 상영을 둘러싸고 부산시와 갈등을 빚으며 큰 위기에 봉착했다. 시는 이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고,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제 예산 15억 가운데 7억을 삭감했다. 이 위원장은 “예산을 줄여서라도 자존심은 지키겠다”는 말로 영화제의 정치적 중립성을 천명했지만, 영화제의 위상은 큰 타격을 입었다. 영화제는 결국 20돌을 앞두고 영화배우 강수연씨를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추대하며 부산시와의 갈등을 임시 봉합했다.

사람으로 치면 ‘성년의 나이’가 된 부산국제영화제가 성장통을 극복하고 칸·베니스·베를린 영화제처럼 세계적 축제로 우뚝 설 수 있을까? 모든 영화인의 시선이 ‘부산국제영화제 20돌’에 쏠리는 이유다.

남은주·유선희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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